"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 비판후기 썼다가 악플러 취급

강두순 2017. 2. 1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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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께서 작성하신 게시물이 임시 게시중단 됐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거주하는 30대 주부 한모씨는 자신의 블로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얼마전 출산한 직후 인근의 한 산후조리원에 머물면서 겪었던 불쾌한 서비스를 비판하는 글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는데, 조리원 측에서 온라인 포털사에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신고해 게시글을 내리게 한 것이다. 한씨는 "조리원을 비방할 목적으로 글을 쓴 게 아니라 주변에 거주하는 임신부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려는 공익적 목적이었다"며 게시글 복원을 요청했다.

며칠뒤 한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귀를 의심했다. 조리원 측이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등 법적 대응을 절차를 밟겠다"고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화가 난 한씨는 조리원과 끝까지 붙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출산직후 건강을 고려해 결국 싸움을 포기하기로 했다.그는 "2주에 3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도 정당한 서비스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정신적인 피해까지 입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제품에 대한 악의적인 글과 사진을 온라인에 올려 업체를 협박하는 소위 '블랙컨슈머(Black-Consumer)'들 횡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이와 정반대 현상도 속속 나오고 있다.

일부 업주들이 인터넷이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비판적인 '후기(後記)'를 올린 소비자들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압박해 삭제를 유도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명예훼손 소지가 크지 않은 정보제공과 소비자의 경험에 근거한 글까지 마구잡이로 신고하는 등 일부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11일 매일경제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상에서 '명예훼손 분쟁조정'과 '이용자 정보의 제공청구' 건수는 지난해 1088건으로 2015년 553건에 비해 두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용자 정보의 제공청구는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측이 주로 민·형사상 소송을 목적으로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요청한 것을 말한다.

방통심의위에 접수되는 명예훼손 관련 신고는 지난 2013년 298건에 불과했지만 해가 갈수록 크게 늘고 있다.

이 가운데 방통심의위가 실제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난해 1000건이 넘는 명예훼손 관련 신고 가운데 실제 방통위가 분쟁 조정을 결정한 것은 14건에 불과했다. 명예훼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기각 또는 각하)가 절반 이상에 달했다.

방통심의위 분쟁조정팀 관계자는 "상대방의 평가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들어오는 명예훼손 신고도 상당히 많은 게 사실"이라며 "소비자가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한 평가를 온라인에 올리는 행위는 대부분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 불만이나 비판적인 후기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고, 공익을 위한 정보제공 목적이라면 무죄라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최근에는 고객 뿐만 아니라 업장에서 일했던 근무자가 온라인에 비판 글을 올린 것도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

온라인에 올리는 이용 후기 글이 대부분이 명예훼손 소지가 크지 않은데도, 인터넷 포털사는 일단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사람이 신고를 하면 인터넷 포털사는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해당 게시물을 임의로 내린다.

게시물이 삭제되고 업체에서 고소 위협을 하거나 실제로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신고하면 대부분 소비자는 한씨 사례처럼 투항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업주들의 무분별한 명예훼손 신고가 멈추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관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힘든 일반 소비자들의 현실적 사정을 이용해 개인적인 평가까지 제약하는 것은 문제"라며 "이는 소비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참고하려는 소비자 권익을 침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태욱 기자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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