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 대신 랩? 10대에게 피임 접근권을 허하라

선명수 기자 2017. 2. 1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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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청소년 지원단체에서 일하는 김선희씨(가명)는 최근 한 청소년과 상담을 하다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이성교제를 하는 10대들 중 애인과의 성관계 시 콘돔을 구하지 못해 ‘비닐봉지’나 ‘랩’을 피임 자구책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였다. “콘돔은 비싸고, 고등학생이 막 사기도 부끄러운데 피임을 안 하기엔 임신이 걱정되니까”라는 것이 이 학생의 설명이었다. 김씨는 “‘깔창 생리대’는 들어봤지만 콘돔 대신 랩을 사용한다는 얘기에 경악했다”면서 “청소년들의 피임에 대한 접근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랩 콘돔’은 피임법이라고 볼 수 없는 데다 여성의 몸에도 매우 위험하지만, 네이버 지식인 등 주요 포털사이트 게시판엔 이미 몇 년 전부터 청소년들의 관련 문의들이 줄을 잇는다. “콘돔을 못 구해서 랩으로 싸고 했는데, 너무 불안해요”, “남자친구랑 비닐을 끼고 관계를 했는데, 비닐이 살짝 찢어진 것 같은데 임신 가능성이 있나요?”, “비닐봉지로 피임하면 비위생적이라고 하던데, 그럼 봉지를 깨끗이 씻고 하면 괜찮아요?”

사람들이 인정하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든, 청소년 중 일부는 이미 섹스를 하고 있거나 멀지 않은 미래에 이를 선택지로 받아들게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의 성적 실천은 여전히 ‘금기’다. 청소년의 성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유예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사회가 인정하는 10대의 연애 역시 성적 행동이 배제된 관계로 한정된다. 그러나 이 ‘금기’로 인해 청소년과 성인을 막론하고 피임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여전히 견고하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정확한 피임지식, 자기결정권이 중심이 된 성지식이 성교육의 중심이 돼야 하지만 한국의 성교육은 대부분 10대의 성행위를 억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과적으로 피임에 대한 무지는 더욱 위험한 10대의 섹스를 부를 것”이라며 “‘랩 콘돔’은 그 하나의 예일 뿐”이라고 말했다.

콘돔은 죄가 없거늘
그렇다면 청소년도 콘돔을 살 수 있을까? 법적으로 살 수 있지만, 쉽지는 않다. 청소년보호법상 콘돔은 성인용품이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도 얼마든지 구입하거나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청소년이 콘돔을 구입하려면 여러 ‘난관’을 통과해야 한다. 대학생 박찬영씨(21·가명)는 고교 시절 편의점에 콘돔을 사러 갔다가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위 아래로 훑어보다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마지못해 콘돔을 파는 가게 주인도 있었다. 박씨는 “청소년이 사지 못할 물건도 아니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죄진 기분이 들었다”면서 “그날 이후 지하철 자판기 싸구려 콘돔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청소년의 콘돔 구입과 사용은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청소년이 실제 콘돔을 구입하기란 쉽지 않다. 사진은 한 지하철역 화장실 앞에 있는 콘돔 자판기 모습. / 선명수 기자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등에서 판매자들이 청소년도 콘돔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청소년이 무슨 불장난이냐’는 선입견으로 판매를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슈퍼마켓 직원은 “술·담배와 마찬가지로 미성년자에겐 콘돔을 팔 수 없다”고 했다. 콘돔 진열대에 아예 ‘미성년자 구입 금지’ 딱지를 붙인 편의점도 있었다. 반면 서울 송파구의 한 편의점 주인은 “중·고등학생들도 종종 콘돔을 사간다”면서 “이런 것도 사가는데, 요즘 애들을 옛날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며 계산대 옆에 놓여져 있던 임신진단키트를 흔들었다.

온라인에서는 더 어렵다. 네이버·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콘돔’을 검색하면 뉴스 등 일부 항목을 제외하고는 정보 접근이 차단돼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하려면 로그인 등 성인 인증을 거쳐야 한다. G마켓, 11번가 등 대형 인터넷 쇼핑몰에서 콘돔을 검색해도 ‘19금’ 마크와 함께 “본 상품은 청소년 유해매체물로서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이용할 수 없다”는 문구가 뜨며, 연령 인증 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다.

이는 청소년에 대한 특수형 콘돔 판매를 금지한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청소년 유해물건 고시’(2011년 4월)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여가부 고시가 정한 청소년 유해물건은 요철식 특수콘돔(돌출형 콘돔), 약물 주입 콘돔(사전지연형 콘돔) 등 특수콘돔이다. 이외에 일반형·초박형 콘돔은 청소년도 살 수 있다.

한 인터넷쇼핑몰에서 ‘콘돔’을 검색하자 성인 인증을 하라는 안내 문구가 나온다.
있지만 없는 10대의 성
왜 일반형은 되는데 특수형은 안 될까. 청소년보호법 2조는 ‘청소년 유해물건’을 “청소년에게 음란한 행위를 조장하는 성기구 등 청소년의 사용을 제한하지 아니하면 청소년의 심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성 관련 물건”이라고 정의한다. 동법 시행령도 “청소년에게 음란성이나 비정상적인 성적 호기심을 유발할 우려가 있거나 지나치게 성적 자극에 빠지게 할 우려가 있는 물건”을 유해물건의 결정 기준으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 돌출형 콘돔이 청소년의 ‘음란한 행위’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여가부의 설명도 비슷한데, 여가부 관계자는 2015년 말 한 언론에 “청소년들이 성관계를 할 때 쾌락을 느낄 우려가 있어 판매를 금지했다”고 말해 논란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해당 발언이 보도된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그럼 청소년이 쾌락을 느끼려고 섹스하지, 임신을 목적으로 섹스하냐.”

문제는 여가부가 “누구나 접속할 수 있다”고 해명했던 온라인 콘돔 판매 사이트에 대한 청소년 접속은 여전히 어렵다는 점이다. 일반 콘돔과 특수형 콘돔을 일일이 구분해 팔기 어렵다보니 개별 쇼핑몰은 물론 주요 포털사이트들도 일괄적으로 ‘19금’ 인증장치를 해둔 탓이다. 한 콘돔 판매업체 관계자는 “대부분의 판매회사들이 여러 종류의 일반형·특수형·초박형 콘돔 등을 동시에 판매하는데, 이를 분류하기가 쉽지 않아 통으로 검색 제한을 하는 것”이라며 “일단 걸려서 벌금을 내는 것보다는 판매자 입장에서 안전한 선택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소년 피임의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보다 청소년의 성과 피임, 그 자체에 대한 사회적 시각일 것이다. 누구나 안전하게 임신을 선택하거나 피할 권리가 있지만, 이는 유독 청소년들에게는 예외다. 그만큼 청소년에게 성과 욕망은 ‘있지만 없는’ 존재로 취급당한다.

올해 초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에서 여고생이 아기를 출산하고 곧 숨지자 이를 소화전 등에 숨겨오다 사체유기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는 물론 10대의 출산과 영아 유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은 일제히 ‘철없는 10대’, ‘무지해서 비정한 모정’ 등의 제목을 달아 이를 보도했다.

그만큼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 혹은 낙태는 소수의 비행이나 비극으로 여겨지고, 임신한 청소년에 대한 자퇴 권유가 공공연하게 이뤄질 정도로 이들은 사회에서 수용 불가능한 존재로 취급된다. 청소년의 임신, 출산, 낙태가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라면 이를 예방하기 위한 피임교육이 무엇보다 강조돼야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여전히 피임보다는 순결교육이 우선된다.

금기 대신 안전한 피임 권리를
청소년의 성적 행위를 무조건 덮어놓고 외면하려는 경향이 문제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중·고교생의 성관계 경험률은 4.6%다. 남성이 6.3%, 여성이 2.8%였다. 고교 남학생의 경우 경험률이 8.2%로, 전체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인솔교사의 지시 아래 학교 컴퓨터실에 모여 설문지에 응답한다는 특성상 ‘솔직한 답변’에 한계가 있어 실제 수치는 그보다 높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목할 점은 성관계 시작 연령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10년 전인 2006년엔 성관계 평균 시작 연령이 13.9세(남성 13.7세, 여성 14.4세)였지만, 지난해에는 13.1세까지 낮아져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05년 이후 가장 낮았다. 반면 청소년 성관계 경험자의 피임 실천율은 지난해 51.9%로, 절반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여성가족부가 2014년 실시한 ‘청소년유해환경 접촉 종합실태조사’에서는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답한 여성 청소년의 21.4%가 임신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생은 고교생에 비해 성관계 경험은 적었지만, 임신 경험률은 두 배에 달하는 등 고교생보다 임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임신 경험 학생 중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한 여학생은 81.0%로, 10명 중 8명꼴이었다.
편견만 낳는 성교육
당장 학교 담장 밖으로 눈을 돌리면 온갖 성적인 메시지가 넘쳐흐르고 TV만 켜면 교복 입은 아이돌 가수의 ‘섹시 댄스’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유독 학교 안에서는 금욕을 기반으로 한 성교육이 이뤄진다. 불과 10여년 전 일선학교 여학생들에게 배포됐던 ‘순결캔디’가 그러했고, 순결캔디의 ‘하드코어, 혹은 협박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낙태 비디오 시청 등이 그렇다. 하지만 임신 중절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는 교육, 성병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교육만으로는 실제 성관계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조심해야 하는지 배울 수 없음을 21.4%(성관계 경험 청소년의 임신 경험률)라는 숫자가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이 “가장 좋은 성교육은 곧 ‘피임 교육’”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교육 현장의 성교육 실태는 어떨까. 다음은 교육부가 체계적인 성교육을 하겠다며 2년간 6억원가량의 연구비를 쏟아부어 2015년 내놓은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의 내용이다.

성폭력 대처법 생각하기-이성 친구와 단둘이 집에 있을 때/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초등 3·4학년 교사용 지도서)

남성은 돈, 여성은 몸이라는 공식이 통용되는 사회 속에서는 데이트 비용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원하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원치 않은 데이트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등)

남성의 성에 대한 욕망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급격하게 나타난다.(초등 1·2학년)

이런 식의 성교육은 어떤 국가에선 ‘불법’이 될 수도 있다. 미국 8개 주는 성교육의 내용이 문화적으로 편파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며, 13개 주는 성교육 내용이 의학적으로 정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성의 성은 충동적’이라는 교육이 그 자체로 불법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얘기다.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표준안 수정을 위한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3월 새학기부터 새 표준안을 각 학교에 배포할 계획이었지만, 정책연구 결과 표준안 자체는 수정하지 않고 일부 교사용 참고자료만 고치기로 해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특히 성소수자와 동성애 관련한 내용을 표준안에서 제외하는 기존 방침을 유지키로 해 비판여론이 거세다.

원치 않은 임신을 피할 권리
청소년의 섹스와 피임이 금기가 되는 우리 현실과 달리, 외국의 경우 학교에서의 피임약 및 콘돔 무료 배포는 물론 청소년을 위해 다양한 피임법을 지원한다. 세계 최초로 성교육을 의무화한 스웨덴은 1944년부터 공립학교에서 성교육을 실시했고, 현재는 만 5세부터 성교육을, 15세부터는 구체적인 피임 교육을 한다. 그 결과 스웨덴의 10대 임신률은 전 세계 최저 수준이다. 독일은 18세 미만의 청소년에 대해 의사의 처방을 받은 피임법과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프랑스는 15~18세 청소년에게 응급피임약과 일반 경구피임약, 호르몬 루프와 같은 피임법을 무상 제공한다. 영국은 비영리단체 ‘브룩(Brook)’에서 20세 이하 청소년을 위해 무료 성 건강 서비스와 클리닉을 운영한다. 영국 국가건강서비스(NHS) 홈페이지에는 청소년들에게 ‘부모님에게 말하도록 하지 않으니 걱정 말고 찾아오라’는 안내문 역시 적혀 있다. 캐나다 역시 안전하고 위생적인 자위 방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등 적극적인 성교육을 실시해 1995년 1000명당 49명이었던 청소년(15~19세) 임신율을 2005년 29명으로 끌어내렸다.

한국은 피임과 관련한 거의 모든 의료적 행위가 비급여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10대 피임약 처방의 65%(2015년 기준)를 차지하는 응급피임약(사후피임약) 역시 비급여인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처방과 구입에 3만~4만원이 들어간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현재와 같이 피임에 대한 교육과 인식이 척박한 상황에서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것은 응급피임약 의존을 더 높일 수 있어 당장은 시기상조일 수 있으나, 피임에 대한 의약품 접근권은 궁극적으로 높아져야 한다”면서 “장기적으로는 피임약에 대한 보험급여화와 함께 피임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공적 재원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윤중 기자
“청소년도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다”
인스팅터스 성민현 공동대표 /인스팅터스 제공
대다수의 인터넷 쇼핑몰이 성인임을 인증해야만 콘돔을 구입할 수 있지만, 반대로 청소년 인증을 하면 콘돔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는 통로도 있다. 소셜벤처기업 인스팅터스가 진행하는 ‘프렌치레터 프로젝트’다. ‘누구나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를 내걸고 청소년의 피임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고, 2014년에는 ‘이브콘돔’이란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다. ‘청소년 쾌락통제법’이라 불리는 여성가족부 청소년유해물건 고시(청소년에 대한 특수형 판매 금지) 폐지를 위한 헌법소원 역시 준비 중이다. 인스팅터스의 성민현 공동대표(26)를 만났다.
프렌치레터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 “예전부터 10대의 섹슈얼리티에 관심이 많았고, 그게 사업을 시작하게 된 문제의식이었다. 저 자신부터 10대 때부터 성에 관심이 많았는데, 매우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이 성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고 콘돔 등 피임법에 대한 접근성도 너무 떨어진다. 뜻 맞는 고교 동창 2명과 함께 콘돔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부끄럽지 않아요’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열어 청소년에겐 무료로 나눠주고 성인들에겐 팔다가, 2014년 1월부터 ‘이브’를 론칭해 직접 콘돔을 제작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2개씩 원하는 청소년에게 배송해준다. 부모님한테 걸려서 맞았다는 청소년의 연락을 받고 나선 ‘가명’으로 보낸다.” 청소년들에게 피임법만 구체적으로 알려줘도 ‘섹스 조장’이라는 비판이 나오는데, 사업을 하는 동안 난관도 많았을 것 같다. “얼마 전 경찰 조사를 받고 왔다. 청소년 유해 물건인 돌출형 콘돔을 팔았다는 이유다. 약식기소가 됐고, 재판이 끝나면 고시 폐지를 위한 헌법소원을 내려고 변호사 선임을 마쳤다. 사업하다 나이 스물여섯에 빨간 줄이 생겨버렸다. 사실 많은 이들이 콘돔이 성인용품인지 아닌지, 일반인은 물론 판매자도 혼동하는 이유가 이 고시 때문이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일일이 따져보지 않고 관리도 잘 안 되는데, 특수콘돔 때문에 청소년들이 일반콘돔조차 제대로 구입하지 못하는 현실이 문제 아닌가. 여성가족부 주장으로는 특수콘돔이 청소년의 ‘심신을 해칠 수 있다’는 건데, 해외 자료를 보면 특수콘돔을 썼을 때 오히려 콘돔 사용률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시대착오적 발상이고, 언젠가는 바뀌어야 한다. 옳지 않은 제도를 바꾸는 것 역시 ‘이브’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의 콘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다른 구상은 있나. “콘돔 자판기 설치 사업을 진행 중이다. 서점, 약국 등 굉장히 여러 곳에 설치할 수 있다고 보는데, 사업주 입장에선 수익성을 따질 수밖에 없다 보니 생각보다 쉽진 않다. 청소년이 콘돔을 소지한다고 해서 성관계를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성경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추세에서 언제까지 청소년의 섹스를 쉬쉬할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한다.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고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고, 청소년도 예외는 아니다.” ‘이브’는 친환경·여성친화적 콘돔을 강조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콘돔에 들어 있는 니트로사민(2급 발암물질)과 파라벤을 제거했고, 합성착향료와 착색제도 사용하지 않았다. 국내 콘돔 제조업체 중 처음으로 국제동물보호단체인 페타(PETA)로부터 ‘비건(동물성 원료 미사용)’ 인증을 받았다. 친환경적인 콘돔을 제작하려고 처음엔 국내 상사들을 찾아갔는데 쉽지 않았고, 결국 동남아시아 생산업체 쪽으로 연락해 7개월간 샘플과 테스트 작업을 반복했다. 여성의 몸 가장 예민한 곳에 닿는 물건이지만 사실 콘돔시장은 두께만 강조하는 상당히 남성 중심적 시장이다. ‘이브(EVE)’라는 브랜드 이름처럼 여성 친화적인 콘돔을 만들고 싶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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