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脫北소녀, 유엔서 죽도록 일만한 北학교생활 폭로

유영대 기자 2017. 2. 1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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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아동권리委 "北에 아동협약 위배책임 물을 것"
스위스제네바 거리에서 전효빈양. 갈렙선교회 제공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의 악랄한 아동·청소년 강제노동 상황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0일(현지시간) 오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UN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 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전효빈(17)양은 북한 학교에서 진행되는 '모내기 전투' 등 강제노동 실태를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결연한 표정이었다. 억센 함경도 말투가 이어졌다.

효빈 양은 이날 북한에서는 소학교 때부터 무보수 노동력 동원이 강제로 이뤄진다고 폭로했다.
 
"가장 북쪽에 있는 북한 샛별군 산악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소학교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다녔어요. 총 6년을 다녔지만 일한 기억밖에 없습니다. 학교에서 여러가지 일을 시키기 때문에 공부한 기억보다 일한 기억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전수업을 하고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일하는 곳까지 2시간 정도 걸어가서 3시간 정도 일했다"며 "오후 시간은 모두 노동을 했다. 이런 일은 정기적인 작업"이라고 진술했다.

이어 "비와 눈이 많이 왔을 때 철길이나 도로 개보수 같은 일에 수시로 동원됐다"고도 했다.

그는 작업 때문에 오전 수업마저 하지 않는 날도 많았다고 전했다.  6월 한달간 모내기,  12월 눈이 올 때 일주일 '화목동원', 9월에 일주일 가을걷이 등이다. 

북한 여자 어린이들이 강제노동에 동원돼 철도위에서 돌고르기 작업을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남자 어린이들이 나무와 천막 등을 잔뜩 실은 수레를 끌고 있는 모습. 갈렙선교회 제공


그는 여름철 '모내기 전투'를 설명했다.

"2013년 6월 중학교 2학년 때 협동농장에 배치됐습니다. 한달간 공동생활을 하며 모내기작업을 했지요. 원래는 중학교 4학년부터 동원되지만 학교에 학생들이 많지 않아 2, 3학년 학생들까지 동원됐습니다. 하루에 100평 모를 심어야 잠을 잘 수 있었어요. 협동농장 안에 학생 1000명 정도가 있었고 선생님들이 감시하고 감독했습니다. 중학교 6학년 선배들은 1인당 130평 모를 심었습니다."     

오전 4시 30분~5시에 나가 8시까지 일하고 아침밥을 먹고 또 일했다. 밥은 옥수수밥, 염장무, 소금국이었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을 했다.  

교사들은 일하지 않고 학생들을 감시했다. 저녁이 되면 너무 피곤하고 지쳐 밥도 못먹고 잠이 들곤 했다. 이불을 주지 않아 겨울옷을 입고 잘 때가 많았다. 맨발로 논에 들어갔다. 
 한달간 모내기 작업이 끝나면 토요일 저녁이 됐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쉬고 화요일에 다시 학교에 갔다.

겨울철 작업인 '화목동원'(벌목동원)에 대해서도 진술했다. 

"50명 정도의 학생과 교사 3명이 산속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통나무로 오두막을 짓고 일주일간 잠잘 곳을 마련합니다. 먹을 것은 각자 집에서 김치나 옥수수, 염장무, 시레기 같은 것을 갖고 옵니다. 그리고 밥과 지어 함께 먹습니다. 학교마다 할당량이 있기 때문에 해뜰 무렵 나가 해가 지고 달이 뜰 무렵 집으로 돌아올 때가 많습니다 . 힘센 남학생들이 톱질을 하면 여학생들이 나무에다 못을 박고 끈을 끼워 큰 길까지 끌고 내려오곤 했습니다."

효빈 양은 "겨울 화목동원 때 너무 힘이 들어 눈물까지 흘렸다. 그래서 집에서 하루 쉬는 것이 나와 모두의 소원이었다"고 절절하게 털어놨다.

1m가 넘는 통나무를 하루에 총 4개를 끌어내렸다. 깊은 산속 수북히 쌓인 눈 속을 하루 10시간 이상 걸으면 손과 발에 온통 물집이 생기기 일쑤였다. 중간에 힘들다며 엉엉 우는 아이들이 잇따랐다. 도망치다 붙잡혀 매맞는 아이들도 있었다. 숙소에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 밥도 못먹고 그대로 쓰려져 잠드는 학생들이 많았다. 

노동 외에도 부담이 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경제과제'였다. 

매년 토끼가죽을 초등학생은 3매, 중학생은 5매를 학교에 바쳐야 했다.  또 1년에 한번 파철 5㎏, 파동 500g 등을 내야만 했다. 
 
학교가 ‘경제과제’라는 이름으로 숙제를 내면 학생들은 무조건 다해야한다고 했다.

학생들은 경제과제를 수행하지 못하면 대신 돈을 내야 했다. 

하지만 효빈양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에서 요구하는 경제과제와 현금 등을 내지 못하고 그 부담감으로 학교를 그만둔 경험을 절절하게 증언했다.
 
효빈 양은 특히 “북한에서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 자동적으로 소년단에 가입된다"며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조직생활을 하면서 노동을 착취 당한다"고 했다.

또 "매주 소년단 조직생활 총화를 해야 한다"며 "자기비판을 하고 다른 소년단원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을 '호상비판'이라고 부르는데, 호상비판을 하지 않으면 집에 갈 때 책가방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때문에 할 수 없이 남을 비판하게 된다. 그러니 서로 미워하게 되고 비판한 학생에 대해 앙심을 품고 평소 다른 사람을 살피게 된다"고 했다. 

효빈 양은 증언 말미에 "아직도 북한 아동 및 청소년들은 이런 노동을 착취 당한다"며 "더 억울한 것은 그들은 그것을 아동인권 착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응당 한해가 돌아오면 해야 되는 일들 중 한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참석자들은 효빈 양의 증언을 유심히 듣고 무척 마음이 아프다고 입을 모았다.

유엔 관계자는 "효빈 양의 증언 등을 토대로 북한에 유엔 아동협약의 위배를 묻는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11일 국민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밝힌 효빈 양의 북한생활은 지난(至難)했다.

효빈 양은 2015년 10월 탈북했다. 먼저 탈북한 엄마와 함께 남한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다.

전효빈 양(왼쪽)과 김성은 목사. 갈렙선교회 제공

탈북과정에서 갈렙선교회 대표 김성은 목사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효빈 양은 장래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효빈 양은 "죽도록 일만했던 북한과는 달리 자유롭게 놀고 공부할 수 있는 남한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고 털어놨다. 

이어 "북한에 일하다 다친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의사가 돼 통일이 되면 올라가 불쌍한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싶다"고 희망을 내비쳤다. 

김 목사는 "효빈양이 고생을 많이 했다. 탈북하다 붙잡혀 강제북송을 당해 고생했고 혼자 북한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척 고생한 아이라서 이번에 유엔에서 증언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또 "효빈 양이 다행히 남한에서 엄마를 만나 잘 생활하고 있다.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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