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멋따라] 고즈넉한 겨울산행..속리산 명소 '세조길'

입력 2017. 2. 1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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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년 전 세조 발자취 따라 새로 낸 탐방로, 노약자한테도 적합

(보은=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속리산에는 세조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그를 태운 가마가 무사히 지나도록 스스로 가지를 들어줬다는 명품 소나무 정이품송(正二品松)에서부터 복천암, 목욕소 등에 세조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종실록에는 1464년 즉위 10년째를 맞은 세조가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충청도 순행(巡幸)에 나선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이야 승용차로 2시간이면 넉넉히 이동하는 거리지만, 당시 순행은 한 달 넘게 걸리는 길고도 먼 여정이었다.

한양을 떠난 세조는 선왕인 세종이 눈병을 치료했다는 청주 초정약수를 거쳐 곧바로 속리산으로 향했다. 한글창제에 주도적 역할을 한 뒤 속리산 복천사(지금의 복천암)로 내려와 수양하던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이 절에 사흘간 머물면서 목욕소라고 불리는 계곡에 몸을 씻어 병을 치료한다. 그러고는 감사의 뜻을 담아 절을 중수하고 '만년보력'(萬年寶歷) 이라고 쓴 현판도 하사한다.

그의 이 순행에 대해 일각에서는 노년의 세조가 왕위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악행을 참회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스승 겪인 신미대사를 찾았다는 주장도 있다.

◇ 단풍 아름다운 세조길…국민공모로 이름 정해

당시 속리산을 찾은 세조의 마음이야 알 길 없지만, 그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밟아볼 수 있는 고즈넉한 탐방로가 작년 가을 새로 만들어졌다.

법주사∼복천암 바로 밑 목욕소를 잇는 2.35㎞의 좁은 길인데, 국민공모를 거쳐 '세조길'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나무 데크와 황톳길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이 길은 개통되자마자 속리산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자연환경을 그대로 살린 오솔길인 데다, 길옆 계곡과 저수지에 비친 속리산의 속살을 감상할 수 있어 지난해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추천한 '국립공원 단풍길 10선'에 뽑히기도 했다.

세조길은 속리산 잔디광장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아름드리 송림에 둘러싸인 오리(五里)숲을 지나야 만날 수 있다.

법주사와 문장대 탐방로가 갈라지는 삼거리(남산화장실 앞)에서 시작된다.

이곳에는 원래 폭 4∼6m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는데, 사찰이나 휴게소를 드나드는 차량과 탐방객이 뒤엉켜 사시사철 복잡하고 소란스럽다. 차분하게 사색하거나 호젓한 산행을 기대했다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곳이다.

세조길은 이 도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저수지 건너편의 산기슭을 타고 이어진다. 가파른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고, 바닥도 야자매트와 폐목블럭 등으로 돼 있어 진흙 위를 걷는 것 같은 푹신함을 경험할 수 있다.

오랫동안 사람 왕래가 없던 곳이어서 길 주변에는 노송과 참나무 등이 즐비하다. 나무가 내뿜는 항균물질인 피톤치드 발생량이 많아 몇 걸음 걷다 보면 저절로 머릿속이 맑아지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세조길의 피톤치드 발생량은 하루 3.73ppt에 이른다. 산림청이 정한 '치유의 숲' 기준치(3.0ppt)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음이온 발생량 또한 하루 3천290개/㎤로 기준치(2천/㎤)보다 1.6배가 높다.

천천히 산책하면서 심호흡만 몇 번 해도 일상에서 쌓인 심신의 피로를 눈 녹듯 풀린다는 얘기다.

◇ 장애물 없는 탐방로…문장대 오르기도 수월

출발지부터 절반가량은 휠체어나 유모차도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무(無)장애' 구간이다. 남산화장실∼탈골암(1.2㎞) 사이로 흔한 계단 하나 없이 평평한 길로 만들어졌다. 이 구간을 이동할 때는 빠르게 걷지 말고, 오감을 활짝 펼쳐 사색하면서 자연이 주는 싱그러움에 빠져드는 것도 좋다.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 측은 "길이 평탄하면서도 경치가 좋아 누구나 숲의 매력에 취할 수 있는 곳"이라고 치켜세웠다.

세조길은 법주사 수원지를 감싸고 흐른다. 군데군데 교량 구실을 하는 나무데크가 저수지를 지그재그로 넘나들면서 탐방객을 안내한다.

오염원이 없는 숲 속 저수지여서 물속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얼음이 풀리고 나면 물고기가 노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저수지 주변은 희귀 야생동물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다. 멸종위기종 Ⅰ급인 수달을 비롯해 Ⅱ급인 담비·삵 등이 관찰되고, 운이 좋으면 물가에서 목을 축이는 노루나 고라니도 만날 수 있다.

저수지를 통과해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널찍한 물웅덩이를 만난다. 세조가 몸을 씻어 병을 치료했다는 목욕소다.

안방만 한 크기의 목욕소는 그리 깊지 않다. 그러나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내려 여름철 등산객의 땀을 식혀주는 휴식처가 되는 곳이다.

여기부터는 종전 탐방로와 다시 만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곳부터 세심정휴게소까지 270m 구간에 세조길을 연장한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목욕소에 도착하면 느린 걸음으로 움직여도 1시간 30분 정도면 속리산의 상징인 문장대(해발 1천54m)를 밟을 수 있다.

거대한 암석 봉우리인 문장대는 3번 올라야 극락에 간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세조길이 나면서 '극락 가는 길'이 한층 수월해진 것이다.

세조길은 침체된 속리산 관광경기를 살리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세조길이 개통되면서 작년 속리산 관광객은 9.7% 늘었다.

보은군 관계자는 "세조길을 걷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탐방객이 몰리면서 법주사 지구가 모처럼 활기를 찾았다"며 "꼬불꼬불한열두구비 말티재 정상의 생태축이 올해 복원되고, 바로 옆 꼬부랑길 등 새 탐방로 공사가 마무리되면 더 많은 탐방객을 끌어모으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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