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AI 속 양계농민의 한숨..'乙의 눈물'로 튀긴 치킨

2017. 2. 11.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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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대한민국 치킨전’

하루에 달걀 프라이 두 개는 먹어야 성이 차는 내게 요즘 같은 시련기가 없다.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갑절 이상 오른 달걀값에 달걀 프라이 없는 식탁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인고의 세월이 지나 달걀값이 안정되는가 싶더니, 이제 닭고기 가격이 올랐다. 닭고기로 만든 요리야 참을 수 있다지만 아뿔싸! 1인 1닭까지는 아니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치킨을 찾는 아들들은 어찌 달랜단 말이냐.

치킨집이 가격을 올린 것도 아닌데 무슨 호들갑이냐 타박하겠지만, 기시감이 들지 않나. 원유값 올랐다는 뉴스만 나오면 주유소 가격은 득달같이 올랐다. 김장철 배추와 무도 그렇게 가격이 올랐다. 닭고기 가격이 들썩였으니 치킨값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쯤에서 ‘대한민국 치킨전’이라는 책을 보자. 2014년 7월 출간된 책이니 통계에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치킨’을 통해 바라본 한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일반이다. 농사짓던 부모 슬하에 자라 대학 시절에는 ‘농활의 여왕’이라 불렸고, 내친김에 ‘농촌·농업 사회학’을 공부한 저자 정은정은 먼저 통닭의 추억을 소환한다. 얼큰하게 취한 아버지가 누런 봉투에 담아 온 통닭에서 비롯된, 백숙·삼계탕·전기구이통닭·치킨으로 이어지는 닭요리 변천사는 우리 식탁사의 변천사라고도 할 수 있다.

신조어 ‘치맥’을 만든 치킨은 1997년 이후 국내 외식 메뉴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치킨 전성시대가 된 데도 미국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1960년대 이전부터 미국이 밀가루를 원조했고, 거대 곡물복합체 회사들은 콩을 양산해 닭 사료와 식용유를 만들 수 있게 도와줬다. 콩을 먹고 자라 콩으로 만든 콩기름에 튀겼으니 “콩닭” 아니냐고 저자는 되묻는다.

●프랜차이즈 본사, 자영업자에 갑질

이내 미국은 옥수수를 주요 곡물로 내세웠는데, “옥수수 씨눈에서 기름을 짜내 닭을 튀기고 남은 옥수수는 닭의 사료로 먹이며, 양념치킨의 핵심 재료인 물엿은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것”이니 이제는 콩닭 아닌 “콘닭”으로 진화했단다. 저자의 아재개그, 나름 수준 높다.

치킨의 역사만큼 치킨이 만들어 낸 현실을 체감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은 ‘완전경쟁시장’이다. 브랜드 인지도 1위의 치킨 프랜차이즈조차 시장 점유율 10% 안팎이다. 프랜차이즈마다 유명 아이돌을 내세우는 이유는 치킨이 주식인 젊은 세대를 잡으려는 방편이자 이 같은 시장구조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시장구조가 전쟁 수준이니, 직장에서 밀려나 어렵게 치킨집을 시작한 자영업자는 한숨 그칠 날이 없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에 눈물짓고, 때로는 ‘알바느님’ 모시기에 노심초사하고, 왜 ‘5000원짜리’ 치킨을 팔지 않느냐는 소비자의 눈총에 한숨 쉰다.” 그런데도 프랜차이즈 본사는 매달 가맹점비를 받으며 웃는다.

●육계기업 앞 하청 노동자 ‘양계농민’

웃는 곳이 또 있다. 대형 육계기업이다. 치킨의 원재료인 닭은 기업의 수직 계열화가 거의 완료된 상태로 상위 5개의 대형 육계기업, 그중 1등 양계기업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갑질은 여기서도 멈추지 않는데, ‘양계기업의 하청 노동자나 마찬가지인 양계농민’은 본사 규정에 맞추느라 거의 매해 계사(鷄舍)를 최신식으로 고친다. 그래도 수매 가격은 본사 마음이다. 요즘처럼 AI가 퍼지면 살처분과 파묻는 것만 해법으로 여기는 정부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한때 축제의 음식이었으나 이제는 일상의 음식으로, 하지만 그것에 생계를 내맡긴 사람들에게는 ‘슬픔의 음식’이 된 치킨. 치킨을 통해 본 한국 사회는 갑질이 일반화된 모양새다.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치킨은 문제적 음식이자 대한민국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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