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박물관에 전시된 현생인류는 모두 백인남자, 정말 화나요"

전현석 기자 2017. 2. 1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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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읽어주는 학자' 이상희 캘리포니아大 인류학과 교수
구부정한 인류가 진화했다?
기본적으로 인류의 몸집 200만년 전과 다르지 않아
피부가 하얗지 않은 사람 훨씬 더 많았고요
고고인류학 전공한 계기
원래 음대에 진학하려다 점수에 맞춰 학과 찾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가 가나다순 처음 눈에 띄어
그냥 선택했죠
신체골격만 봐도 인생 보여
모두가 등산복 차려 입은 아줌마 단체 해외관광객
몸을 보니까 눈시울이..
대부분이 '0'자형 다리
일 많이 했다는 증거죠

이상희(51)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 캠퍼스(UC Riverside) 인류학과 교수는 '뼈 읽어주는 학자'다. 수십만~수백만년 된 사람 뼈와 화석, 그 유전자에 남겨진 흔적을 바탕으로 인류의 기원과 진화를 추적한다. 이 교수는 2015년 '인류의 기원'이라는 책을 냈다. 과학서적이 5000부만 팔려도 대박이라는 우리나라 출판 시장에서, 이 책은 2만부 넘게 팔렸다. 해외 출간도 앞두고 있다. 작년 말 미국 출판사 '노턴 앤드 컴퍼니'를 비롯해 중국·대만·그리스 출판사와 계약을 마쳤다. 스페인 출판사와도 협상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비소설 분야 서적이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책에서 복잡한 학술 용어 대신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왜 혼자서 출산하기 어렵게 진화했나' '나이 들면 머리가 굳는다는 건 진짜일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이를 풀어나간다. 그의 강의도 인기다. 인류학 개론 수업의 정원은 400명인데, 대기자가 100명이 넘는다.

"미국에서 처음 교수가 됐을 땐 인기 없었어요. 강의 평가도 안 좋고. 저는 하나를 가르치면 100을 깨우치는 정말 천부적인 학생이었는데(웃음), 그것 때문에 괴로웠죠. 학생들한테 이 정도 설명해주면 되겠지 하는데 못 알아들으니까요. 아주 쉬운 내용도 물어보는 학생들이 뻔뻔하게 느껴졌어요. 나는 가르치는 데 소질이 없나, 교수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다가 깨달았죠. 옛날부터 학생 100명 중 80명은 제대로 배운 게 아니었겠구나. 그렇다면 교습의 기준도 1, 2등이 아니라 80명이어야 한다는 것을요. 책 쓰기도 그렇게 시작된 거죠."

서양 남성 시각으로 덧칠된 인류사

―천부적인 학생에서 교수로 진화한 거군요.

"글쎄요. 진화라는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네요."

―어떤 면에서요.

"사람들이 흔히 진화를 진보의 개념으로 생각하잖아요. 치킨의 진화, 냉장고의 진화 이런 식으로 광고도 하고요. 그런데 진화에는 어떤 절대적인 가치가 들어가 있지 않아요. 어쩌다가 갖게 된 특성이 우연하게 바로 그 순간의 환경에 적합하다면 유리하겠지만, 전혀 다른 환경에선 오히려 불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인류는 마치 진화에 최종 목표가 있는 것처럼 꾸미고 여기에 가치를 부여해 왔어요. 인종이란 개념이 특히 그래요. 인간의 다양성은 끝이 없는데 이를 피부색으로 나누고 우열을 가르죠."

최근 한국에 온 이 교수를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만났다. 그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 마네킹을 일렬로 세워놓은 전시실을 보고 흥분했다. "제가 이런 거 볼 때마다 정말 열 받아요. 인류의 진화라면서 처음엔 구부정하다가 나중에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걷잖아요. 몸집도 커지고, 털 많고 검은색이었던 피부는 점점 매끈하고 하얗게 변하고요. 박물관에 가보면 현생인류의 상은 키 크고 잘생긴 백인 남자예요. 그리고 시선은 약간 30도 위를 바라보죠. 마치 인류의 나아갈 길을 인도해주는 느낌으로요. 그런데 이게 다 서양의 백인 남성 정치가 개입돼서 그렇지, 사실과 달라요."

―예를 들면요.

"기본적으로 인류의 키는 200만년 전부터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그때 180㎝ 정도 됐을 것으로 추정하거든요. 피부 하얗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고요. 왜 꼭 인류의 진화 과정은 남성으로만 설명되는 건가요?"

당장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라도 하려는 기세였다. 그러더니 "저는 원래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요. 원래 피아노로 음대 가려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 간 거죠" 한다.

―어떻게 운명이 바뀌었나요.

"실기시험을 앞두고 슬럼프에 빠졌어요. 제가 학력고사 세대인데, 시험은 또 잘 봤어요. 점수 맞춰서 학과를 찾다가 고고미술사학과가 눈에 확 들어온 거죠. 가나다순으로 정리한 학과명 중 제일 처음에 있었거든요."

―공부가 잘됐나요.

"제가 85학번인데, 당시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죠. 저는 서울 토박이였고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어요. 그때 지방 출신으로 점심값이 없어서 굶는 친구도 많았어요. 노동운동, 학생운동에 대한 얘기는 자주 들었지만 소심했던 저는 거리로 나설 수 없었고요. 굉장히 자괴감이 많았던 나날이었죠. 고고미술사학과에 다니면 고고학이나 미술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요, 저는 남자들이 많이 지원하는 고고학을 선택했어요. 학교는 너무 황폐하니까 밖에 나가서 삽질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한 거죠. 제가 옛날부터 힘이 세고 몸으로 때우는 건 잘했거든요."

―삽질을 잘했다고요.

"처음엔 재미없었어요. 교수님께서 선문답 식으로 말씀하시면 저희가 알아서 깨쳐야 하고. 그러다 지금 서울대 박물관장이신 이선복 교수님 덕분에 고고학의 매력에 빠져들었죠. 가설을 세우고 자료를 통해 검증하는 과학적인 접근을 했거든요."

'점수 맞춰 간' 대학에서 만난 고고학

이상희 교수는 대학 졸업할 때쯤 당시 선경(현재 SK)에서 만든 한국고등교육재단 5년 장학생으로 선발됐고 "뼈와 화석을 연구하기 위해" 미국 미시간대로 떠났다. 그때부터 고인류학에 대한 이 교수의 여정이 시작됐다.

"초기에 고생 좀 했죠. 미국에서 고인류학은 기본적으로 과학이거든요. 생물학, 유전학, 해부학 등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어요. 그것도 영어로요."

이 교수는 1999년 고인류학 박사가 됐지만 1년 동안 미국도 한국도 아닌 일본의 종합연구대학원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한국에는 아예 자리가 없었어요. 선배들은 일단 한국에 들어와서 교수들한테 비비면서 얼굴도장 찍으라고 했는데, 그건 못 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일본 유전학 진화를 연구하는 팀에서 뼈·화석을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가게 된 거죠."

이 교수는 일본에서 야쿠자 모임에 참석할 뻔했다. 야쿠자를 조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는 한 기자에게 "2차 대전 당시 사라진 베이징인(호모 에렉투스의 일종)의 원본 화석을 야쿠자가 손에 넣었는데, 야쿠자 입회식에 비밀리에 등장시킬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함께 가서 확인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 미국에 있던 지도교수님한테 상의했더니 절대 안 된다고 말리더라고요. 그 교수님은 제가 일본에 있으면 일 나겠다 싶었던지 '1년짜리 조교수 자리가 났으니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라'고 하더군요."

―용기가 많네요.

"저는 정말 소심해요. 그런 제 성격이 싫어서 제 나름대로 찾은 해결책이 '아무거나 접근법'이에요. 그냥 눈 딱 감고 아무거나 결정합니다. 선택하기 전에 오래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워지거든요. 대신 한 번 결정하면 옳은 결정으로 되게끔 힘씁니다."

―뼈를 연구하는 게 재밌나요.

"아니요. 지겹죠. 재미는 10%도 안 되고, 그것도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죠. 하나의 가설을 증명하려고 뼈 수백, 수천개를 분석하는 건 단순노동의 반복일 수 있어요.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고인류학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계속 매일매일 하는 게 중요해요."

―20년 넘게 뼈를 연구했으니 사람의 신체 골격만 봐도 인생이 보일 것 같네요.

"몇 년 전 인천공항에서 미국으로 출국하려고 기다리는데 아줌마 단체 해외 관광객들을 봤어요. 모두 등산복으로 차려입었더라고요. 그때 한국에선 '아저씨 아줌마들이 센스 없게 등산복 입고 해외여행 간다'고 뭐라고 하던 때였는데요. 그분들 몸을 보니까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머리에서 어깨로 내려오는 승모근이 두껍고 O자형 다리가 많더라고요. 일을 많이 했다는 증거죠. 장딴지(종아리)가 짧은 분이 대부분인데, 어릴 때 영양 상태가 나빴다는 얘기죠. '어렵게 자라서 평생 일만 하다가 드디어 해외여행 나가시는 분들이구나. 그런데 등산복 입었다고 왜 욕하나' 싶더라고요." 이 교수는 작년 UC 리버사이드 인문예술사회과학대학 부학장이 됐다.

아줌마 관광객 골격 보고 울컥

―미국 출신도 아니고 아시아계 여성으로 그 자리까지 오르는 데 힘들었겠군요.

"힘든 일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지요. 그럴 때마다 살아오면서 받았던 무수한 도움의 손길을 생각해요. 이제는 제가 도울 차례죠. 또 제 딸(10살)을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는 놀이터에서 놀 만큼 놀았어요. 이제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놀이터에 있는 쓰레기 치우고, 장애물 청소하고 깨끗하게 정리정돈해야죠. 이를 위해서 더 노력합니다."

이 교수는 "인류의 특징이자 장점은 '넘어섬'"이라고 말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물이 피보다 진할 때가 많아요. 혈연관계를 넘어서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돕고 연대하죠. 현실을 넘어서 이상을 꿈꾸고요. 인류의 희망과 미래도 여기에 있는 거겠죠."

'인류의 기원' 마지막 장은 이렇게 끝난다. "한 사람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미미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경험이 있습니다. 미지의 대륙을 향해 폭발적으로 번져나갔고 정교한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셀 수 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다채로운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보여줄 작은 행동들은 결코 미미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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