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잠이 보약'인데 알면서도 못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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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부족 사회…한국인 ‘잠 통장’은 마이너스
▶간호조무사 다정씨·39세 “나흘 걸러 밤샘 근무…원형탈모 생겨”
1998년에 입사했으니까 병원에서 일한 지 벌써 20년째네요.
재작년 가을쯤 내과 병동에서 응급실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지옥문’이 열렸어요. 응급실은 3교대 근무를 하는데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하는 ‘나이트’ 근무가 매달 6~8번 있거든요. 그전엔 밤새 일해본 적이 없었어요. 늘 자던 시간에 못 자고 일한다는 게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아침에 퇴근하면 버스 타자마자 자면서 가요. 집에 도착하면 씻지도 못하고 쓰러져서 잠드는데 기가 막힌 게 두어 시간이면 또 눈이 떠져요. 집이 1층인데 주변이 시끄럽고 환하니까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좀 자야 다음날 또 일하러 가는데 미치는 거죠. 3개월 만에 원형 탈모가 왔어요. 밤에 일하다 말고 500원짜리 동전 크기로 머리가 뭉텅 빠진 걸 동료가 발견해서 얘기해주는데….
그동안 저는 죽어라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결국 월세 계약도 안 끝난 집을 놔두고 이사를 갔어요.
새집 고를 땐 주변에 아기 키우거나 강아지 키우는 집이 있는지 엄청 따졌죠. 암막 커튼 치고 온수매트도 사고 잠들려고 별짓 다 했어요. 자다 깨다 해도 토막잠이라도 모아서 하루에 6~7시간씩 자게 된 게 이제 한 3개월 됐으려나. 주변에 저처럼 잠 못 자는 동료들 얘기 들어보면 집에 벽시계도 못 단대요. 째깍째깍 그 소리에도 잠이 깬다고. 생활이 이러니까 일할 때도 늘 피곤하죠.
밤 근무하면 새벽 3~4시쯤이 제일 졸려요. 잠 깨려고 커피니 사탕이니 간식거리 달고 살고요. 잠 잘 자려고 술 마시고 잠자리 들 때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체중이 5㎏이나 늘고 ‘이상지질혈증’도 생겨서 한동안 식이 조절하느라 고생 많이 했죠. 지금은 서로 많이 배려해주지만 처음엔 가족들하고도 트러블이 많았어요. 잠 깨우면 제가 신경질을 많이 냈거든요. 잠 못 자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안 겪어본 사람은 정말 모를 거예요.
올해 제 목표가 뭔지 아세요. ‘2017년엔 잠꾸러기 되어보기.’ 카톡 프로필에도 적어놨어요. 근데, 이게 과연 될까요.
▶화물트럭 기사 춘배씨·50세 “휴게소에 차 대고 쪽잠, 그렇게 20년”
화물차 몰고 다닌 건 20년 훌쩍 넘었지. 처음엔 일반 트럭 하다가 컨테이너 싣고 다니는 대형 트레일러 운전한 지는 이제 10년쯤 됐고. 운행 구간은 부산에서 수원이나 용인 같은 경기 남부권. 부산항 컨테이너 부두에서 짐을 싣고 밤에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 8시고 9시고 정해진 시간까지 목적지로 가는 거야.
내비게이션 찍어보면 4~5시간 거리인데 우리처럼 큰 차는 속도가 안 나니까 좀 더 걸려. 밤새 운전하니까 졸리고 배도 고플 거 아냐. 휴게소 두어번 가면 2시간이 금방 날라가 버려.
그렇게 버티면서 올라오다가 정 졸리면 휴게소에 차 대놓고 3~4시간 쪽잠을 자지. 그나마도 새벽 1~2시 넘어가면 휴게소마다 주차할 데도 없어. 그럼 어쩔 수 없이 다음 휴게소까지 가야 되는데 그동안은 100% 졸음운전 하는 거야. 휴게소에 대형차 주차공간 좀 늘려달라고 그렇게 얘길 해도 정부는 수십년째 검토 중이라고만 하니깐 뭐. 차 대놓고 잔다 해도 그게 어디 자는 건가. 차 안에서 옷 입은 채로 그냥 기절하는 거지. 졸음을 못 이기니까. 어떻게 보면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잠을 떨치고 간다고 하는 게 더 맞겠네.
아무리 그래도 동트기 전 새벽쯤 되면 잠이 막 쏟아져. 나는 주로 담배 피우면서 잠을 쫓는데 그러다 보니 하루에 세갑씩 만날 줄담배야. 도착하면 짐 내리는 동안 1~2시간 또 새우잠을 자니까 계산하면 하루에 딱 6시간 정도 자는 셈인데. 나머지 17~18시간은 종일 차에서 운행하며 보낸다고 봐야지. 그렇게 일주일에 엿새 보내고 일요일 하루 집에 가면 잠자는 것밖에 할 일이 있나. 식구들도 나 잘 때는 집에서 발뒤꿈치 들고 다니잖아. TV도 개미 소리처럼 틀어놓고 보고. 그래도 뭐 작은 소리만 나도 벌떡벌떡 깨요.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인데. 우리는 고속도로에서 사고 났다 하면 바로 사망이잖아. 그만큼 예민한 거야. 혹시 차에 뭐 문제 있나 이러면서 깼다가 아 집이구나 하면서 또 자고. 이렇게 늘 긴장하고 잠이 부족하다 보니 장거리 운전하는 사람들이 다들 자기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인다고 하잖아. 내가 평생 운전대 잡고 살았지만 이런 얘긴 참 슬프다 그죠.
▶워킹맘 은영씨·37세 “일·육아 둘 다 하려면 잠 줄일 수밖에”
오전 6시. 오늘도 어김없다. 두 돌 된 아기는 매일 같은 시각에 정확히 눈을 뜬다. 일어나기가 무섭게 엄마부터 찾는 것도 한결같다. 내가 여전히 잠에 취해 입으로만 건성건성 대답하면 아기는 머리맡에 놓아둔 안경까지 집어다 주며 보챈다. “거실로 나가요. 얼른~”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기는 잠시도 입이 쉬지 않는다. 조그만 입을 오물거리며 말하는 그 모습이 귀여워 애써 잠을 쫓고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나지만 온몸에 덕지덕지 쌓인 피로는 그대로다. 아기를 보는 얼굴은 웃지만 사실 매일 아침 울고 싶은 심정이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6시간도 채 안 되는데 아침 기상이 가뿐하고 상쾌하다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닌가. 만성적 수면 부족은 아기가 태어난 뒤 2년 동안 변함없는 내 일상이다. 졸리고 피곤해 멍한 상태가 매일 반복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언제쯤 나아질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거다. 남편은 종종 평일에 못 잔 잠을 주말에라도 몰아서 자겠다며 낮부터 소파에 드러눕는다. 가끔은 아기도 재우면서 함께 낮잠을 잔다.
그럴 때 나도 잠시 쉬면 좋겠지만 그럼 밀린 집안일은 누가 다 하나. 아기가 잘 때는 아기가 옆에 있으면 방해가 돼서 평소 하지 못하고 미뤄둔 일들을 해야 한다. 독서나 족욕 같은 일상의 작은 즐거움들은 사치가 된 지 오래다. 당장 1시간 잠도 아쉬운 판에. 칼퇴근을 시켜주는 회사는 아니지만 매일 밤 12시에 퇴근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잘 시간이 부족하냐고 누가 물으면 울화통이 터진다.
워킹맘의 퇴근은 하루의 끝이 아니다. 퇴근하고 곧바로 집으로 출근한다는 말이 왜 나왔겠나. 어린이집 다녀온 아이의 도시락 등을 설거지하고 빨래와 청소까지 챙기고 나면 그제야 얼굴에 팩을 붙이고 소파에 앉아 한숨을 돌리는데 시계를 보면 이미 ‘다음날’이 시작돼 있다. 아직 읽지 못한 보고서나 회의 자료는 여전히 가방 속에서 꺼내지도 못했는데. 결국 워킹맘이 일과 육아를 둘 다 잘하려면 잠을 줄일 수밖에 없다. 턱없는 이 ‘슈퍼우먼’ 흉내가 언제까지 가능할까. 탄력근무제니 칼퇴근법이니 제도 개선을 말하는 대선 후보에게 내가 오늘도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기업 차장 지훈씨·45세 “아침 8시도 지각…야근·회식은 당연”
제 스마트폰 알람이 평일에는 오전 5시50분에 울리게 돼 있어요. 근데 웃기는 게 뭔지 아세요. 일주일에 서너번은 그거보다 일찍 눈이 떠져요.
간밤에 술을 떡이 되도록 마셨건 며칠 연속 야근을 해서 아무리 피곤하건 상관없이 그 시간 즈음 되면 저절로 눈이 번쩍 떠지면서 깨는 거예요. 몸은 여기저기 아우성을 치고 정신도 아직 몽롱한데 어쨌든 회사 갈 시간 됐다고 잠이 깨는데 이걸 뭐라고 해야 되나. 어떤 사람은 부지런함이 몸에 뱄다고 칭찬하거나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이건 좀 슬픈 거 아닌가요. 알람보다 먼저 깨면 막 고민을 하죠. 조금 더 자야 되나 말아야 되나. 대부분은 에이씨 조금만 더 자자, 이렇게 되긴 하지만.(웃음) 근데 그때는 잠이 또 안 와요. 그 시간부터 벌써 업무용 카톡방 딩동딩동 울려대고 그러는데 맘 편히 잘 수가 없죠. 저희 회사는 원래 8시 출근인데 그룹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분위기라 실제는 더 일찍 가야 돼요. 7시30분에 회사 도착하면 벌써 엘리베이터도 타기 힘들어요. 엘리베이터마다 줄이 다 늘어서 있거든요. 7시40분에 1층 로비에 도착했는데 엘리베이터 기다리다가 8시 넘어 사무실에 들어가서 지각으로 체크되는 경우도 있다니까요.
이렇게 일찍 나오려면 밤에는 그럼 일찍 들어가냐. 아니란 거 잘 아시잖아요. 회식에 야근에 개인적 술자리까지 끌려다니다 보면 일찍 들어가는 날이 일주일에 며칠이나 되겠어요. 그나마 선방하면 밤 9~10시 정도? 애들 안 자고 있으면 숙제랑 가방 싸는 거 챙겨주고 같이 책도 읽어주면서 ‘좋은 아빠’ 코스프레도 해야죠. 그러다 보면 금방 12시가 되더라고요. 지난달엔 애들 일찍 자는 버릇 들인다고 아내랑 네 식구가 다 같이 10시 되면 딱 불 끄고 자고 그랬어요. 그렇게 딱 일주일 하니까 아침마다 귀에서 윙 하고 울리던 이명이 사라지던데 기분이 참.
근데 제가 이런 생각 하는 거 회사에서 윗분들이 알면 큰일 나요.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저를. 그리고 대기업이 아무래도 사정이 나을 텐데 제가 이렇게 우는소리 하는 게 미안한 마음도 드네요.
<김형규·장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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