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추적>슬픈 개구리가 극우의 상징이라고?

문현웅 기자 입력 2017. 2. 10. 17:28 수정 2017. 6. 1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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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개구리./인터넷 캡쳐

너굴맨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좀 하신 분들이라면 꽤나 눈에 익었을 캐릭터다. 사람들은 그를 흔히 ‘슬픈 개구리’라 부른다. 누군가는 이 개구리가 극우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일베충의 아이콘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작가 의도와 어긋나게 ‘슬픈 개구리’ 그림이 사용되는 바람에 빚어진 오해다. 사실 알고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표정만큼이나 서러운 일을 겪어온 캐릭터다. 어떤 사연이 있는 녀석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시무룩한 개구리는 어쩌다 유행을 탔을까

/인터넷 캡쳐

이 개구리의 원래 이름은 ‘페페 더 프로그(Pepe the Frog)’로, 미국 작가 맷 퓨리(Matt Furie)의 만화 ‘Boy's Club’에 나온 캐릭터 중 하나다. 이 녀석은 남성이면서도 ‘나는 레즈비언’이라 적힌 셔츠를 입고 다닌다거나, 비디오 게임이 X같다며 키보드에 토하는 등 만화에서 온갖 기행을 벌이고 다닌다.

이처럼 하는 짓도 괴악한데 생김새도 오묘했던 덕에, 페페 더 프로그는 2008년 즈음부터 미국 내 커뮤니티 사이에서 짤방으로 발굴돼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특히 이 녀석을 애용한 사이트가 영어권 커뮤니티 사이트인 ‘4chan’이다. 이곳에서 페페 더 프로그는 잉여와 찌질이와 오타쿠들의 아이콘이 됐다. 생긴 거나 하는 짓이 너, 나, 우리와 똑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아는 사람만 아는 캐릭터로 일부 커뮤니티에서만 쓰이던 중, 갑자기 페페 더 프로그가 전 세계 뉴스를 타게 된다. 2015년 10월에 벌어진 ‘움프콰 칼리지 총기 난사 사건’ 때문이다. 범인이 4chan에 범행 예고 글을 올리며 페페 더 프로그의 사진을 함께 쓴 것이다. 13명이 죽고 7명이 다친 대형 사건인 만큼 세계 곳곳에 보도됐고, 페페 더 프로그도 덩달아 온 세계에 얼굴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원래 캐릭터와 전혀 무관한 ‘테러리즘’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된다.

움프콰 칼리지 총기 난사 사건 직전 범인이 4chan에 올린 게시글./인터넷 캡쳐

게다가 하필이면 도널드 트럼프와 엮이는 바람에 일이 더 꼬이게 된다. 미국의 일베라 부를만한 커뮤니티인 4chan /pol/(정치 게시판)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극우 국가주의적 우파 세력 네티즌들이 페페 더 프로그와 트럼프를 합성한 그림을 다수 만들어내 유포한 것이다. 인기 캐릭터에 트럼프의 이미지를 덧씌워 지지층을 넓히려는 시도였다 한다.

트럼프 개구리./인터넷 캡쳐

정치색이 입혀지며 페페 더 프로그의 이미지는 한층 더 왜곡되고 말았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도중 힐러리 클린턴 공식 웹사이트는 페페 더 프로그를 네오 나치의 상징이라고 공개 비난했다. 유대인 권익단체 중 하나인 ADL(Anti-Defamation League)에서도 같은 해 10월 페페 더 프로그를 나치식 경례와 같은 수준의 상징으로 공식 지정했다.

정작 페페 더 프로그 원작자인 맷 퓨리는 이런 상황을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텀블러에 진짜 페페 더 프로그가 트럼프 페페에게 오줌을 갈기는 그림을 올리고, 극우 세력이 페페 더 프로그를 이념적 상징으로 쓰는 것을 반대하는 ‘#SavePepe’ 해시태그를 만들었다. 여하간 악플도 관심의 반영인지라, 2015~2016년 즈음에 여러 구설수에 휘말리며 페페 더 프로그의 인지도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Time)지는 2016년 한 해 가장 영향력 있던 가상 캐릭터로 페페 더 프로그를 선정했다.

페페 더 프로그 원작자 맷 퓨리가 자신의 텀블러에 올린 그림./인터넷 캡쳐

◇한국에서의 페페 더 프로그

페페 더 프로그가 한국까지 퍼진 때를 정확히 짚어내긴 어렵다. 다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2015~2016년 즈음 전 세계적으로 페페 더 프로그가 구설에 오르던 시절에 본격적으로 국내 커뮤니티에 퍼졌으리라 추정할 뿐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국내에서 4chan 등 외국 커뮤니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유행 전에도 써오던 사람이야 있었겠지만. 여하간 눈에 띌 정도로 페페 더 프로그 사용량이 늘어난 때는 2015년 부근이다.

초창기 미국에서 유행할 때처럼, 한국에서는 페페 더 프로그가 별다른 정치색 없이 모태솔로(모쏠) 잉여 찌질이 이미지로 통용됐다. 그 때문에 커뮤니티 성향에 상관없이 오늘의유머(오유), 일베저장소(일베), 디시인사이드(디시), 루리웹 등 각종 사이트에서 널리 쓰였고, 지금도 두루 사용되는 편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 “슬픈 개구리(페페 더 프로그)는 극우와 일베의 상징이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 모쏠과 잉여와 찌질이가 가장 많은 사이트가 일베이기 때문이다. 페페 더 프로그의 이미지에 맞는 인간들이 몰린 커뮤니티니 자연히 페페 더 프로그를 많이 쓸 수밖에 없었고, 결국 다른 커뮤니티보다 사용량이 훨씬 많아졌다. 그 때문에 다른 사이트에서도 멀쩡히 쓰이는 캐릭터임에도 극우와 일베의 상징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이다. 물론 일베에 숨어 사는 어둠의 노사모 일부가 페페 더 프로그가 그분을 닮았다 주장하며 쓴 것도 한몫은 했지만.

실제 한국에서 페페 더 프로그는 딱하고도 가엾은 너, 나, 우리의 인생을 상징하는 면이 강하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쓰이는 개구리는 대부분 정치색 없이 우리네 인생의 단면만을 보여준다.

없는건_댓글에_달아주세요/문현웅 기자

◇나의 페페 더 프로그를 돌려줘

다만 일부 네티즌들은 페페 더 프로그가 널리 쓰이는 상황을 그리 반기지 않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 페페 더 프로그는 모쏠 잉여 히키코모리 찌질이, 즉 아웃사이더(아싸)와 애환을 함께 해온 캐릭터다. 그런데 양지에서 밝고 건강한 삶을 사는 인사이더(인싸)들이 몇 안되는 아싸 장난감마저 빼앗아가 즐기려 하는 데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사실 페페 더 프로그의 고향인 미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페페 더 프로그가 유행하며 인싸들도 널리 쓰는 캐릭터가 되자, 아싸들이 “인싸들로부터 페페 더 프로그를 되찾아오자”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쓸 수 없을 정도로 더러운 이미지의 페페 더 프로그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를 ‘PEE PEE POO POO’라고 부른다. 관련 이미지는 정규 언론에서 다루기 민망한 수준인 관계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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