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로또, 저긴 텅텅.. 터지는 강남 '주택 포퓰리즘' 폭탄

장상진 기자 2017. 2. 10.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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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강남 공공주택들 예고된 파행
- 보금자리는 '로또' 되고
LH브리즈힐 2년새 4억 올라.. 전매제한 풀리니 20%가 "팔자"
- 시프트 100채는 아직도 빈집
전세 6억 래미안팰리스 59㎡, 월소득 480만원 이하만 신청 가능
- 서민주택 입주 편법도 성행
부자들, 시프트 들어가려고 돈 들여 '신청 자격' 얻기도

"분양받은 사람은 수억원 벌어 이사 가고, 주차장엔 외제차가 늘어나죠. 이제 누가 서민 아파트라 보겠어요."

‘서민 아파트’ 맞나요 -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 들어선 보금자리 분양 아파트인 ‘LH강남브리즈힐’. 전용 84㎡가 분양가의 약 3배에 거래되는 등 가격이 폭등하면서 ‘서민 아파트’라는 취지가 퇴색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자곡동 'LH강남브리즈힐'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전매 제한이 풀리자마자 시세 차익을 보려고 너도나도 집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정부가 2012년 '서민(庶民)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주겠다'며 그린벨트를 풀고, 그 자리에 시세의 반값으로 분양한 '보금자리 주택'이다. '소유 부동산 2억1550만원 이하, 자동차 시가 2690만원 이하'의 서민들이 2억원 안팎을 내고 2014년 11월 입주했다.

2년간의 전매(轉賣) 제한 기간에 아파트 가격은 3배로 뛰었다. 분양가 2억3000만원이었던 전용면적 84㎡의 최근 실거래가는 6억7000만원이다. 작년 11월 말부터 가구별로 전매가 허용되자 올 1월까지 10가구가 주인이 바뀌었고, 7가구는 전·월세 계약을 내줬다. 여기에 50가구 정도가 매매·임대 물건으로 나와 있다. 전체 402가구인 단지에서 최초 입주민의 20% 정도가 '시세 차익만 얻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겠다'는 셈이다. 서민 주거 복지를 위해 정부가 그린벨트까지 풀어가며 공급한 아파트가 정책 취지와 달리 수억원짜리 '로또'로 전락한 것이다. 송인호 KDI 공공투자정책실장은 "분양받은 집주인들은 기대했던 로또가 터진 것"이라며 "정부가 정책 홍보와 전시행정에만 열을 올렸지, 주택 수요자들의 실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2년 만에 아파트값 3배로 뛰어

강남브리즈힐 전용 84㎡는 전세금 시세가 5억원 정도이다. 안 팔고 전세만 놔도 아파트 매입 금액의 2배 이상을 굴릴 수 있고, 월 150만원짜리 월세(보증금 8000만원)로 돌리면 임대수익률이 약 13%다. 60대 주민은 "새로 이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제차를 몰더라"고 했다. 서민 공급 반값 분양 아파트는 강남·서초구 일대에만 7656가구가 지정됐고, 현재 아파트별로 전매 제한이 풀리는 중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서민이라고 아파트를 헐값에 한 채씩 준다는 발상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포퓰리즘이었다. 차라리 제값을 받고 그 돈으로 전체 서민의 주거 비용을 지원해줬어야 한다"고 말했다.

텅 빈 강남 장기전세 아파트 100여채

작년 6월 입주한 서울 잠원동 '래미안신반포팰리스' 아파트 108동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장기전세주택(시프트) 입주자 전용으로 사들인 아파트다. 이 동(棟) 81가구 중 약 80%인 64가구는 입주하려는 사람이 없어 8개월째 빈집이다. 작년 11월부터 진행 중인 2차 모집에도 신청자가 50명에 불과하다.

강남 금싸라기 땅에 빈집이 생긴 원인은 '비싼 전세금'과 '까다로운 신청 자격'이다. 시프트로 공급된 래미안신반포팰리스 전용 59㎡의 전세금은 6억1000만원 정도인데 '월소득 480만원 이하'의 조건에 들어야 입주 자격을 얻는다. 월급 10년8개월치를 한 푼도 안 쓰고 모은 사람만 거주할 수 있는 셈이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결국 부모가 돈이 많은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는 임대 아파트"라고 말했다.

장기전세 棟 80%가 빈집 - SH공사의 장기 전세 주택인 ‘래미안신반포팰리스’ 108동. 강남에다 지하철 3호선 잠원역 역세권이라는 입지에도 80%(81가구 중 64가구)가 빈집 상태다. 전세금은 6억원인데, 입주 자격은 월수입 480만원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주완중 기자

SH가 지금까지 시프트로 공급한 1만326가구 중 강남권을 중심으로 136가구가 비어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 채 당 시가 10억원에 육박하는, 최소 1200억원어치의 아파트가 길게는 수년째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이 돈으로 저렴한 지역에 임대 주택을 공급했으면 더 많은 서민이 혜택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주택 입주 편법 성행

억대 현금이 있다면 시프트 편법 입주도 가능하다. '김 과장'이라는 가명의 한 알선업자는 "시에서 수용할 지역의 빌라를 1억원 안팎에 사들여 1~2년 놔두면 수용과 동시에 시프트 '특별공급' 신청 자격이 나온다. 수백억 자산이 있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포털사이트에 '장기전세 시프트'라고 입력하면 이런 알선업자들이 올린 호객 글 수십 건이 뜬다.

사회보호 계층에 시세의 30%에 빌려주는 '영구임대주택'에도 고가(高價) 수입차 보유자가 수두룩하다. 강남 J부동산 관계자는 "사채업을 하면서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있다"며 "정부가 입주자들의 정확한 소득 파악을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무조건 '임대주택은 부족하다'는 전제 아래 수요가 어떤지 자세히 살펴보는 과정이 전혀 없다"며 "수요자 중심의 행정 마인드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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