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부상한 '4월 위기설'..실체는?

박종오 2017. 2. 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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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 시각) 전용 헬기를 타고 백악관에 도착해 거수 경례하는 해병대 의장병에게 답례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4월에 또다시 경제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재계와 관가 안팎에서 ‘4월 위기설(說)’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처럼 나라 밖 쓰나미에 우리 경제가 또 한 번 휘청일 수 있다는 경고다.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에 앞서 물어보자. 이 위기의 실체는 뭘까?

‘4월 위기설’이 가리키는 위기의 경로는 둘이다. 환율과 무역 협정이다.

[환율판 대란?]

◇4월 美환율보고서, 조작국 지정 여부 ‘촉각’

먼저 환율조작국 지정과 그에 따른 피해 우려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환율 보고서’를 작성해 의회에 낸다. 주요 교역 상대국의 환율 정책을 평가한 자료다.

근거는 두 개다. 미 의회가 1988년 제정한 ‘종합무역법’과 지난해 발효한 ‘교역촉진법’이다.

종합무역법은 미 재무부 장관이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국이나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이 환율 조작을 했는지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맞는다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

교역촉진법은 조건이 더 구체적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3% 초과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 200억 달러 초과 △GDP의 2%를 초과한 달러 매수 개입 등이다. 3가지 요건을 모두 만족하면 ‘심층분석 대상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 한국은 이 중 2개 조건을 충족해 작년 10월 독일·일본·대만·스위스·중국 등과 함께 ‘관찰 대상국’으로 분류됐다. 심층분석 대상국 바로 아래 단계다.

쉽게 말해 미국의 무역 상대 중 외국에서 버는 돈이 많고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가 고의로 자국 돈 가치를 낮춰 수출 경쟁력을 높인 것은 아닌지 감시하고, 맞는다면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작년 10월 미 환율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302억 달러(2015년 7월~2016년 6월)로, 주요국 중 중국·독일·일본·멕시코에 이어 다섯째로 많았다.

◇조작국 지정 ‘미국 마음대로’…직접 불이익은 크진 않아

문제는 주먹구구식 잣대다. 종합무역법의 지정 요건은 추상적이다. 교역촉진법상 조건도 바뀔 수 있다. 법에 못 박은 것이 아니라 미 재무부가 자체적으로 정한 것이어서다. 미국 정부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써먹을 수 있는 카드라는 뜻이다.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네 가지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타깃은 중국이다. 한국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때 “취임 100일에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따라서 중국만 환율조작국 또는 심층분석 대상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첫째다. 또는 중국을 지정하면서 한국이 함께 딸려 들어갈 수 있다. 중국은 빼고 만만한 한국을 시범 사례로 먼저 지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니면 중국과 한국 모두 지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결국 관심사는 환율조작국이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이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위기’라는 표현은 과장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종합무역법은 미국 재무부가 환율조작국과 이를 바로잡기 위한 ‘협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게 전부다. 교역촉진법은 제재 조항이 좀 더 많다. △미국 기업이 해당국에 투자 시 미 해외민간투자공사(OPIC)의 금융 지원 금지 △해당국 기업의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 참여 금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환율 압박 △무역 협정과 연계한 별도 조처 등이다.

그러나 이런 제재도 위협적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 예컨대 지난 2011~2015년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건수 기준으로 연평균 0.085%(1만 2889건), 금액 기준으로는 0.28%(약 12억 달러)에 불과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환율조작국이나 심층분석국 지정에 따른 제재가 우리 경제에 직접 미치는 파장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 하락으로 수출기업에는 ‘피해’

△지난 6일 서울 중구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경 [사진=연합뉴스]


다만 중장기적으로 수출 기업에는 악재가 분명하다. 환율조작국 지정에 따라서든, 트럼프의 ‘으름장’에 의해서든 원화 가치는 앞으로 높아질 가능성(환율 하락)이 크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실제로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던 지난 1988년 10월~1990년 3월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709.4원(지정 당시)에서 666.6원(저점 기준)으로 내려갔다. 달러당 1100원이면 채산성이 맞는 상품을 제조 수출하는 기업은 달러당 1000원이 되면 순이익이 전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원화와 중국 위안화가 각각 10% 절상되고 중국 성장률이 1%포인트 낮아질 경우 2017~2019년 우리 경제 성장률을 연간 0.41~0.67%포인트 정도 끌어내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환율 하락으로 우리 기업뿐 아니라 중국의 대미국 수출까지 타격을 받으면 중국 수출 비중(작년 기준 전체의 25.1%)이 높은 한국이 이중고에 처할 수 있다는 논리다.

[무역협정 위기?]

‘4월 위기설’이 거론하는 또 다른 위기 요인은 무역협정이다. 다음달 15일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한 지 5주년이 되는 때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FTA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시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연구위원 겸임)는 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미 FTA 재협상이 거론될 확률은 낮다”고 했다. 이 교수는 “현재 미국의 주요 타깃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중국”이라며 “정권 초에 한·미 FTA에까지 힘을 분산할 여력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 정부의 미흡한 외교적 대응이 위기 요인을 되레 키울 가능성은 열려 있다. 오는 4월 말~5월 초 ‘벚꽃 대선’이 가시화하면서 나라 관심이 온통 정치 이슈에만 쏠려 있어서다. 탄핵 심판에 따른 행정 공백과 통상 사령탑 미비로 허둥지둥하다 제 발을 찍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환율조작국은 지정 그 자체에 따른 제재보다 그것이 시장에 주는 신호가 더 큰 문제”라며 “만약 미국이 중국을 실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면 이는 미국이 앞으로 통상 문제를 물고 늘어지겠다는 ‘선전 포고’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시장이 어디로 튈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 연구위원은 “지금은 세계가 다원화해 미국이 1980년대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상대국을 위협하리라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통상 분야는 전문성이 높은 만큼 우리도 통상 문제 대응 조직을 체계화하고 전문성을 보다 높이는 조처가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종오 (pjo2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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