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농장당 소 1마리 검사하고 "구제역 안전" .. 석달 뒤 발병

이승호.조현숙 2017. 2. 8.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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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10% 표본조사 정확성 떨어져
항체 형성률 96% 믿고 있다 낭패
지난해 백신 접종에 900억원 사용
백신 온도, 접종부위 따라 효과 달라
오늘부터 전국 314만 마리 일괄 접종
항체 형성 1주일 걸려 당분간 비상

“백신 항체 형성률이 과거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대규모 구제역 발생 가능성은 극히 낮다.”

불과 석 달 전인 지난해 11월 7일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림축산검역본부 박봉균 본부장(1급)은 기자 설명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목은 ‘올겨울 구제역·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없는 한 해로’였다.

현실은 보이는 대로다. 2년 만에 구제역과 AI가 동시에 번지는 상황을 맞았다. 정부와 농가는 구제역 백신 접종에 지난해 900억원 넘게 쓰고도 구제역을 막아 내지 못했다. 정확한 경위는 더 규명해야 하지만 농가의 허술한 백신 접종과 정부의 관리·감독 부실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방역 당국이 6일 구제역이 발생한 전북 정읍시 농가를 조사한 결과 소의 항체 형성률은 5%에 불과했다. 김경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항체가 형성된 소는 20마리 중 딱 1마리”라며 “백신 접종이 잘 안 이뤄졌다”고 말했다. 5일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충북 보은군 농가 젖소의 항체 형성률(19%)보다도 한참 낮았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백신 투여 후 소에 80% 이상 항체가 형성되면 구제역을 방어할 수 있다고 본다. 농식품부는 소 항체 형성률이 95.6%(지난해 1~12월 기준)란 자체 통계만 믿고 구제역 방역을 자신했다.

그러나 농식품부의 집계 방식은 빈틈이 있었다. OIE 기준에 따라 농식품부는 전국 소 농가의 10%에 해당하는 6905개 농가를 표본 조사했다. 그러면서 농가당 한두 마리씩만 접종 후 항체가 얼마나 생겼는지를 검사했다. 조사 대상 소에 항체가 형성돼 있으면 해당 농가의 소는 전부 항체가 형성된 걸로 간주했다. 95.6%란 수치는 이렇게 나왔다. 이 수치는 소를 키우는 농가가 백신을 모든 소에 제대로 접종했을 때만 유효하다.

농가의 경우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살처분 시 보상금이 삭감된다. 그런데도 젖이 덜 나온다든가 유산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농가에서 백신 접종을 기피했다고 방역 당국은 보고 있다.
구제역이 발생한 보은과 정읍의 농가가 백신 접종을 했다는 기록은 서류상 있다. 낮은 수치나마 항체가 형성된 것도 접종을 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구제역 백신은 보관 온도와 접종 부위·깊이·각도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이다. 매뉴얼을 농가에서 철저히 따르지 않았다면 항체 형성률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소 50마리 이하의 소규모 농가는 지자체에서 백신을 공급하고 공중 보건 수의사가 접종한다. 하지만 그 이상인 농가는 자체적으로 백신을 구입해야 한다. 50%의 비용이 지원되지만 접종은 알아서 해야 한다.
구제역은 공기와 물로도 번질 만큼 감염성이 매우 강하다. 젖·침·콧물 같은 분비물은 물론 동물의 입김만으로 옮아갈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구제역 바이러스가 육지에서 50㎞, 바다에서 250㎞를 이동해 전파됐다는 연구 사례도 있다. 한번 발생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농식품부는 AI와 다르게 일찌감치 구제역 백신을 도입했다. 매뉴얼에 맞는 철저한 백신 투여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구제역이 터지자 뒤늦게 백신 관리 체계를 바꾸기로 했다. 김경규 실장은 “올해 소에 대한 표본 검사는 농장 1곳당 5마리로 늘릴 방침”이라며 “대규모 농가의 백신 접종 관리 강화가 시급하다는 전문가 지적이 많아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류영수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구제역이 확산할 때는 백신을 철저하게 놓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농가에서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방역 당국 차원에서 농가의 백신 접종 상황을 제대로 관리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국은 8일부터 전국의 소 약 314만 마리에 대한 구제역 백신 접종에 나선다. 김경규 실장은 “백신 접종 후 항체 형성까지 약 1주일이 걸린다”며 “이 기간 일시이동중지(스탠드스틸) 등을 통해 차단 방역에 집중해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찬희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돼지는 소에 비해 확산 속도가 빠르다”며 “소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돼지로 전염되면 걷잡을 수 없으므로 철저한 차단 방역을 통해 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승호 기자,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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