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학원시간에 쫓겨.. '혼밥' 먹는 초등생들

박승혁 기자 2017. 2. 7.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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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햄버거로 끼니 해결.. 일주일에 5~6번 혼자 먹기도]
아침 8시~밤 10시까지 학원 전전.. 먹으면서 숙제하는 학생도 있어
"혼자 먹으면 잔소리 안들어 편해"

"돈 없을 땐 컵라면 사먹고, 돈 많을 땐 햄버거 사먹어요. 돈 엄청 많을 땐 도시락 세트 사먹고요."

설 연휴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한 편의점. 점심때가 되자 초등학생 4명이 취식대에서 컵라면이나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박성만(가명·12)군은 컵라면 물을 받으며 "오전에 논술학원에 갔다가 밥을 먹고 오후에 수학학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점심을 혼자 해결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올해 6학년에 올라가는 박군은 겨울방학 기간 논술, 수학, 과학, 야구, 플루트,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보통 아침 8시에 일어나 밤 10시 40분에 집에 들어간다. 그는 "일주일에 대여섯 번 정도 혼자 밥을 먹는다"며 "엄마랑 같이 밥을 먹으면 공부하란 잔소리를 들어야 해서, 차라리 혼자 먹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이영호(가명·12)군 역시 편의점에서 혼자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주로 편의점이나 분식집에서 혼자 먹는다"며 "학원을 네 군데나 다니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군은 "혼자 밥 먹을 땐 그냥 아무 느낌이 없다"고 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혼밥(혼자 밥 먹기)' 현상이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퍼지고 있다. 어른 혼밥족과 다른 점은 하루 종일 빽빽한 학원 스케줄 때문에 끼니를 해결할 시간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혼밥으로 내몰린다는 점이다. 겨울방학 기간인 1~2월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덩치 큰 중고생들 틈에서 혼자 편의점 라면이나 패스트푸드점 햄버거를 먹는 초등학생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수학, 영어, 과학 등 과목별로 각각 두 곳씩 총 6곳의 학원에 다니는 김소현(13·가명)양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밥을 혼자 먹는데, 시간이 없으면 숙제를 하면서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6년 외식 소비 행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혼자 밥을 먹는 성인들의 월평균 혼밥 빈도는 6.5회였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혼밥을 먹는 초등학생은 성인 평균보다도 혼밥을 많이 하는 셈이다.

본지가 만나본 혼밥 초등학생의 경우 대부분 본인이 원해서라기보다는 사교육을 받느라 시간이 빠듯해 혼자 먹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초등학생의 사교육(예체능 포함) 참여율은 80.7%로, 중학생(69.4%)이나 고등학생(50.2%)보다도 높았다.

전문가들은 어린 나이부터 너무 자주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성인이 됐을 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창의성 발달에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동·청소년 심리 전문가인 김은정 아주대 교수는 "식사 시간은 자연스럽게 대인관계와 사회성 교육을 받는 또 다른 교육 현장"이라며 "유년기에 혼밥이 너무 잦으면 정서발달이 뒤처져 훗날 타인과의 관계 형성이 어렵고 불편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들끼리 어울려 함께 얘기하고 상호작용을 해야 창의성과 사회성이 늘 텐데, 혼밥 문화는 이런 자연스러운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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