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노동자 잔혹사](1)우리네 청춘 저물고 저물도록, 게임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경향신문] ㆍ‘구로 등대’ 넷마블의 그늘
재미있는 게임, 가파른 성장이란 화려함 뒤에서 게임산업의 젊은 노동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난해 게임업체 넷마블에서는 3명이 사망했다.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두 명은 돌연한 죽음이었다. 죽거나 병들지 않더라도 평범한 삶은 아니다.
넷마블에서 근무 중인 ㄱ씨의 삶에 휴식은 없다. 보통 주 6일 근무에 평일엔 꼬박 야근을 한다. 주 7일 근무도 드문 일이 아니다. 게임 프로그램의 결함을 체크하는 그의 업무 특성상 ‘업무 카톡’은 쉴 새 없이 날아든다. ㄱ씨는 “우리 회사는 ‘구로의 등대’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며 “회사가 구로동에 있는데 다들 야근하느라 밤늦게까지 불이 안 꺼져 등대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찾은 서울 구로동 넷마블 사옥(사진) 곳곳에선 야근을 위한 불빛이 새나오고 있었다.
일부 노동자의 극단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5일 경향신문은 노동건강연대가 실시한 ‘넷마블 노동조건 설문조사’ 결과를 입수했다. 이 설문은 지난해 11월22일 넷마블에 다니던 29세 게임 개발자가 돌연사한 직후 닷새 동안 실시된 것으로 자신이 전직(268명)·현직(277명) 넷마블 직원이라고 밝힌 545명이 참여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살인적 노동시간’이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에 13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151명으로 전체의 27.7%에 달했다. 11~12시간 일하는 응답자는 148명(27.2%)이었다. 절반 이상이 하루에 11시간 넘게 일하는 셈이다. 재직자보다는 퇴직자 집단의 노동시간이 더 길었다. 조사 결과를 분석한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직업환경의학전문의)은 “퇴직자의 경우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설문조사에 응하게 되므로, 재직 중 최악의 경험을 적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넷마블에 재직 중이라고 밝힌 277명의 응답만 놓고 봐도 하루에 11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은 104명(37.5%)에 달했다.
가혹한 노동환경은 게임산업 전반의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엔씨소프트에서도 프로젝트 준비를 위해 밤샘 근무하던 개발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게임개발자연대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진행한 ‘2016 게임산업종사자의 노동환경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337명 중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법정 노동시간인 40시간 이내라고 응답한 경우는 25.8%에 불과했다. 52시간을 초과해서 일한다는 응답은 20%를 넘었고, 60시간 초과 근무자는 6.5%였다. 한 달에 휴일 근무를 1~3회 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36.8%였다. 4회 이상 한다는 응답도 6.0% 있었다. 응답자의 월간 평균 노동시간은 205.7시간으로 역시 상용근로자의 평균 노동시간을 넘는다.
한 대형 게임사 개발자는 “자취를 했지만 야근이나 밤샘이 너무 많아 월세가 아까워져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며 “이런 분위기가 업계에 만연해서 동종업계 사람들이랑 얘기하면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한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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