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귀면 헤어지기가 무섭다'..이별 후 '보복 폭행' 공포

이재은 2017. 2. 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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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통보에 범죄자로 돌변하는 前 남친들
'스토킹부터 살인까지' 이별 범죄 위험 높아
'안전이별' 신조어까지 등장…사회 문제 부상
"사랑 싸움 아닌 범죄…스토킹 방지법 절실"

【서울=뉴시스】이재은 기자 = #1. 지난달 9일 30대 여성 이모씨가 자신이 거주하는 서울 논현동의 빌라 주차장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씨는 결국 사흘 만에 숨졌다. 두개골이 완전히 골절될 정도로 심한 폭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씨를 사망에 이르게까지 한 가해자는 바로 전 남자친구 강모(33)씨였다. 그의 무차별적인 폭행 이유는 이랬다. "이씨가 만나주지 않아서…."

#2. 지난 2015년 2월 40대 남성이 전 여자친구에게 염산을 뿌렸다. 양모(41)씨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A(31·여) 집 앞에서 미리 준비한 염산을 A씨에게 뿌린 뒤 달아났다. 이별 통보가 화근이었다. 직장 동료인 양씨의 의처증 증세가 심해지자 A씨는 교제 4개월 만에 이별을 고했다. 양씨는 이에 앙심을 품고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 사고로 A씨는 눈을 크게 다쳤고, 어깨에 화상을 입게 됐다. 심지어 양씨는 A씨를 납치할 목적으로 전기충격기까지 사용하기도 했다.

사랑하던 사람이 돌연 가해자로 돌변해 생명까지 위협하는 데이트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데이트 폭력이란 호감을 갖고 만나거나 사귀는 관계, 또는 과거에 만났던 적이 있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서적·언어적·성적·경제적 폭력을 의미한다.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는 여성이 대부분이고 재범률도 높기 때문에 사안의 심각성이 크다.

특히 이별 후 보복범죄는 위험수위가 매우 높다. 단순한 말다툼을 넘어 협박, 스토킹, 성폭행,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안전이별'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고 온라인에는 '안전하게 이별하는 방법'이라는 글이 퍼질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2월부터 전국 경찰서에 데이트 폭력 근절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해 집중 단속을 벌였다. 그러나 피해자가 감소할 기미는 전혀 안 보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폭력 집중 단속·수사 결과 9364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8367명이 형사 입건됐다. 데이트 폭력 검거 인원은 2012년 7584명, 2013년 7237명, 2014년 6675명, 2015년 7692명으로 집계됐다. 매년 평균 7700여명이 연인에게 육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행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5년 간 애인을 살해하거나 살인 미수로 검거된 가해자도 467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연인을 대상으로 한 폭행 또는 상해로 검거된 가해자는 2만8453명으로 나타났다.

명확한 증거가 없거나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자 수는 경찰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데이트 폭력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여전히 미흡한데다 별도의 처벌 조항도 없어 단순 폭행으로 분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물리적 폭력이 있을 때만 가능할 뿐 협박이나 정신적 폭력은 입증도 어려워 처벌이 어렵다.

또 성폭행,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 전 협박, 스토킹 등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 스토킹에 대한 처벌법도 없다. 경범죄처벌법에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간주해 범칙금 10만원 정도가 부과될 뿐이다.

실제로 이씨는 폭행을 당하기 3시간 전 강씨가 자신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강씨가 전입신고가 돼 있고 1년 간 이씨와 동거를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경찰은 경고조치만 하고 강씨를 풀어줬다. 강씨는 또 다시 이씨를 찾아가 얼굴과 머리를 마구 구타했고 결국 이씨는 과거 사랑했던 연인에게 목숨을 잃게 됐다.

외국에서는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위한 실효성 있는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등 범죄 방지에 주력해 우리나라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영국은 지난해 3월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이름을 따 데이트 상대의 전과를 조회할 수 있는 '클레어법'을 시행하고 있다. 또 미국은 1994년부터 여성폭력방지법에 데이트 폭력을 포함해 가해자를 '의무 체포'한 뒤 피해자와 격리하는 방법을 쓰는 등 데이트 폭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을 단순히 사랑싸움으로 여기면 안 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최희진 성폭력 상담소장은 "가해자들 대부분이 여자친구를 소유물이라고 여겨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고 여자는 무조건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남성 우월주의가 강하다"며 "피해 여성들도 남성의 가학 행위가 반복되면 사랑이 아닌 범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소장은 "데이트 폭력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로 가볍게 치부해 해결 시기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더는 연인 사이에 가벼운 사랑싸움이 아닌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 엄연한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또 '스토킹 방지법' 등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외국에서는 이미 2000년 초반에 스토킹 법안이 만들어졌으나 국내는 논의만 되고 있고 답보 상태"라며 "강력 범죄를 사전에 막기 위한 스토킹 관련 법안을 마련해 수사 기관에서 명확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lj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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