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텍은 고구려 후손' KBS 다큐의 진실
[경향신문]
지난 설 연휴 기간 동안 KBS는 특집 다큐멘터리 <멕시코 한류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를 이틀간 방영했다. 이 다큐는 고대 멕시코의 아즈텍인이 고구려 유민의 후손이며, 아즈텍인이 사용한 나와틀어와 한국어가 뜻이 통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한민족이 동떨어진 다른 민족과 친연관계에 있다는 가설은 재야사학(또는 유사역사학)의 대표적 소재다.
손 교수의 주장에 대한 학계와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극히 드문 예외가 있다면 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을 들 수 있다. 2014년 손 교수는 자신의 학설을 집대성한
<우리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후 손 교수는 자신의 책을 학계 곳곳에 보냈는데, 2014년 9월 15일 유 전 위원장이 손 교수에게 답장을 보냈다. 답장에서 유 전 위원장은 “저는 1960년대 하버드대에 재학할 당시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우리 민족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며 “손 교수님께서는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한민족-아메리칸 인디언 관련설을 입증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다큐 자체에도 손 교수의 주장에 신뢰성을 더하는 장치가 있다. 다큐가 손 교수의 가설을 설명하고 역사학자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다큐에서 그래픽으로 부상국과 고구려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박대재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등장한다. 박 교수는 “중국 여러 문헌에는 고구려의 최고 관등 벼슬을 대대로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설명만 한다. 다큐멘터리 내레이터가 ‘멕시코 고대유적에 고리 문양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그들이 고리족의 후손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설명을 한 다음엔 복기대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교수가 등장한다. 복 교수 역시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사람들이 사방에 흩어져서 훗날 부여와 고구려를 세운다. 이들이 자체적으로 고리라고 불렀던 것 같다”고 말한다.
손 교수도 방송이나 인터넷이 아니 역시 자신의 주장에 대해 ‘학계의 검토와 자문’을 받길 원했다. 그는 “내 주장을 공개적으로 검증해달라고 한국고대사학회에 글을 올렸지만 반응이 없었다. 학회에 논문도 제출했지만 학회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손 교수의 ‘고구려-아즈텍 가설’은 주로 환단고기 등 유사역사학을 믿는 이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그는 “저도 ‘신라가 사실은 양자강에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주로 저를 지지한다는 걸 안다. 저도 그 때문에 곤란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오히려 멕시코 학자들은 고대 한국과 고대 멕시코가 만난다는 말에 많은 흥미를 가졌다. 멕시코 등 아메리카 대륙의 학자들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동북아역사재단 같은 국책연구소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큐에 담긴 ‘고구려-아즈텍 가설’에 대해 역사학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박대재 교수는 “사료적 근거가 없고 황당한 논리에 입각한 가설이다. 고구려와 아즈텍은 시기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거리가 너무 멀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중국 문헌에 나오는 ‘맥이’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메히코’(멕시코)가 됐다는 다큐의 묘사에 대해 “만약 KBS에서 멕시코를 맥이와 관련시킬 수 있냐고 질문했다면 맥이는 ‘맥’의 오기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라는 설명을 추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기대 교수는 “손성태 교수의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수많은 유적 중에 몇 가지를 예로 들면서 사실상 결과를 정해놓고 하는 귀납적인 연구방법은 옳은 방법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큐에서는 아즈텍 유적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고리 모양이 고대 멕시코(아즈텍)과 한민족(고리족)이 동족임을 강화해주는 증거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복 교수는 “고리 모양을 쉽게 말하면 끝이 둥그런 모양인데,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문명권에서도 끝이 둥그런 무늬가 발견된다”고 말했다. KBS 다큐 제작팀 관계자는 “시청자가 보기엔 비판적인 내용이 없으니까 일방적으로 손 교수의 말을 지지하는 것처럼 비쳤을 수 있다. “올해 봄이나 여름에 나오는 3·4부에서는 여러 비판적인 의견을 적극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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