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과 도난'의 역사..금동관음보살좌상의 눈물

구유나 기자 2017. 2. 4.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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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여 년 만에 귀향 앞두고 다시 수장고로..학계는 '장물'이라는 점에서 시각차

[머니투데이 구유나 기자] [600여 년 만에 귀향 앞두고 다시 수장고로…학계는 '장물'이라는 점에서 시각차]

금동관음보살좌상 /사진=뉴스1


수 백년 전 약탈 당한 문화재를 다시 절도해 가져왔다. 약탈의 약탈을 거친 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은 어느 쪽에 있을까. 벌써 5년째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이다.

'금동관음보살좌상' 논란은 2012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인 김모씨(70)를 비롯한 문화재 절도단 4명은 일본 대마도 관음사(觀音寺·간논지)와 해신신사(海神神社·가이진신사)에 보관돼 있던 금동관음보살좌상과 금동여래입상을 훔쳐 국내로 반입했다. 금동여래입상은 불법 유출 증거가 없고 국내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지난해 7월 반환됐다.

금동관음보살좌상은 1330년(고려 충숙왕 17년) 제작돼 서산 부석사에 봉안된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50.5㎝, 무게 38.6㎏의 작은 불상이다. 1973년 일본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유려한 곡선미와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은 표정이 특징이다.

2013년 대한불교 조계종 부석사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은 과거 왜구가 약탈한 문화재"라며 정부 상대로 불상을 일본으로 반환하지 못하도록 하는 점유이전금지 가처분 신청 소송을 내 승소했다. 지난해 점유이전금지 시효가 만료되자 부석사는 불상 인도청구 소송을 냈고, 지난달 26일 마침내 원고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법원은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에 즉각 불상을 부석사로 인도하라는 가집행을 명했다.

충남 서산 부석사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에 대한 인도청구소송에서 법원이 원고 청고를 받아들였다. 26일 오전 대전지방법원에서 승소한 부석사 원우 스님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그러나 정부 측 소송 대리를 맡은 검찰이 판결 당일 곧바로 항소하면서 사안은 연장 국면에 돌입했다. 대전고등검찰청에 따르면 법원 판결 및 가집행 명령에 검찰이 항소하며 신청한 강제집행정지가 지난달 31일 인용됐다. 부석사 측은 이달 중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인도받을 예정이었으나 이날 결정으로 불상은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 보관된다.

학계에서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원 소유자가 부석사이며 약탈품임에는 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앞서 재판부도 고려사(조선시대 편찬 된 역사서)와 관음사 연혁, 복장물(불상 내 경전, 결연문, 사리 등 상징물), 불에 그을린 흔적 등을 토대로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부석사의 소유라는 사실을 넉넉히 추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금동관음보살좌상 내부에서 발견된 발원문에는 불상이 1330년 서산 부석사에서 조성됐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불상이 이안(移安·신주나 영정을 다른 곳으로 옮겨 모심)될 경우 새로운 기록문을 추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후 기록은 전무한 상황. 고려사에 따르면 1352~1381년 5차례에 걸쳐 왜구가 서산 지역을 침입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정황상으로도 약탈을 뒷받침했다.

1980년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존재를 처음 학계에 알린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사찰 사적기와 복장 발원문 등을 미뤄봤을 때 (불상이) 약탈품임은 여지없는 사실"이라며 "원 주인인 부석사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모든 문화재는 원래 있던 장소에 되돌려놔야 한다는 세계 공통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개입하기보다는 한국의 부석사와 일본의 관음사 양 사찰이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약탈문화재에 대한 국제법으로는 헤이그 협약(1954), 유네스코 협약(1970), 사법통일국제연구소 협약(1995) 등이 있지만 강제성이 없고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2000년대 들어 이탈리아 정부가 직접 미국 박물관과 관련 협정을 체결해 100여 점의 문화재를 반환받는 등 환수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이번과 같은 경우는 찾기 힘들다.

일각에서는 일본을 설득시킬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고 '장물'이라는 점에서 법리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는 "불상이 절도품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명분에서 유리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이 문화재 문제에 있어 (역사적)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처럼 행세할 수 있게 됐다"며 "일본은 국내 약탈 문화재의 4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데 앞으로 환수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색된 한·일 관계에 따른 문화적 피해도 지적했다. 안 교수는 "일본 내에서는 우리나라 유물 관련 특별전도 열지 않고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기관이나 개인도 우리 문화재를 밖에 노출시키지 않는 등 문화적 피해도 심각한 상황"이라며 "일본의 국공립 기관 큐레이터들이나 교수들은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한국에 오지 않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관음보살은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신앙 속에 민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비와 달을 관장하기 때문일까,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침침한 수장고를 떠나 중생들 곁인 사찰의 불전으로 돌아가는 날은 언제쯤일지 시간은 또다시 미뤄졌다.

구유나 기자 yuna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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