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재용, 황제가 되기엔 '물음표'가 많은 황태자

홍재원 기자 2017. 2. 3.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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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마법처럼’ 지분 확보하고 ‘삼성의 톱’이 된 이재용… 20년간 통한 JY 매직, 앞으로도 통할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 출석해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등에서 정부 편의를 제공받기 위해 최씨 측에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받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은 재계 인사 중 최고의 ‘스타성’을 지녔다.

국민적인 기업이자 글로벌 브랜드 삼성의 실질적 1인자로, 명문대 출신이면서 호감형 외모까지 갖췄다. 승마와 골프 등 스포츠에도 능하다. 그러나 대중 앞엔 잘 서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비선 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청문회로 TV 생중계에 등장했다. 그는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면서 “송구하다”는 말만 반복한 것이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 속에 어쩌면 삼성 문제의 딜레마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3일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CEO)를 할 만한 인물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그렇다고 그가 2선으로 물러나려 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삼성 문제의 해법이 잘 안 나온다”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 60억→300조 ‘JY 매직’의 비결

퀴즈 하나. 저녁식사 자리에 ‘이재용 상무’가 앉아 있다. 그리고 나이 지긋한 삼성전자 부회장과 사장들이 몇몇 동석한다. 누가 상석에 앉을까. 이재용 상무다. 그가 상무보로 삼성에 데뷔한 뒤 15년 동안 줄곧 그랬다. 삼성에서는 총수 일가가 ‘왕’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처음부터 그렇게 등장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미래전략실)는 최근 20년 동안 그의 지분 승계 묘수를 짜내는 데 화력을 집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부회장이 지금 그 자리에 어떻게 올랐는지 살피지 않고선 그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1995년 무렵 부친인 이건희 회장(75)에게서 60억8000만원을 증여받았다. 결과적으로는 현재 시가총액 30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 지분 12%가량을 손에 넣어 지배권을 확보했다. 그가 낸 세금은 증여세 16억원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01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임원(상무보) 승진을 하면서 삼성그룹 전면에 등장했다. 그해 3월 이 상무보가 임원 승진자 166명과 함께 연수를 받고 있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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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부회장이 자신의 힘이 아닌 삼성 계열사들의 총력 지원을 받아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은 먼저 최소한의 ‘종잣돈’이 될 목돈 만들기에 돌입했다. 증여받은 60억8000만원 중 세금을 뺀 45억원으로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등 삼성 계열사 주식을 사들였다. 이들 회사는 직후 상장됐고, 이 부회장은 주식을 처분해 600억원 정도를 만들었다. 상장을 앞둔 삼성 계열사를 투자처로 활용한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 정도 돈으로는 현재 시세 기준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3만주(약 0.02%)밖에 못 산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분이 있는 다른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는 우회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는 우선 종잣돈을 에버랜드 주식 확보에 썼다. 삼성의 다른 계열사들은 이 회사의 주식 확보 기회를 포기하면서 이 부회장을 밀어줬다. 직후 에버랜드는 적자 상태에서도 1997~1999년 삼성생명 지분 20%가량을 사들였다. 삼성생명은 7%대의 삼성전자 지분이 있다. 이런 방식으로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 형태로 주력인 삼성전자 지배 루트를 우선 확보했다.

이 과정 하나하나가 불법 논란에 휩싸였고, 검찰·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등으로 이어졌지만 결국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났다. 하지만 적어도 이 부회장이 자신의 힘으로 지금 위치에 올라간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이면 이재용이 아니라 누구라도 삼성이 그 위치로 올려줄 수 있었다. 비상장사에 투자했더니 곧 상장돼 거액의 차익을 남겼고, 어떤 비상장사에 투자했더니 그 회사가 삼성전자의 지주회사로 변신한 것이다. 기막힌 우연이 아닌, 반칙성 협조가 수반된 ‘약속된 플레이’였다.

■ 데뷔 흑역사…경영능력 ‘글쎄’

1999년 이후 이 부회장은 지분구조상 명실상부한 ‘삼성의 황태자’가 됐다. 곧바로 2001년, 이 부회장이 논란 속에서 임원(상무보)을 달며 경영 일선에 전격 등장했다. 그의 나이 33세였다. 남들은 20년 넘게 걸리는 임원을 10년 만에 단 것이다.

그 10년마저도 대부분을 학생 신분으로 보냈다. 서류상 1991년 23세에 삼성에 입사한 것으로 돼 있지만 그는 1992년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일본 게이오대에서 석사를 취득한 뒤 이후엔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수료)을 거쳤다.

상무보 승진설에 소액주주들이 의아해하자 당시 윤종용 부회장이 답했다. “(이재용은) 1991년 공채 32기로 입사해 현재 부장으로 해외연수 중이며, 통상 연수비 부담은 회사가 하지만 이재용씨는 대주주(이건희)와 특수관계인인 만큼 본인이 내고 있다. 급여는 복귀 조건으로 지급 중이다. 상무보 승진은 회사 내규에 따라 이뤄질 것이며 이재용씨도 삼성전자가 키우고 있는 인재 500여명 가운데 하나다.”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 부회장도 예상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지분 확보(1999)와 삼성 데뷔(2001) 사이에 논란을 일축할 만한 일종의 실적을 만들려 했다. 2000년 삼성 계열사의 인터넷 사업 지주회사 역할을 맡게 될 ‘e삼성’ 설립을 주도하고 보안·전자결제 등 의욕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털어 투자한 게 반도체였다. 이 부회장에겐 e삼성이 반도체였다. 당시 개인 돈도 505억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여 1년도 안돼 사업을 정리했다. 당시 삼성 구조본에서 ‘이재용 개인 돈이 날아갈 판’이라며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결국 제일기획 등 삼성 계열사들이 511억원에 지분을 매입해 이 부회장 개인 손실을 보전해주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e삼성 실패는 이 부회장에겐 뼈아픈 기록이다. 화려한 데뷔는커녕 지금까지도 경영상의 능력을 의심받는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 부회장은 이후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사업 실적이 없다. 반도체와 함께 삼성전자의 ‘원투펀치’인 스마트폰 사업 확대도 부친의 작품으로 꼽힌다. 삼성은 반도체 산업의 호황으로 분기마다 수조원의 영업이익을 남기는 경영 성과를 내고 있지만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도 이 같은 실적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그는 사랑받을 수 있을까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7.55%로 다소 부족한 데다 금산분리 논란 탓에 불안한 지분이다. 삼성은 삼성전자의 2대 주주인 삼성물산(4.25%)도 이 부회장이 지배하는 방식으로 계열사를 추가 개편했다. 제일모직을 이 부회장 지분이 많은 에버랜드와 합병한 뒤 이 회사를 다시 삼성물산과 합병했다. 이 부회장은 이런 방식으로 ‘이재용→삼성물산→삼성전자’ 형태의 지배구조를 추가 확보했다. 에버랜드 주식을 삼성물산 주식으로 변신시키는 ‘2차 매직’이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과욕은 화를 부른다. 삼성물산 대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이 손실을 무릅쓰고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찬성한 점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국민연금의 찬성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61)에 대한 삼성의 지원(뇌물) 대가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물론 미래전략실이 엄호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삼성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삼성 내부에서는 ‘JY(이재용)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큰 틀의 지원 요청만 받았고, 이후에 실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래전략실이 최순실의 존재를 알았다’는 쪽으로 정리됐다”며 “당사자들도 (특검 등) 소환조사 때 이처럼 진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검 수사 결과를 떠나 이 부회장에 대한 국민적 시선은 점점 따가워진다. 유학길에 올라 있으면서도 10년간 삼성 월급을 받은 사람, 부모 돈 60억원을 받아 세금 16억원만 내고 300조원 이상짜리 삼성전자를 삼킨 사람, 벤처 실패 외엔 이렇다 할 사업 실적이 없는 사람, 정권과 결탁해 국민의 노후 생활비까지 까먹은 사람. 이 부회장은 사랑받는 기업가가 될 수 있을까.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최순실) 사태를 보면 이 부회장 본인에게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최순실 측에서 강하게 협박한 것도 아니고 삼성전자가 쉽게 흔들릴 기업도 아닌데 왜 (불법적인) 돈을 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법적인 문제를 떠나 이미 (각종 편법 등으로) 여론의 비난을 수차례 받았는데, 그런 부분은 아예 신경 안 쓰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흔들리면 삼성이 흔들리고, 그렇게 되면 국가 경제가 흔들린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김상조 교수는 “삼성과 관련해 사람들이 총수(이재용)의 역할에 대한 허상과 ‘삼성이 없으면 나라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허상을 갖고 있다”며 “그런 식으로 삼성을 계속 봐줘서 우리가 삼성을 오히려 스포일(spoil·아이 등을 응석받이로 키워 망치다)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재용의 삼성’이 지금 같은 방식으로 지속되면 부작용이 더욱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펀드매니저는 “그동안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주식을 못 사도록 누가 막은 것도 아니지 않으냐”며 “자기 것(돈)은 아끼고 다른 사람 것으로 메꾸려 하니 자꾸 법 테두리를 벗어나고 정부 힘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라고 봤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부회장 스스로의 각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며 “지배주주가 아닌 일반주주가 삼성을 감시·규율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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