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법]사장님이 '앱' 울리면 달려간 배달원..법원은 "산재 불가" 그를 울렸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김수영 변호사 2017. 2. 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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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배달 노동자의 눈물

서울 동대문시장 근처에서 배달 노동자가 오토바이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배달에 쓰이는 오토바이들이 줄지어 주차돼 있는 모습도 보인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학생들도 돈이 필요하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들은 특히 더 그렇다. 고교 2학년이던 김민호군(가명)도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많지 않은 돈이라도 집안 살림에 보태고 싶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남학생이니 오토바이로 음식 배달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들 했다. 김군은 어렵사리 배달 아르바이트(알바) 자리를 구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저녁 때마다 야식 등을 배달하는 일이다. 다만 중국집 같은 일반 음식점이 아니라 ㅎ씨가 운영하는 배달 전문업체였다. 이 업체는 식당들과 제휴해 음식이 주문되면 배달만 전담하는 곳이다. 오토바이를 제공받고 이곳에서 일해보기로 했다.

이 업체의 특이한 점은 음식점이 배달을 요청하면 알바생들이 선착순으로 응답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업체와 제휴한 식당들이 이 앱을 이용해 배달 요청(콜)을 날리면, 김군을 포함한 알바생들의 스마트폰이 일제히 울린다. 가장 먼저 응답한 학생만이 배달 일거리를 잡을 수 있다. 학생은 식당으로 달려가 해당 식당 로고가 부착된 배달통을 싣고 고객에게 달려간다.

업계에서는 이런 방식을 ‘전투 콜 배차’라 부른다. 학생들의 배달 건수는 자동으로 기록되고 ㅎ씨는 2주에 한번씩 2000원 남짓인 건당 수수료를 학생들에게 지급했다. 이 돈이 모이고 모여야 의미 있는 알바비를 받아갈 수 있다. 김군도 열심히 콜에 응했다. 빨리 배달을 다녀와야 다음 콜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군의 알바는 오래가지 못했다. 배달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치료비는커녕 생활비조차 모자라던 김군의 부모는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노동복지공단은 이 사고를 산재로 인정했고, 산재보험에 들지 않았던 ㅎ씨에게 절반의 책임을 부담하도록 결정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ㅎ씨는 김군이 자신의 노동자가 아니라며 산재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ㅎ씨의 손을 들어줬다. 김군이 ㅎ씨에게 직접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고 보고 산재 처분을 취소한 것이다. 김군은 그동안 지출된 치료비 전액을 내야 할 처지가 됐다. 공감은 2심부터 김군을 대리해 1심 변호사들과 함께 항소심을 진행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서울고등법원 역시 김군이 ‘개인사업자’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제 대법원 판단만 남은 상태다.

어떻게 알바생인 김군이 졸지에 개인사업자가 된 것일까. 기존의 음식 배달은 음식점에 고용된 배달원이 음식을 배달하는 단순한 형태였다. 음식점 사장은 배달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여러 대 구매하고 유지비와 유류비를 꾸준히 지출해야 하며, 배달원들을 직접 고용했다. 배달원에게 매달 급여를 주면서 근태 관리도 직접했고, 사고가 잦은 배달업의 특성상 산재보험 등에도 가입했다.

그러나 배달 앱을 이용하는 사업체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ㅎ씨는 전용 앱을 깔고 콜을 날리는 식당들로부터 월 10만원가량 고정 수수료를 받는다. 20개 식당이 가입하면 월 200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식이다. 사용된 앱 개발회사도 배달 건당 100원가량의 사용 수수료를 받아간다. 김군을 둘러싸고 ㅎ씨의 배달업체뿐 아니라 식당, 앱 개발사까지 ‘4자 구조’, 소비자까지 포함하면 ‘5자 구조’로 엮여 있는 셈이다. 앱을 사용하는 식당은 한달에 단돈 10만원만 지불하면 기존의 모든 리스크에서 벗어난다. ㅎ씨의 ‘영업 전략’도 식당들에게 이 같은 편리성을 강조(사진)하는 것이었다.

세상은 이처럼 스마트해졌다지만 그래서 김군은 더 답답해졌다. 자신은 ㅎ씨에게서 오토바이를 받아 그의 회사에서 일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복잡한 사업 구조 탓인지 아무도 그를 고용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법원에서 나왔다. TV 광고에서도 혜리가 알바의 권리를 외치면서 최저임금 준수와 노동계약서 작성을 강조하는데, 어떤 알바생은 왜 노동자가 아닌 걸까.

법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배달원은 콜이 울려도 받지 않을 자유가 있었고, 건당 수수료라는 점에서 이윤과 손실의 부담이 배달원에게 있었다. ㅎ씨가 출퇴근 시간 등 근무태도를 엄격히 관리한 사실이 없다. 김군으로서는 배달 앱을 여러 개 깔 수도 있고, 그렇게 했다면 다른 회사의 배달일도 할 수 있었기에 ㅎ씨에게 전속된 노동자로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건당 수수료는 배달의 양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성과급이다. 성과급 노동자를 이윤과 손실의 부담을 스스로 지는 사업주라 할 수는 없다. 배달 앱을 여러 개 깔 수도 있었다는 판단은 실제로 가능하지 않은 가정일 뿐이다. 김군은 그냥 학교가 파하면 ㅎ씨 회사로 달려가 알바를 하려고 했던 고교생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전투 콜 방식은 노동자들끼리 알아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시스템이다. 콜이 울려도 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돈을 벌기 위해 ㅎ씨 회사의 알바 자리를 구한 김군 입장에선 이상한 논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전투 콜’이 있는 한 ㅎ씨가 따로 근태 관리를 할 필요도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회사 밖에서 업무를 하는 것은 요즘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배달뿐 아니라 대리운전 등 고객 운송의 경우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이 사건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 사용자가 제공한 각종 프로그램과 인터넷을 통해 업무 구속력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강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법원은 사무실이라는 일정 공간에서 면대 면으로 이루어지는 업무 관계가 아닌 스마트워크에서의 노동자성은 계속 부인한다.

배달대행사업은 사업주가 배달 앱 프로그램과 오토바이를 구비하고 배달원을 모집한 후 음식점과 배달대행 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된다. 배달원들은 오토바이처럼 이 사업의 실현을 위한 구성요소다. 사업주는 배달원들이 성실하게 배달한다는 전제하에 음식점들과의 배달대행 계약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며, 배달대행계약이 줄어들면 손실을 입게 된다. 배달 건당 수수료는 사업의 전제가 되는 성실 배달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배달원 사고와 같은 사용자로서의 책임 또한 배달대행업 사업주의 몫이어야 한다. 만약 김군 또한 ㅎ씨와 같은 동등한 개인사업자라 판단한다면, 신종 배달대행업은 사장의 책임을 김군에게 전부 떠넘기도록 허용하는 셈이 된다. 이런 탈법을 스마트하다고 보아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신종 배달원들은 그저 ‘사장님’이 깔아준 프로그램에서 콜이 울릴 때마다 성실하게 노동을 제공했다. 자신들의 이윤과 손실을 결정하는 건당 수수료 책정에 관여할 위치도 아니었다. 이들을 개인사업자라 보는 순간 사고의 위험은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배달업엔 배달 노동자가 있다’는 당연한 상식이 대법원에서는 확인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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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김수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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