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복지부가 자초한 솜방망이 메르스 과징금

추인영 2017. 2. 3.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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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2,500원’. 그제 보건복지부가 낸 보도자료에 적혀 있던 숫자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접촉자 명단을 늦게 제출해 결과적으로 전국을 메르스 공포에 휩싸이게 한 삼성서울병원에 부과한 과징금 액수였다. 806만2500원이 맞는 건지, 혹시 숫자를 잘못 적은 건 아닌지 순간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다시 확인해 봐도 맞는 액수였다. 복지부는 당초 삼성서울병원에 대해 영업정지 15일의 행정처분을 내리려고 했다. 그러나 2000여 명의 입원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 등 현실적인 어려움과 환자 불편을 고려해 과징금으로 대신했다는 게 복지부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의료법 시행령에 규정된 과징금 최고 등급(1일 53만7500원)을 적용했다고 강조했다.

법 규정대로 했다는 말이지만 조금만 더 따져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2년 전 메르스 사태 당시 186명이 감염됐고 38명이 사망했다. 국민도 상당한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그런데 삼성서울병원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초기 대응을 했다면 훨씬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게 의료계 안팎의 중론이다. 그만큼 삼성서울병원의 잘못이 적잖았다는 의미다. 물론 대형병원의 영업정지는 환자들에게 큰 불편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과징금으로 대체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확산 중이던 2015년 7월 삼성서울병원. 내부 일부가 임시 폐쇄돼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스크와 장갑을 낀 의료진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중앙포토]
문제는 액수다. 삼성서울병원의 하루 매출은 평균 27억원으로 15일로 계산하면 410억원에 달한다. 이에 비하면 과징금은 0.02%에 불과하다. 정치권에서 “이번 처분은 국민의 화를 풀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돋우는 꼴”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도 “대한민국이라 쓰고 삼성민국이라 읽어야겠다” “하다못해 5억원도 아니고 푼돈 받아서 뭐 하려고 하느냐” 같은 항의성 댓글이 쏟아진다.

이 같은 솜방망이 과징금 논란은 사실 복지부가 키운 측면이 크다. 의료법 시행령의 최고 과징금 규정은 연 매출 90억원 이상이면 병원 규모와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게다가 약사법상 약국에 적용되는 과징금 최고 금액(1일 57만원)보다도 적다. 이 때문에 2003년 현행 기준이 정해진 이후 정치권과 의약업계 등에서는 “매출이 많을수록 과징금 비율이 낮아지는 불공평한 구조”라며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복지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시행령만 바꾸면 되는데도 병원 등 이해당사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손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일로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연구용역을 거쳐 올 9월까지는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을 뿐이다. 다시는 이런 복지부동으로 국민이 이해하기 힘든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추인영 사회 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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