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사라지는 아이들.. 출산율 1위 '해남의 역설'

염유섭 2017. 2. 2. 14:4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둘째 이후엔 효과 없어/셋째아 낳게 하려면 1억8000만원 줘야/출산율 최고 해남, 원정 출산 의혹 짙어/경제적 혜택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육아휴직 등 일·가정 병립정책 확대로

정부가 가정마다 아이 한 명을 더 낳게 하려면 얼마면 될까.

우리나라 가임여성은 10년 새 6% 줄었다. 더구나 ‘결혼한 가임여성’은 19%나 줄었다. 몇 년째 제자리인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면 다자녀 정책 카드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남 해남군이 2015년 합계출산율 전국 1위를 기념해 유모차 행진 행사를 갖고 ‘1자녀 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자료사진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출산장려금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시·군·구별 출산 관련 통계를 들여다보면 출산율과 인구 증가율, 출산장려금과 다자녀 출산이 매끄러운 인과관계로 이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산장려금 같은 당장의 직접적인 유인책만으론 다자녀 정책이 충분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뜻이다.

◆출산장려금, 첫 출산엔 효과… 다자녀엔 ‘글쎄’

전남 해남은 2012년부터 전국 시·군·구 출산율 1위를 놓치지 않는 ‘모범생’이다. 2015년 해남의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당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2.46명으로 전국 평균(1.24명)을 크게 웃돈다.

비결은 파격적인 출산장려금이었다. 해남군은 2011년 관련 조례를 개정해 이듬해부터 첫째 출산 시 300만원, 둘째 350만원, 셋째 600만원, 넷째 이상은 720만원을 양육비로 지원해오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몇 년째 전국 최고 출산율을 보이지만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해남 인구는 2005년 7만3982명에서 2010년 6만5685명, 2015년 6만5184명으로 줄었다.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문제는 파격적인 장려금 혜택 속에 태어난 0∼4세 영유아의 순유출도 많다는 것이다.

행정자치부의 주민등록 인구현황을 보면 해남의 0세는 2011년 509명에서 장려금이 대폭 는 2012년 81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그 수가 2013년 761명, 2014년 651명, 2015년 576명, 지난해에는 543명으로 계속 줄었다. 2011년 해남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해남을 떠난다는 얘기다. 이 같은 현상은 2013∼2015년생 모두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해남의 0∼4세 인구는 나이가 많을수록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 같은 연령대 전국 인구구조와는 정반대다. 해남 주민이 장려금 정책에 자극받아 아이를 더 낳은 게 아니라 이미 자녀계획을 세운 타 지역 주민이 장려금을 탈 목적으로 출산만 해남에서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더구나 해남의 출산장려금은 셋째를 낳을 때 35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훌쩍 올라가지만 정작 셋째 이상 출생 비율은 2010년 20.8%에서 2015년 16.1%로 줄었다.

이처럼 미묘한 출산장려금과 출산율의 관계에 대해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홍석철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2005∼2011년 전국 225개 시·군·구의 출산장려금과 출산율을 분석한 결과 장려금이 1000달러(약 118만원·이하 원화만 표기) 올라가면 조출생률(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이 4.4% 올라가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출생 순서로 따져봤더니 분석 기간 동안 장려금의 영향으로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생아는 첫째 3만2038명(전체 첫째의 2.35%), 둘째 4041명(0.4%), 셋째 763명(0.35%)으로 셋째로 갈수록 효과가 떨어졌다.

장려금이 실제 출산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첫째는 135만원이면 됐지만 둘째는 3800만원, 셋째는 1억80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출산장려금이 첫 자녀 출산을 이끌어내는 것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지만 다자녀 출산에는 실효성이 없다는 뜻이다.

◆‘출산 이후’ 들여다보는 정책 늘어나야

출산장려금 외에 다자녀 가정에 제공되는 경제적 혜택은 더 있다. 다자녀 무주택 가구를 위한 주택 특별공급, 전세자금 대출(최저생계비 2배 이내 등의 조건 있음), 자동차 취득세 면제, 전기료 감면(월 최대 1만2000원), 도시가스 요금 할인(월 최대 6000원), 다자녀우대카드, 국민연금 출산크레디트 등 다양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아이 셋 이상을 낳는 건 엄청난 ‘모험’으로 인식된다. 자녀 수가 많아질수록 ‘아이 키우기 힘든 사회환경’을 더 여실히 겪게 되는 탓이다.

첫아이를 낳기 전까지 간호사로 일한 박은정(36·가명)씨는 현재 셋째를 임신 중이다. 식구가 늘어나는 건 기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박씨는 “앞으로 생활비가 더 늘어날 텐데 맞벌이는 몇 년간 꿈도 못 꾸게 됐다”며 “우리나라에서 다자녀 맘이 된다는 건 경제적으로 쪼들리면서 나 개인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말처럼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일·가정 양립과 다자녀 정책은 서로 융합하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에야 비로소 맞벌이 다자녀 가정이 어린이집을 최우선으로 입소할 수 있도록 했다.

홍 교수는 “임신 계획을 세울 때는 이로 인한 비용과 혜택을 비교하기 마련인데, 다자녀는 실질적인 양육비뿐 아니라 직장을 포기하는 등의 기회비용도 크게 늘어난다”며 “보육료 지원이나 산전·후 휴가, 육아휴직 같은 정책이 자리 잡고 확대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