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도 깜짝 놀란 영어 유치원 교재

이슬기 2017. 2. 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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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대상 영어학원 입학 설명회 탐방기② 1년 치 교재 총 37권에 달해

[오마이뉴스이슬기 기자]

한 영상 속, 예쁜 교복을 차려입은 아이들이 금발머리 외국인과 교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초보적인 대화이지만 아이들의 영어 발음이 유창하다. 영상을 보는 학부모들의 눈이 선망의 눈빛으로 빛난다. 나는 지금 영어학원 유치부의 입학 설명회에 와있다.

'반일제 이상 유아대상 영어학원'(아래 유아대상 영어학원)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처럼 오전부터 하루 3시간 이상 운영하며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으로, 흔히 '영어유치원'으로 불리고 있지만 '유아교육기관'이 아닌 학원법의 적용을 받는 '어학원'이다.

사교육걱정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서울에 224곳이 있었고, 하루 평균 교습 시간은 4시간 57분(초등학교 기준 하루 7.4교시), 월 평균 교습비는 약 89만 원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빠른 속도로 심화되는 영유아사교육의 핵으로 언급하기도 하고, 5~7세 유아의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다고 우려하나, 정작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내부 작동방식은 거의 가려져 있다. 나는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내부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고자, 유명 프랜차이즈인 P학원과 S학원, E학원의 입학 설명회를 참관했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코딩 교육을 영어로 하는 학원도

입학 설명회에서의 설명에 따르면, 학원 일과는 대체로 9:30-9:40에 시작하여 14:00-14:40에 끝난다. 대체로 점심 전 2~3교시, 점심 후 2~3교시, 총 4~6교시를 진행하며, 방과후 특별활동을 하는 경우 2시간 정도 더 남아서 숙제, 영어 미술, 한글과 수, 가베, 영어 발레 등을 배우기도 한다.

학원별로 교과목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교과목은 영어 관련 교과와 비영어 교과로 나누어진다. 영어 관련 교과에는 Language(랭귀지), Phonics(파닉스) 등이, 비영어 교과에는 Art & Craft(아트 앤 크래프트), Hands on play(핸즈 온 플레이) 등 활동 중심 교과, Science(사이언스), Math(매스) 등의 일반 교과 등이 있다. 모든 학원이 입학 초기 한두 달을 제외하면 수업, 발표, 소통 등에서 100% 영어만을 사용한다고 강조한다.
▲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하루 일과 주로 하루에 4-6교시를 진행하며 모든 수업은 영어로만 이루어진다.
ⓒ 이슬기
소프트웨어 과목이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포함된다는 소식 때문인지, E학원의 경우 교과목 중 '영어코딩'이 있었으며, 이 교과목은 코딩 교육을 100% 영어로 진행한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우리는 영어교육기관 최초로 카이스트 출신 연구원이 개발한 코딩교육을 합니다. 교육 환경이 변화하고 있고, 2018년에는 소프트웨어 과목이 정규 과목이 되는데요. 우리는 영어와 코딩을 접목해 컴퓨터 코딩 실습 교육을 합니다. 블록 코딩부터 시작해서 순차, 반복, 패턴 등을 흥미로운 방식으로..(코딩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냐는 질문에) 저희는 100% 영어로 진행이 돼요." -E학원 00점 원장

1년 치 교재가 총 37권, 전체 면수가 4258면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시간표에는 대부분 랭귀지, 파닉스 등의 영어 교과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 영어 교과 수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 입학 설명회 당일 수업을 참관해 보니 영어 교과 수업은 '앉아서 교재를 푸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교재들을 살펴보니, 빈 칸을 채우거나 받아쓰는 등 앉아서 교재를 풀어야 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좀 더 자세히 교재를 분석해보고자, P학원의 7세(3년 차) 교재 1년 치를 살펴보았다. 

1년 치 교재는 읽기 교재 6권, literature anthology(리터러처 앤솔로지) 3권, Grammar and Writing(그래머 앤 라이팅) 6권, Reading and Vocabulary(리딩 앤 보케브러리) 6권, Activity Plus(액티비티 플러스) 2권, Phonics(파닉스) 1권, Me and my world(미 앤 마이 월드) 1권, 동화 10권 등 총 37권, 전체 면수는 4258면에 달하는 과다한 양이었다.
▲ 한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7세반(3년차) 1년치 교재 1년치 교재가 총 37권, 4,258면에 달한다.
ⓒ 이슬기
또 기본 교재의 읽기 지문에는 멕시코 전통과 미국 노동절, 추수 감사절 등 유아에게 지나치게 생소하고 추상적인 내용이 등장했다. empanadas(남미 전통 요리), pinata(미국 내 스페인어권 사회에서 파티 때 눈을 가리고 막대기로 쳐서 넘어뜨리는 통), Latke(감자로 만든 팬케이크) 등의 생소한 남미 전통 소재가 등장하는 단원은 물론 미국 추수감사절의 전통과 유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근로기준법) 등을 서술하는 단원도 있었다. 유아기는 생활 속 경험을 소재로 해 가르쳐야 하는 시기인데, 유아가 과연 남미 전통과 미국 추수감사절, 근로기준법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P학원의 7세(3년차) 읽기 교재  미국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소개하여,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도 이루어지지 않은 유아에게 지나치게 어렵다.
ⓒ 이슬기
   
▲ P학원의 7세(3년차) 읽기 교재 노동절에 관한 내용을 서술하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근로기준법)을 소개하고 있어 추상적 사고가 발달하지 않은 유아기에 적합하지 않다.
ⓒ 이슬기
또한 Vocabulary(보케브러리)나 읽기 후 활동지는 영어 문장으로 답을 쓰는 형식이 많았다. 누리과정(유치원·어린이집 공통 교육과정)에서 유아의 발달 단계를 고려해 외국어는 물론 한글의 문자 교육조차 하지 않는 것과는 괴리가 크다.

결국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영어 학습은 자연스러운 노출이라기보다 집중적 훈련으로 영어를 학습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이는 기본생활습관과 바른 인성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는 유아기의 교육 목표와는 현저히 다르다.

단어 암기, 쓰기 숙제, 스펠링 테스트까지

또 유아의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교재의 양과 난도가 상승하며, 단어 암기, 쓰기 숙제, 스펠링 테스트까지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S학원 입학 설명회의 Q&A 시간을 진행한 졸업생 학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7세 2년 차가 되니까 교재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숙제가 많고, 교재가 갑자기 4권으로 늘어나면서... 고3 아이에게 '야, 이거 알겠니?' 물어보면 '7살짜리가 이런 걸 한단 말이야? 그게 말이 돼?' 그러는데 그게 말이 되더라고요. 처음엔 제가 바쁘다보니 숙제 선생님도 픽업하고 했어요. 근데 숙제 선생님도 놀라는 게, '이런 걸 7세가 한단 말이에요?' 저희 애가 2년 차 올라가면서 테스트를 맨날 빵점 맞아 왔어요. 버스에 내리면서 붉그락 푸르락, '나 오늘도 빵점 맞았단 말이야!' 보면 단어 테스트 5개 정도인데 다 틀려서 오는 거예요. 매주 빵점, 간혹 한 개. 근데 어느 순간 애가 연습해서 가고 외워서 가더라고요. 그 단어가 과학 영어 이런 거." -S학원 00점 학부모

7세 2년 차가 되니 교재의 양과 난도가 지나치게 상승해 고3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는 것이고, 단어 암기 테스트를 정기적으로 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학부모는 자녀의 숙제를 돌봐주기 위해 숙제 선생님을 따로 고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P학원 입학설명회에서도 본사에서 만든 온라인 기반 숙제 프로그램과 AR 프로그램(Accelerated Reader, 독서학습관리 프로그램)을 숙제로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국외학자들이 제시하는 권장 숙제시간(집에서의 공부시간)에 영유아는 아예 제외되어 있으며,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라도 하루에 0~30분(Cooper, 2008) 혹은 1주일에 15~20분 정도의 1~3개의 숙제(Zentall, 1999)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육아정책연구소, 2017)

학습 효과를 가시적으로 확인시켜야 하는 학원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되었으면 하는 부모의 바람과 달리, 실제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수업이 '학습식'으로 이루어지고 숙제, 스펠링 테스트 등까지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전직 유아대상 영어학원 교사들의 증언에 실마리가 있다.

"처음에는 그럴듯한 시설로 학부모를 끌어들일 수 있지만, 아이가 학원에 다니는 동안 특별한 효과를 보지 못하면 금방 다른 학원으로 옮겨갈 가능성을 언제나 갖고 있기 때문에 학원장들은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학원 입장에서는 학부모에게 투자 효과, 즉 학습 효과를 확실하게 가시적으로 확인시켜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 효과를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가 유창하게 영어로 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에 그 차선책으로 영어책을 줄줄 읽어 내리는 모습을 통해 효과를 보여주려 하게 된다. 그렇다고 자연스러운 노출을 통해 단기간에 아이가 문자를 해득하기는 어디 쉽겠는가? 그러다보니 6살짜리 아이에게 단어 암기, 쓰기 숙제, 스펠링 시험까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전 S학원 교수부장 (2009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어사교육포럼 1차 토론회 발제문 인용)

유아대상 영어학원은 영어 학습 효과를 바라는 부모들이 보내기 때문에,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고 이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발달 단계를 고려하기보다 '학습식'으로 영어를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학부모는 유아대상 영어학원을 통해 자녀가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영어에 흥미를 느끼며 즐겁게 배우기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유아에게 지나친 학습 부담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다. 5~7세의 유아를 대상으로 이런 학습을 시키는 것은 유아에게 지나친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을까? 다음 기사에서는 이에 관해 확인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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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보도자료(http://cafe.daum.net/no-worry/1QDs/1183)로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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