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그늘..흰우유 안 팔린다

송지유 기자 입력 2017. 2. 2. 04:55 수정 2017. 2. 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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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우유 시장규모 2013년 1조100억→2016년 9360억 3년째 내리막..대체음료 다양, '완전식품' 의문제기도 성장 발목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김소연 기자] [흰우유 시장규모 2013년 1조100억→2016년 9360억 3년째 내리막…대체음료 다양, '완전식품' 의문제기도 성장 발목]

1970년대 서울우유 생산제품과 1967년 서울우유의 우유 자동충전기

2교시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면 주번과 그의 짝꿍은 반 친구들의 우유를 받아왔다. 학생들은 이 우유를 점심시간까지 마셔야 했다. "우유를 마시면 배가 아프다"는 주장은 통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인간에게 필요한 5대 영양소가 모두 들어있는 완전식품"이라며 "우유를 계속 먹어 익숙해지면 배도 안 아프다"고 했다.

오후 수업시간까지 책상 위에 우유팩이 남아 있으면 혼이 나기도 했다. 다 먹은 우유팩을 최소 부피로 접어 모으고 검사를 하는 통에 가방에 숨겨 집으로 가져갈 수도 없었다. 1980년대 서울지역 초등학교 우유급식 현장의 모습이다.

'완전식품'의 대명사 흰우유 판매량이 줄고 있다. 저출산 기조와 소비 트렌드 변화에 따라 성장 정체기를 거쳐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지금보다 먹거리가 귀하고 영양이 부족하던 시절엔 어린이가 꼭 먹어야 할 1순위 식품으로 꼽혔지만 대체 음료가 넘쳐나면서 입지도 흔들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1일 시장조사기관 AC닐슨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일반 흰우유 시장(저지방·유기농·멸균 등 제외) 규모는 9360억원으로 집계됐다. 2013년 1조100억원을 기록한 이후 2014년 9950억원, 2015년 9450억원에 이어 3년 연속 감소했다. 1조원을 넘어섰던 2013년과 비교하면 7.3% 줄어든 셈이다.

◇'완전식품'의 추억…집집마다 배달해먹던 우유=국내에서 우유가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37년 경성우유동업조합(서울우유 전신)이 설립되면서부터다. 당시 서울우유는 정동에 공장을 짓고 우유를 독점 생산했다. 지금은 종이팩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제품이 많지만 과거에는 유리병(180㎖)에 우유를 담아 팔았다. 마트에 가서 우유를 사는 것이 아니라 지역보급소에서 신문처럼 집집마다 우유를 배달했다.

해방과 6·25를 거치고 1960년대 정부의 낙농장려정책에 따라 젖소가 다량 수입됐다. 해외에서 고온살균법 등 우유처리기술을 들여오면서 국내 우유산업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국내 유업계 선두인 서울우유에 이어 2~4위권인 남양유업(1964년), 매일유업(1969년), 빙그레(1967년) 등도 모두 이 무렵 설립됐다.

흰우유에 향과 맛을 더한 가공우유는 1968년 처음 나왔다. 유단백을 소화시키는 락타제 효소가 부족한 한국인들의 우유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서울우유가 내놓은 '초코우유'다. 이어 '커피우유', '딸기우유'도 출시됐다.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큰 인기인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1974년 등장했다. 당시 비싸서 먹기 어려었던 바나나를 제품 이미지로 내세워 마케팅에 성공했다. 서민들도 목욕탕에서 나올 때 기분내며 사먹는 상징적인 음료로 자리잡았다.

◇경제성장에 우유소비도 증가…불황의 역설, 저출산의 그늘=경제성장과 함께 국내 우유 총소비량도 증가했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국내 우유소비량은 1986년 사상 처음으로 100만톤을 돌파했고 1994년 200만톤, 2001년 300만톤을 각각 넘어섰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잇단 개최 후 경제가 고성장하던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우유 소비량도 빠른 속도로 늘었다.

지난해 우유소비량은 11월말 현재 360만톤으로 연간 기준으로는 390만톤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식문화의 변화로 최근 치즈·버터 등 각종 유제품 소비가 급증하고 있는데도 300만톤을 돌파한 지 13년이 지나도록 400만톤대로 진입하지 못했다. 100만톤에서 200만톤으로 성장하는데 8년, 300만톤을 돌파하는 데 7년이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증가속도가 더뎌진 셈이다.

연간 1인당 흰우유 소비량은 IMF 외환위기였던 1997년(31.5㎏)이 정점이었다. 극심한 불황으로 모든 지출을 줄였지만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 완전식품으로 알려진 우유만큼은 마지막까지 끊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부족한 먹거리를 대신해 값싼 영양소 공급원인 우유를 추가로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해석도 있다.

저출산 기조로 우유 주소비층인 영유아수가 감소하면서 흰우유 소비량은 매년 줄고 있다. 2015년 1인당 흰우유 소비량은 26.6㎏로 1997년보다 5㎏(15.5%) 가까이 감소했다. 과거에 비해 대체음료가 많아진 것도 우유 소비량이 줄어든 요인이다. 학계 일각에서 비만·알러지 등 주범으로 우유를 꼽고, 완전식품으로 알려진 우유 영양소에 의문을 제기한 것도 우유시장 성장 걸림돌이 됐다.

◇저지방·유기농 신제품 경쟁…커피점·애완제품 이종사업도=우유사업의 핵심인 흰우유 시장이 침체되면서 유업계의 사업 다각화 작업이 한창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흰우유 시장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라며 "점점 다양해지는 소비트렌드에 맞춰 저지방·유기농 등 기능성 우유와, 프리미엄 가공우유 신제품을 개발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커피전문점·디저트숍 등 외식사업 진출, 반려동물 전용제품 출시 등 신사업도 잇따르고 있다. 매일유업은 커피전문점 '폴바셋'을 비롯해 이탈리안레스토랑 '더키친살바토레' 등 외식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프리미엄 초콜릿 '페레로로쉐'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기업 페레로와 독점 계약을 맺고 국내 초콜릿 수입유통도 맡고 있다.

남양유업은 소프트아이스크림 등을 판매하는 디저트전문점 '백미당1964'를 운영중이다. 현재 매장수는 25개로 올해는 5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빙그레는 대표상품인 바나나맛우유를 앞세워 디저트전문점 '옐로우카페'를 선보였다. 서울우유는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국내 최초로 반려동물 전용우유 '아이펫밀크'를 출시했다.

송지유 기자 clio@, 김소연 기자 nick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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