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참으며 밤·주말까지 일한 대가가 120만원"

김원진 기자 입력 2017. 2. 1. 18:22 수정 2017. 2. 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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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종로·은평·서대문구 도시가스 여성 검침원 20명, 열악한 근무·급여에 파업 돌입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 달라며 1일 파업에 들어간 서울도시가스 강북5고객센터 소속 도시가스 검침원들이 서울 홍은동 사무실 벽 등에 임금 정상화 등의 구호가 적힌 종이를 붙이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사는 강은지씨(32·가명)는 지난달 25일 가스 검침원으로부터 종이 쪽지 하나를 받았다. 쪽지에는 “꼭 읽어봐 주세요”라며 “낮은 월급과 열악한 처우에 놓여 있지만 사측과 교섭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해 파업에 들어갈 수 있다. 시민 여러분들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호소가 담겨 있었다.

서울 종로·은평·서대문구에서 근무하는 도시가스 검침원 20명이 1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민간기업인 서울도시가스의 하청업체 강북5고객센터 소속으로 지난해 8월 노동조합을 결성한 뒤 다른 고객센터보다 15만~20만원 낮은 임금을 정상화하고, 빈번하게 성희롱에 노출되는 열악한 근무환경 등을 개선해달라고 사측에 요구해왔다. 하지만 노조와 사측은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 팬티 차림 고객과 마주하고, 소변 볼 곳 없어 물 안 먹어

강북5고객센터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는 검침원 정화숙씨(55)는 혼자서 3400여가구를 담당하는데 이 중 70% 정도는 일반 주택이다. 일반 주택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정씨는 신발 밑창을 6개월마다 교체할 정도로 많이 걸어야 한다. 몸 하나 기댈 곳 없는 난간이나 좁은 틈새에 가스 계량기가 설치돼 있는 경우가 많아 검침 시 위험한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검침원은 매달 가스 검침을 하고 6개월에 한 번씩 안전점검도 한다. 가스비 고지서 송부도 담당한다. 정씨는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낮에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업무는 저녁이나 주말에 이뤄진다”며 “수차례 문자나 전화를 보낸 뒤에야 가스 검침이나 안전점검에 응하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또 “간혹 초인종 누르지 말라며 욕설을 하는 고객들도 있다”고 전했다.

검침원은 대부분 여성이다. 이 때문에 성희롱·성추행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지난해 5년차 검침원 백경희씨(52·가명)가 한 주택을 방문하자 집에 있던 50대 남성이 갑자기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고 한다. 백씨는 그대로 도망쳤다. 그는 “삼각팬티만 입고 검침원을 맞는 남성들도 많다”고 했다.

생리현상을 해결할 곳도 마땅치 않다. 3년차 검침원 김명신씨(52)는 “고객 집에서 화장실 좀 쓰겠다고 부탁하는 게 쉽지 않다”며 “일반 주택가에는 공중화장실이 없어 일부러 물을 먹지 않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이 힘에 부치면 어두컴컴한 계단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 쪼그려 앉아 쉬는 게 전부다.

■ 8년차 실수령액이 월 120만원

지난해 8월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 발간한 ‘서울지역 도시가스 검침점검원 노동실태 분석’ 보고서를 보면 “위탁 방식으로 운영되는 서울시의 도시가스 검침과 점검 업무에 투여되는 인원이 너무 적다”며 “노동강도는 세지만 실수령액은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하다”고 돼있다.

서울시가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가스 검침원들의 월평균 급여는 지난해 기준으로 세전 163만2174원이다. 강북5고객센터에서 가장 경력이 많은 검침원 ㄱ씨(8년차)의 지난해 11월 급여 명세서에는 세전 156만원, 세후 136만원이 찍혔다. 136만원에는 ㄱ씨가 받은 생일 선물(5만원)과 조장 수당(10만원)이 포함됐다. 이 같은 일시적인 수당을 제외하면 실수령액은 120만원에 불과하다.

노조 측은 “지역센터가 시에서 제시한 임금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고 급여 산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도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측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서울시에는 임금과 관련된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했지만 노조에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조 측은 “임금 문제를 비롯한 가스 검침원의 노동환경 전반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강북5고객센터 관계자는 “우리 센터는 업무가 까다로운 주택 지역이 많아 다른 센터보다 검침원을 더 많이 채용해야 한다”며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사람을 더 뽑으면 아무래도 임금을 조금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근본적으로 서울시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산정해 내려보내는 임금 자체가 낮은 것이 문제”라고 했다.

<글·사진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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