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안창호 또 오류 논란, 국사편찬위 사이트 내용과도 달라

장은교 기자 2017. 2. 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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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교육부가 지난 달 31일 공개한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에 도산 안창호와 관련해 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정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은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운영하는 한국사 사이트에 기재된 내용과도 다르다. 국편은 국정역사교과서 집필과 편찬 실무를 담당했다. 교육부와 국편은 기존 검정교과서가 좌편향돼 오류가 많다는 이유로 역삭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해왔으나, 또다시 기초적인 사실 오류가 발견되면서 국정화 명분을 상실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고교 <한국사> 208쪽에는 ‘1910년대 국외민족운동’ 이라는 주제의 본문과 함께 ‘안창호와 대한인 국민회’라는 제목의 사진이 수록됐다. 사진설명은 “안창호(앞줄 가운데)는 1912년 샌프란시스코에 대한인 국민회 중앙 총회를 설치하고, 초대 회장으로 취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라고 밝혔다.

국정 역사교과서 고교<한국사> 최종본 208쪽에 ‘안창호와 대한인 국민회’라는 제목으로 실린 사진
국정 역사교과서 고교<한국사> 최종본 208쪽에 실린 사진설명

그러나 전국역사교사모임은 1일 “최종본에 실린 사진은 안창호가 1915년 하와이 지방총회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라고 밝혔다. 역사교사모임은 “사진 설명 역시 잘못됐다”며 “1912년 중앙 총회가 설치된 것은 맞지만, 안창호는 중앙 총회 초대회장이 아니다. 초대 회장은 윤병구였다”고 밝혔다. 역사교사모임은 이런 사실이 기록된 1912년 신한민보 기사를 공개했다.

신한민보 1912년 12월 9일 신문. 1912년 총회에서 윤병구 회장이 선출됐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제공

1912년 총회 선거를 2대로 보는 경우 윤병구는 2대 회장, 안창호는 3대 회장으로 봐야한다는 해석도 있다.

국가보훈처가 윤병구를 2009년 6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며 밝힌 소개한 내용을 보면 “윤병구는 1912년 11월 8일부터 20일까지 개최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제1회 대표원 의회에 박상하와 함께 하와이지방총회를 대표해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윤병구는 또다른 중앙총회장 후보자인 안창호를 제치고 제2대 중앙총회장에 당선되었다. 지금까지 대한인국민회는 해외한인의 통일기관이자, 가 정부로 되기 위해 1911년 3월 중앙총회를 설립해 초대 중앙총회장에 최정익과 부회장 한재명을 선출했으나 이하의 조직이 없는 이름뿐인 중앙총회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개최한 제1회 대표원 의회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위상과 역할을 크게 강화시켰는데 이 일의 적임자로 윤병구를 중앙총회장에 선출하였다”라고 밝혔다.

이 경우에도 안창호를 초대 회장으로 보기는 어렵다. 교육부에서 만든 국정교과서에 국가기관인 보훈처에서 밝힌 것과 다른 내용이 들어가있다는 것도 문제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사 콘텐츠 사이트. 안창호는 1912년 선거에서 패하고 1914년 당선됐다고 나온다. 국정교과서와 다른 내용이다,

국정교과서 내용은 국사편찬위가 운영하는 ‘한국사 콘텐츠 사이트(http://contents.koreanhistory.or.kr/id/N0232)’ 내용과도 다르다. 이 사이트는 안창호 선생을 소개하면서 “1911년 9월 미국으로 돌아온 안창호는 도착하자마자 대한인국민회 일로 분주했다. 상항지방회 대의원, 만주리아 지방총회 대표원으로 선임되었고, 1912년 11월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만주리아 지방총회 대표 대리로 참가했다. 안창호는 이 회의에서 중앙총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그와 경합한 윤병구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안창호는 곧 재기에 성공했다. 1914년 11월 대한인국민회 대표원회에서 중앙총회장에 당선된 것이다. 1915년 6월 23일 중앙총회 회장 취임식에서 안창호는 동포사회의 단결을 강조했다”고 기술했다.

안창호가 1912년 선거에서 떨어졌다가 1914년 선거에서 당선됐다는 내용으로 국정교과서와 다르다. 이 사이트는 저작권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국정역사교과서 집필과 편찬의 실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28일 공개한 현장검토본에서 통합임시정부 출범 후 안창호의 직함을 노동국 총판이 아닌 내무총장으로 표기해 학계로부터 지적을 받은 뒤, 최종본에서 수정해 발표했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최종본 역시 기초적인 사실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부의 검증은 부실하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막대한 예산을 들였는데도 함량 미달의 부실 교과서를 만든 교육부는 예산낭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역사학계가 모인 역사교육연대회의는 교육부가 발표한 국정역사교과서 최종본의 오류를 분석해 이번 주중 발표할 계획이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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