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부장님들께 원래 드리려던 말씀
2017. 1. 31. 01:02
5년 전에 부장이 됐다. 의욕이 넘쳤다. 회식 때 내가 수저를 돌리고 고기를 구웠다. 편한 화제를 꺼냈다. 즐거워들 하는 것 같았다. 미묘한 순간들을 느끼기 전까지는. 내가 집게를 들자 좌불안석인 부서 막내, 내가 말을 멈추자 잠시 흐르는 정적, 내가 화장실 다녀오는 새 수다스러워진 분위기. 나는 좋은 부장 놀이를 하고 있었지만 가장 좋은 부장은 자리에 없는 부장이었다. 충격적인 순간도 있었다. 요즘 집에 힘든 일은 없느냐 굳이 물어서 한참 듣다가 불현듯 이미 지난번에 묻고 들었던 이야기임을 깨달은 순간이다. 엄청 걱정해 주는 척하고 있었지만 술자리가 끝나면 잊어 버릴 남의 일이었다. 나라는 인간은 원래 가족에게조차 무심하다. 나는 미생 오 과장이 아니었다. 마 부장이라도 되지 말자.지난해 말, 일반직 인사로 한 해 같이 일한 세 명이 떠났다. 파스타집에서 점심을 먹고 ‘이런 날이라고 특별한 말 하는 건 그렇고 이걸로 작별합시다’ 했다. 저녁 회식 한 번 한 적 없다. 어디 사는지 가족 관계가 어떤지도 모른다. 돌아온 후 마음이 안 좋았다. 내 무심한 천성을 핑계로 너무 매정했다. 서운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들이 찾아왔다. 나와 근무하며 좋았단다. 한 명은 내 낡은 법복과 넥타이를 나 몰래 드라이클리닝한 후 갖다 놓았다. 다시 같이 일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단다.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강변하는 건 아니다. 시대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힘은 과거가 가지고 있고 시간은 미래로 흐른다. 과거가 미래에 양보하고 미래는 그런 과거를 존중하는 것, 이것이 발전 아닐까.
문유석 판사·『미스 함무라비』 저자
▶ [단독] 김종인, 안희정 만나 탈당 권유 "50대 돌풍을"
▶ 트럼프에 두 손 든 록히드마틴···'F-35' 7000억 인하
▶ 남편 불륜女 직장 찾아가 "꽃뱀이다" 망신 줬다가 헉
▶ '가장 좋은 부장은…' 부장들께 원래 드리려던 말
▶ 50대 이혼男, 외롭지 않으려면 여자처럼 행동하라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중앙일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