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걷어찬 5번의 기회

조을선 기자 2017. 1. 2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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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이 정부 침몰로…세월호 참사와 대통령의 실기에 관한 이야기

- 세월호 참사는 2년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왜 현재진행형일까?
- 2014년 4월 16일 당일 대처부터 최근 인터넷방송 '정규재TV' 인터뷰 논란까지 
- 사회시스템 점검 못지않게 중요한 지도자의 리더십 점검 

■ 세월호로 시작해서 세월호로 끝날 처지의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의 시작과 끝은 세월호 참사'였다고 기록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정부 출범 1년여만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박 대통령의 부실한 참사 대응에 리더십은 타격을 입었고, 한동안 국정 공백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말 최순실 게이트와 함께 해결되지 않았던 세월호 참사 문제들은 다시 불거졌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3년 가까이 되도록 '대통령의 7시간'은 밝혀지지 않은 현재진행형 이슈로 이어졌고, 대통령 탄핵안에도 포함됐다. 세월호 시국선언 등에 동참한 문화예술계 인사 만여 명을 블랙리스트로 만든 것은 박 대통령의 범죄 항목에 포함됐다. 박근혜 정부 초기, 대통령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세월호 침몰은 결국 정부의 침몰로 끝날 모양새다.

■ 박 대통령의 '만시지탄 리더십'…스스로 걷어찬 기회들

만시지탄 리더십이라고 누군가는 얘기했다. 한 걸음, 아니 몇 걸음씩 늦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를 겨냥한 말이다. 3년 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발생 당일부터 지난 25일 뜬금없는 인터넷 방송 해명 인터뷰까지, 대통령의 뒷북 대응은 늘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불에 기름을 시원하게 퍼붓는 역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이제와서 얘기하면 뭐하냐는 그야말로 만시지탄의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 삶은 계속되고 이후 새 지도자는 뽑아야 할 것이니 타산지석 차원에서라도 복기가 필요할 것 같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한참이나 늦은 대응에 대해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 피해 당사자들도 국민들도 인내하며 주었던 수많은 기회를 걷어찬 것은 박 대통령 스스로였다. 대통령이 버린 몇가지 대표적인 기회만 나열해보고자 한다. 또 다른 의견들이 있다면 댓글로 함께하면 좋겠다. 강조하지만, 단순히 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비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같은 재난 상황에서 똑같은 지도자의 행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곱씹어보고자 한다. 벚꽃 대선의 바람이 불어 오고 있는 상황에서 부디 다음 지도자는 위기상황에서도 눈앞의 기회들을 놓치지 않길 바라며 말이다.

 실기1. 참사 발생 직후 곧바로 적극적인 구조지시가 있었다면

세월호 참사 당일 2014년 4월 16일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를 두고 국민적 의혹이 크다. 그때 대통령이 가장 급박한 그 시간,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언론과 시민들이 '대통령의 7시간' 운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여기서 대형 참사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었던 기회는 '사고 접수 직후부터 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의 시간에 있었다. 즉 이 골든 타임에 곧바로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이고 적절한 조치가 제대로 내려졌느냐는 거다. 단원고 학생의 신고 접수 시간인 8시 52분부터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한 10시 31분까지, 1시간 39분 동안이라는 골든타임에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이 해경과 처음 통화한 건 9시 20분이었고, 대통령이 보고를 받은 건 10시, 그리고 대통령이 전화로 지시를 내린 건 10시 15분이다. 대통령이 지시를 내린 그 시점엔 이미 세월호가 90도 기운 상태였고, 15분쯤 뒤엔 배가 완전히 침몰했다. 즉, 해경이 신고를 접수한지 1시간 23분 뒤에 대통령이 지시를 내린 건데, 이때는 이미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관저 집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대통령측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이렇게 지시를 내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대통령이 평소 보고를 받는 시스템 혹은 관행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해외 지도자들의 몇가지 위기 대응 사례만 봐도 확연히 대조된다. 지난해 4월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6.5의 강진이 일어났을 때 아베 총리는 5분만에 기자들과 접견하고 26만에 총리 관저실에 위기관리센터를 구성했다. 지난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을 강타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곧바로 연방재난관리청을 컨트롤타워로 내세워 빠르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당시 위기 상황에 대한 신속한 대응으로 이들의 입지는 더 단단해졌다. 만약 세월호 참사 직후 골든타임 안에 역량을 총동원해 조치를 취했다면 어땠을까. 304명 사망이라는 대참사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2014년 4월 16일 오후 5시 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7시간 행적 의혹이 불거졌다.

 실기2. 곧바로 사과하고, 수습 조치를 다 했다면 

당장 당일부터 정부의 초동조치 문제점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불신이 커지며 닷새 뒤인 2014년 4월 21일에는 유족들이 청와대로 행진을 하다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앞으로 오랫동안 이어질 갈등의 서막이었다. 그럼에도 청해진 해운과 해경 등 남탓으로 일관하는 대통령의 태도는 분노를 더욱 키울 뿐이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 책임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한 건 참사 후 13일만인 4월 29일 국무회의에서였다. 형식도 부적절했지만, 무엇보다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미 신뢰가 깨진 뒤였다. 결국 참사 33일만인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눈물까지 흘렸지만, 억지 춘향 사과에 악어의 눈물이란 비판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특검 수사 발표와 언론 보도를 보면, 당시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진심으로 수습하려하기 보다는 이슈를 덮는 데만 골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세월호 시국선언을 하는 문화 예술인 등 만명가량을 블랙리스트로 낙인 찍었고, 이들의 지원을 줄이거나 없앴다. 진심 없는 사과였음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대목이다.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33일 만에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실기3. 유가족들을 충분히 만나 위로했다면 

참사는 단순히 물리적인 사건이 아니라 많은 희생자를 낳은 '사람'에 관한 일이다. 지도자라면 희대의 많은 희생자를 낳은 참사로 상처받은 가족들을 충분히 위로했어야 했다. 그게 지도자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다음날과 5월 4일 진도에서, 5월 16일 청와대에서 만난 뒤 유족과의 만남을 거부했다. 유족들은 청와대 앞에 모여 만나달라고 했지만,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도자가 유가족들을 외면할 때 그해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족들을 대신 품었다. 한 유족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 동안 유족을 만난 횟수가 대통령이 만난 횟수보다 많았다"고 전했다. 유족들과 국민들은 타국의 교황을 통해 위로 받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지금도 광화문 광장에 나가고 있고, 참사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 만약 대통령이 유족들을 충분히 위로했다면, 상황이 어땠을까? 분명 하루 백만명이 넘고, 연 인원 천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유가족과 함께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세월호 7시간을 밝히라는 요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심리위기지원팀 신민영 단장은 "재난 상황에서 지도자에게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crisis communication)이 필요한데, 이런 부분이 세월호 참사 당시 많이 약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빠른 시일 내에 적극적이고 솔직하게 커뮤니케이션 해야한다는 것"이라며 "그래야 사과는 사과로, 해명은 해명으로 받아들여지는데 그게 시기적으로 단절된 뒤 이뤄지면 메시지 진위에 대해 의심을 하는 상황이 된다"고 설명했다.

2014년 10월 29일. 세월호 유족들의 면담 요구를 거부한 박근혜 대통령이 유족 옆을 지나치고 있다.

 실기4. 진상규명 방해 대신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몰두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650만 서명과 국회 논의 끝에 출범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협조하기는 커녕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대통령의 7시간 조사 문제를 놓고 여당 추천 특조위원들이 사퇴하면서 조사를 방해했다. 특조위는 임기 문제를 놓고 정부와 내내 갈등하다 결국 강제 해산됐다. 특조위 활동을 방해하라는 해수부의 문건이 발견됐으니 방해가 얼마나 노골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3일에도 해수부는 특조위 홈페이지마저 일방적으로 닫아 마지막 창구마저 봉쇄했다. 

만약 정부가 진상규명 방해 대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계속 됐을까. 정부가 항간에 떠도는 괴기한 소문처럼 고의로 세월호를 침몰시킨 것이 아니라면, 진상 규명에 속도를 내고 우리 사회의 다음 과제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인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세월호 이슈 자체를 봉쇄하는 데 급급했다. 

그 결과, 3년 가까이 지난 최근까지도 세월호 참사 대응 문제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고, 세월호 7시간 의혹은 탄핵안에 포함됐다. 대통령은 세월호 관련 블랙리스트 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기존 특조위는 강제 해산됐지만, 지금 국회에선 제2의 특조위 준비가 한창이고 특조위와 함께 세월호 진상 규명에 기여할 국민조사위도 발족했다. 결코 정부의 방해 작전으로는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미국에서 911 테러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미 정부의 대처에 대한 질타가 있었다. 독립적인 권한을 부여 받았던 911 테러 진상조사위원회는 정부의 잘못을 확인하기 위해 현직 대통령 조지 부시와 부통령, 백악관을 직접 방문조사했다. 부시 대통령은 조사에 응한 건 물론, 참사에 대한 단결된 대응을 내세워 오히려 재선에 성공하기도 했다. 

2016년 12월 14일. 최순실 국정조사 3차 청문회에서

 실기5. 지금이라도 세간의 의혹을 명백히 밝힌다면 

"거짓말로 쌓아올린 커다란 산",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 "광우병 사태와 유사" 

헌재에 답변하는 대신 인터넷 방송에 쏟아낸 박근혜 대통령의 거친 말들이다.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은 헌재에 '세월호 7시간'에 대한 부실한 답변으로 답변서를 보완할 것을 요구 받았다. 법치주의를 누구보다 강조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헌재의 요구는 무시하면서 인터넷 방송 '정규재TV'를 통해 국민들이 또다시 믿을 수 없는 말들을 했다. 

대통령의 인터뷰는 항간의 루머에 대한 반박, 배후설 제기, 동정심에 호소 뿐이었다. 정작 자신의 탄핵 사유인 재단 출연을 강요하고, 기업에 최순실 특혜를 주도록 요구한 것,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끝없는 실책을 지켜보던 국민들의 삶은 이미 지칠대로 지쳤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떳떳하게 모든 의혹을 밝히고 책임을 지는 것이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특검과 헌재의 조사에 진지하게 임하고 각종 의혹들에 대해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이 기회마저 또다시 스스로 걷어차버린다면, 그나마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역사 속에서 영원히 자신만이 옳았다고 믿었던 위선자로 남을지 모른다. 

지난 1월 25일. 인터넷방송 정규재TV와 인터뷰하는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  더 이상 "자괴감 든다"는 후회의 말 대신 

안타깝게도, 현실 속 우리 대통령은 이 가운데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러려고 대통령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후회만으로는 그 어떤 것도 돌이킬 수 없다. 늘 바로 앞에 주어진 기회를 직시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그때 그 순간, 현명한 지도자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가정을 통한 교훈은 있으리라 본다. 만시지탄이지만, 거대 참사 후 사회 시스템의 재정비와 함께 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충분히 같이 곱씹어보면 좋겠다. 국민들이 단 한 지도자 때문에 또다시 이같은 재앙을 반복해서 겪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조을선 기자sunshine5@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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