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퇴근이 '행복'.. 과로사 워킹맘 이해간다

이나연 입력 2017. 1. 2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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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고백①] 워킹맘의 과로사와 워킹맘을 위한 정책

[오마이뉴스 글:이나연, 편집:김예지]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일요일 보건복지부 여성 공무원 A씨가 과로사한 것이 알려졌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인 워킹맘 A씨는 육아휴직 복귀 후 7일 연속 근무를 했으며, 평일 내내 야근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많은 시민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표하는 동시에 '육아 및 노동 환경'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워킹맘이 실제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과 그들이 바라는 삶의 모습을 전달하기 위하여, 릴레이로 '워킹맘 시민기자'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 워킹맘 과로사 70점 엄마
ⓒ pixabay
지난 금요일 집에 도착한 시각은 9시. 지난주 평균 퇴근 시각보다 조금 늦었습니다. 최근 1년 내 저의 퇴근 시간은 지난 18년간의 직장생활을 통틀어 가장 이른 편인데요. 퇴근이 이른 이유는 회사에서 야근 수당을 주지 않기 때문에 야근을 못 하는 것이 한몫했습니다.

생산직이 아니라 사무직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야근수당만 몇 십만 원씩 받던 적이 있었는데요. 장기 침체로 야근을 줄이라는 지시 때문에 사무실의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절대적인 일의 양이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늘어지던 회의 시간이 짧아졌고 상사가 언제 퇴근할까, 눈치 보는 상황이 줄었습니다. 맡은 일이 끝나면 선배 혹은 부서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퇴근하는 문화가 조금씩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덕분에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도착할 수 있어서 저도, 아이들도, 더불어 쌍둥이 육아를 도와주고 계시는 친정 부모님까지 두루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후 9시 퇴근을 놓고 행복하다고 하니 정말 아이러니하지요. 쌍둥이 남매가 태어나던 해, 다행히 저는 육아휴직 중이었는데 남편은 회사의 프로젝트로 매일 새벽 12시 전에 집에 온 적이 없었습니다. 토요일도 출근, 일요일까지 출근한 일도 빈번했습니다. 복직 후 아이들이 5살이 되기 전까지는 제가 비슷한 상황에 처했었고요.

어떤 달에는 9번의 주말 중에 7일을 출근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다 보니 밤에 잠들지 않은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요즘만큼 좋은 때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이들이 어렸던 3~4년간 저나 남편의 주중 근로시간은 70~80시간을 훌쩍 넘겼는데요. 늘 그런 건 아니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그 시절을 버텨냈는지 지금 생각하면 고개가 설레설레 저어집니다.

얼마 전 '워킹맘의 과로사'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쌍둥이 남매와 비슷한 또래, 혹은 더 어린아이 셋을 두고 직장에서 사망했더군요. 중앙부처에서 일하는 고위 공무원이었는데, 젊은 나이에 사망해서 안타깝고 엄마(아내)를 먼저 보낸 아이들과 남편을 생각하면 더 마음이 짠했습니다.

주 중에도 9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고 주말에도 출근해서 일해야 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고 하네요. 8살 이하의 어린 자녀가 셋이던데, 회사에서보다 집에서 더 정신이 없었을 겁니다. 둘만 키워도 힘에 부치는데 아이 셋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루에 11시간 이상 일하면 심근경색 위험이 2.9배 증가하고, 일주일에 5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하면 사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워킹맘의 경우 이렇게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가사와 육아 때문에 쉴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워킹맘에게 집은 '제2의 직장'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녀는 왜 그렇게까지 일하려 했을까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2위에 이릅니다. 34개 회원국의 평균보다 연간 347시간, 하루의 노동 기준을 8시간으로 하면 1년에 43시간 즉 한 달이나 더 일하는 셈입니다. 요즘 세대는 가장 많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을 보이고 있지만 30~40대 여성의 경력단절은 여전한 상황입니다.

가족 구성 형태가 핵가족으로 변화하며 육아를 도울 가족이 줄었습니다. 여성이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는 인식도 여전히 공고합니다. 여성은 육아 부담이 가중되어 한창 일할 나이에 경력단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출산 후 복직하게 되면 이전보다 일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출산 휴가 후 복직하자마자 4년여간 가장 바쁜 부서에서 일했고 스스로도 가장 열심히 일했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사망한 워킹맘의 경우에도 주말까지 기꺼이 출근한 것을 보면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사망한 공무원은 복지부에서 전공과 관련된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어 즐거운 마음이었고 합니다. 학창시절, 고시공부를 한 내내 맡은 일을 잘 수행해냈던 경험 때문에 일과 육아, 모두를 내려놓지 못하고 스스로를 다그치지는 않았을까, 둘 다 잘하려고 애쓰던 건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든 경우 경력단절, 산후우울증으로 인한 아동 학대, 출산 기피 현상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 워킹맘과로사 70점엄마
ⓒ pixabay
이번 사건을 두고 혹은 대선을 앞두고 많은 정치인들이 다양한 육아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유승민 의원은 민간기업에도 공무원 수준의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일명 '육아휴직 3년 법'을 제안하는 한편, 문재인 전 대표는 초등 입학 전 자녀를 둔 워킹맘에게 10시~4시의 단축근무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육아, 아동, 청년 배당 등의 형태로 연간 100만 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박원순 서울시장은 아동, 청년, 노인 등에게 월 30만 원씩 지급하는 '한국형 기본소득제'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어린이집 등 기관 시설 투자를 확대를 제안하고, 안철수 전 대표는 출산휴가 90→120일 확대, 배우자 출산휴가 유급 3일→30일 확대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워킹맘 및 보육 문제, 아동수당 문제 등의 정책들을 들여다보면 대선 때 특정 계층의 표를 겨냥한 선심성 공약, 즉 표(標)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이전에만 단축근무를 하면 육아문제가 해결될까요? 육아휴직 3년으로 아이를 다 키우고 회사로 복귀하는 게 가능한가요? 보육 시설이 늘어나면 더 많이 일하는 부모와 함께 아이들은 보육 시설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나요?

보육수당, 출산지원금, 출산휴가 등 많은 사회제도가 생겨 이전보다 육아 상황이 좋아진 것은 분명합니다만, 현재 언급되고 있는 정책들 대부분 2%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육아란 단축근무, 3년의 휴직 등으로 끝나는 과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엄마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아이가 36개월이 안 되었을 땐, 외할머니만 집에 계시면 엄마가 회사에 가도 크게 떼를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4세쯤 되니까 출근할 때마다 현관은 울음바다가 되더군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닐 때보다 아이들은 훨씬 더 자주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했습니다.

게다가 여성의 육아휴직을 늘리거나, 단축근무를 법제화할 경우 회사에서는 여성 고용을 기피하게 됩니다. 출산휴가 직후 복직했을 때 저에게 부장님이 했던 말씀이 '남자 대리를 원했는데 아기 엄마가 와서 인사부에 항의하려고 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기 엄마는 일을 못 할 것이라는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애썼던 4년간의 고됨은 이유가 있었던 거죠.

또 1년만 쉬어도 사회생활에 다시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한데 3년이나 쉴 경우 복직은 더욱 요원해집니다. 좋은 의도로 쉬게 해주는 것이 경력단절을 심화시키는 거죠. 또 같은 월급으로 짧은 시간 일하는 여성을 선호할 회사는 없습니다. 이런 편견이 시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만을 위한 정책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육아는 부부 공동의 일이라는 인식 필요해

육아는 워킹맘, 즉 엄마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의 문제, 나아가 사회의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육아를 부부가 함께 해결하고, 사회가 도와주는 방식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노동시간 정상화가 시급합니다. 일이 많으면 고용을 늘리고, 아이 엄마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와도 자주 부딪치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으면 합니다. 육아휴직, 단축근무 등의 혜택은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의 사용도 의무화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사회에서도 육아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 부부가 함께 책임지고 누려야 할 권리라는 인식을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과 육아를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제도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그 혜택을 부모가 함께 누리게 되길 희망합니다. 어린아이들을 두고 간 워킹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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