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2월호] 대한민국은 종교의 천국? 아니, 무신론 강국!
뭔가 믿는다는 점에서는 유신론의 벗
유신론·무신론은 ‘주장(主張)’이다. 주장은 “자기의 의견이나 주의를 굳게 내세움”이다. 유신론이나 무신론은 우리 언어 체계에서 ‘론(論)’이다. 론(論)은 주장이요 학문이요 이론이다.
영어로는 좀 다르다. 영어에서 유신론에 해당하는 것은 시이즘(theism), 무신론은 에이시이즘(atheism)이다. ‘이즘(-ism)’인 것이다. 이즘은 ‘체제·운동·가르침’이다. 또한 마르크스주의(Marxism)·근본주의(Fundamentalism)·이슬람주의(Islamism)·교권반대주의(anti-clericalism)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즘은 주의(主義)다.
고대 인도에서도 무신론이 전개됐다. 우리가 수입한 유신론-무신론-불가지론을 둘러싼 논란은 주로 서구를 배경으로 전개됐다. 392년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그리스도교는 서로마제국(기원전 7세기~476년)의 멸망 이후에도 정치·경제· 사회·문화 등 중세 시대(5~15세기)의 모든 영역을 장악했다. 르네상스(14~16세기)와 계몽기(16~18세기)를 거치며 그리스 도교의 입지는 17세기에 본격적으로 대두한 무신론의 등장 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컨대 소위 ‘지역감정’은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정치적으로 크게 유의미하지 않았다. ‘3김’ 시대를 거치며 지역은 정치 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변수가 됐다. 원래는 우리에게 무신론은 무의미했다. 유교는 신이나 사후세계에 대해 무관심했다. 공자의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 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삶에 대해서도 잘 모 르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 알겠는가”였다.
그리스도교를 종교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삼는 서구 입 장에서 유교를 종교가 아니라 철학으로 보기도 한다.[세 계적인 유교학자 뚜웨이밍(杜?明) 중국 베이징 대학 고등 인문연구원장은 유교의 정의에 ‘종교적인 철학(religious philosophy)’을 포함시킨다.] 또한 서구의 관점에서 무신론적 체제로 분류되는 또한 불 교 또한 ‘신이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 불 교 입장에서 해탈이 문제라면 문제지 신의 존재여부는 지극 히 주변적인, 무시해도 되는 문제인 것이다.
상황이 바뀌고 있다. 지난해 말 발표된 ‘2015 인구주택총 조사’ 결과에 종교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신자 수에서 개신 교(967만6000명, 19.7%)가 불교(761만9000명, 15.5%)를 앞서 1위로 발표됐다. 종교가 없는 국민(56.1%)이 산업화 시 대 이후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1945년 광복 당시 2500만 인구 중 종교가 있는 국민 비율 은 4~6%에 불과했다.
그중 일부는 무신론을 적극적으로 ‘선교’한다. 주위 사람 들을 자신처럼 무신론자로 만들려고 한다. 그런 경우 무신 론은 또 하나의 종교가 된다.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1882년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프리드리히 니체 (1844~1900)는 “괴물들과 싸우는 자는 그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라는 말도 했다.
‘괴물’ 수준은 아니더라도 열광적인 무신론자는 지나친 유신론자 못지않게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하 지만 2014년 ‘종교풍경연구(Religious Landscape Study)’ 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무신론자 중 65%는 자신의 ‘무신론 신앙’에 대해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지 않는다. ‘호전적인’ 무신론자는 일상생활 속보다는 학계에서 접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무신론자들은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굳이 밝히지 않는다. 사회적인 억압·탄압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 다. 미국 대통령을 예를 삼아보자.
지난 미국 대선에 나온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장로 교,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감리교 신자였다. 트럼프나 클린턴이나 그다지 종교적인 인물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아 직 ‘대놓고’ 무신론을 표방하는 정치인은 대통령이 되기 힘들다.
관혼상제는 종교가 수행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다. 사 실상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 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제공하는 소속감 때문이다. 우리는 무 교 환경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종교를 믿지 않고도 충분히 관혼상제를 치를 수가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에는 아직 목사·신부가 집전하지 않는 관혼상제는 아직도 좀 낯설다.(1970년 영화 <러브스토리>의 결혼식 장면을 참조해보시라) 미국과 유럽의 무신론자들도 이제 비종교 관혼상제를 점차 발전시키고 있다. 세례받은 것 을 무효화하는 의식(debaptism)까지 등장했다.
상당수 유럽·미국 사람에게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불교 또한 무신론의 타깃이다. 유신론에 대한 또 다른 대안은 ‘유니테리언 유니버설리즘 (Unitarian Universalism)이다. 18세기에 발생한 유니테리 언 유니버설리즘은 ‘교리가 없는 종교’다. 개인의 신앙상의 자유를 중시한다. 이 종교의 회원들은 대부분 초월적인 존재 를 믿지 않지만 각자 자신만의 신 개념을 발전시키는 것은 자 유다.
세계의 종교마다 나름 지혜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생로병사와 같은 인간 조건에 대한 이해가 끊임없이 발전하 고 변화하는 것이며 계시(啓示)라는 게 있다면 계시 또한 새 로운 게 계속 등장한다고 본다. 신이 예수나 무함마드를 통해 마지막 계시를 전했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들의 모 임 장소는 교회·성당과 유사하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지 않았 던가. 어쩌면 유신론의 반대말은 무관심이지 무신론이 아니 다. 목사·신부 등 성직자까지 포함해 유신론자가 무신론자로 전향하기도 하지만, 무신론자가 ‘회심(回心)’해 유신론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무신론-유신론을 둘러싼 논란의 역사는 유구하다. 플라톤 (기원전 428년께~기원전 347년께)은 <법률>에서 무신론에 반대했다. 마키아벨리(1469~1527)는 정치와 종교·도덕의 분 리를 주장함으로써 무신론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이성을 중시한 데이비드 흄(1711~1776)과 이마누엘 칸트 (1724~1804)는 무신론자는 아니었지만 전통적인 유신론을 배격했다. 무신론의 역사에서 이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자 유다. 무신론자들은 신을 배제해야 인간이 자유롭게 될 수 있 다고 주장한다.
무신론과 유신론은 공동의 적도 있다. 예컨대 논리실증주 의는 무신론이나 유신론이나 무의미한 허튼소리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본다.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는 열정과 확신으 로 뭔가를 ‘믿는’ 사람들이다. 언젠가 열정과 확신이 희미해 진 시대에는 무신론자와 유신론자가 가장 친한 ‘벗’이 되지 않을까.
━ 표준국어 대사전이 정의한 무신론 관련 용어 무신론(無神論) “종교적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신앙을 거부하는 이론. 특히 인격적 의미의 신의 존재를 부정 하면서 세계는 그 자신에 의하여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주의, 유물론, 실존주의 따위가 이러한 사상에 입 각하고 있으며, 범신론도 무신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유신론(有神論) (1) 우주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신이 있 다는 종교적ㆍ철학적 사상. 일신론과 다신론이 있다. (2) 신은 세계를 초월하여 실재하는 유일의 인격신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사상.
불가지론(不可知論) 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종 교적 인식론. 이 학설은 유신론과 무신론을 모두 배격 한다.
이신론(理神論) 17~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에 나 타난 합리적인 종교관. 신의 존재와 진리의 근거를 인 간 이성이 인식할 수 있는 자연적인 것에서 구하는 이 론으로, 신을 세계의 창조자로 인정하지만 세상일에 관 여하거나 계시나 기적으로 자기를 나타내는 인격적 주 재자로서의 신을 부정했다.
■김환영
「김환영 중앙일보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 외교부 명예 정책자문 위원. 단국대 인재 아카데미(초빙교수), 한경대 영어과(겸임교수), 서강대 국제대학원(연구교수)에서 강의했음.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 스탠퍼드대 중남미학 석사,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쓴 책으로 <마음고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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