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술 인력은 이미 세계 시장서 왕따"

송창섭 기자 입력 2017. 1. 2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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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영 스탠튼체이스코리아 대표 "AI·사물인터넷 등 신기술 시장에서 한국 기술 낙오 우려"

모든 업종이 그렇듯 인재관리(HR) 분야 역시 최악의 불황에 놓여 있다. 자원빈국 대한민국에서 ‘인재가 자산’이라며 막대한 돈을 쏟아 붓던 시대는 이제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됐다. 당연히 HR 업계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흔히 ‘서치펌’(Search Firm)으로 불리는 헤드헌팅 회사들은 최근 심각한 구인·구직난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 기술자들에게 더 이상 배울 게 없다”

헤드헌팅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사람을 기업에 소개시켜 준다는 점에서 단순한 ‘인력 알선’업으로만 보기는 힘들다. 업종의 특성상 경기에 선행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무슨 말이냐면, 보통 기업이 신규 사업 진출을 결정하면 관련 기술을 빨리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인력 시장에서 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외에서 필요한 인재를 데리고 올 수 있다. 이때 필요한 조직이 ‘다국적 서치펌’이다. 우리나라 주요 IT(정보통신) 기술이 단숨에 미국·일본 등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도 다국적 서치펌들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사실상 마비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근 HR 시장에서는 해외 인재를 필요로 하는 국내 기업의 수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인재를 필요로 하는 해외 수요도 큰 폭으로 줄었다. 국내 1세대 다국적 서치펌(헤드헌팅 회사)인 스탠튼체이스코리아 강태영 대표는 “통상 매년 4분기는 업종의 특성상 사람을 구하느라 바쁘게 지내는 게 보통인데, 2014·2015년과 달리 지난해 4분기는 굉장히 수요가 적었다”고 말했다. 그는 “적합한 인재를 최적의 직장에 소개함으로써 기업과 후보자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게 우리 회사의 지향점인데, 지금은 IMF 외환위기 이래 가장 수요가 적다”고 안타까워했다. 강 대표는 HR 시장이 보통 실물경기보다 6개월 정도 선행한다고 설명했다.

강태영 스탠튼체이스코리아 대표 © 시사저널 이종현

스탠튼체이스는 1990년에 설립된 전 세계 10위권의 서치펌으로 미국 볼티모어에 본사를 두고 있다. 현재 전 세계 73곳에 지사를 냈다. 한국지사 성격인 스탠튼체이스코리아가 설립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전이다. 그러다 보니 시쳇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단군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인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부터 2000년대 중반 잠시 겪은 호황기까지 스탠튼체이스코리아는 곁에서 한국 경제의 부침(浮沈)을 다양한 각도에서 경험했다.

관련 산업이 ‘올스톱’ 됐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국내 기업들의 신규 투자가 예전 같지 않다. 바이오 및 헬스케어와 관련해 다양한 4차 산업 기술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국내 경제계는 ‘최순실 게이트’로 신규 투자가 사실상 중단됐다. 총수의 특검 출두를 앞둔 대기업들이 매년 연말 실시하는 정기 임원인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기술 조류가 빠르게 급변하는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강 대표는 “다수의 대기업이 경기 위축을 걱정해 조직을 통폐합하고 있으며,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신규 사업도 시간을 갖고 생각하자는 분위기가 많다. 글로벌 인재를 찾는 데 과거보다 소홀한 것이 그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해외에서 한국 인재를 찾는 수요가 급감했다는 점이다. 가령 해외 부품 회사들이 현대차·삼성전자·LG전자 등에 부품을 팔기 위해 한국 영업을 위한 인력을 찾는데, 이런 수요도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더 우울한 소식은, 최근 3~4년간 한국인 엔지니어를 대거 영입했던 인도·중국 등 개발도상국 IT 기업들이 더 이상 한국인 엔지니어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무슨 이유일까?

“최근 중국 내 3위권 가전 업체에서 한국 엔지니어 6명을 뽑아 달라는 요청이 와 대상자를 선발해 자료를 보냈는데, 그 업체에서 ‘이런 수준의 인력은 우리도 있다. 최고 기술자가 아니면 필요 없다’는 말을 듣고 허탈했어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 판단으로는 이들 국가의 기업들은 이제 ‘한국 기업의 기술자들에게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이라면 기술과 인재로 먹고살아야 하는 한국 경제에는 우울한 소식이다. 강 대표는 “인도·중국 기업들과의 기술력이 줄어들면서 예전 같으면 한국인을 찾던 수요가 이제는 미국·독일인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은, 세계 기술 시장에서 우리가 뒤처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연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박람회 CES에서 ‘한국 기업들이 세계 IT 시장에서 탄핵당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세계인의 이목을 끌 만한 기술이 없다는 뜻이다.

국가별 전략 산업도 갈수록 뚜렷하다. 이웃 일본이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면, 중국은 전기차동차·드론 기술 등에 특화된 모습이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은 사물인터넷 외에 자동차 강국답게 무인자동차 분야에서 세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특히 중국의 추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시장을 걷다 보면 영어보다 중국어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메인 전시장인 ‘LVCC홀’엔 삼성전자·LG전자·소니 등 ‘빅3’ 못지않게 화웨이·하이얼·TCL 등 중국계 가전 업체들이 예년과는 다르게 큰 규모로 부스를 차렸다.

 

“우수 인력 사 와서라도 기술력 확보해야”

신규 기술력 못지않게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못한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강태영 대표는 “스탠튼체이스 본사에서 개최하는 글로벌 매니저 회의에는 IBM이 수억 달러를, 구글이 수억 달러를 투자하려 하고, 이를 위해 고급인력을 의뢰받았다는 보고가 이뤄지는데, 싱가포르·일본·중국 지역이 대부분”이라며 “중국은 큰 시장을 갖고 있는 장점도 있지만, 임금이 상대적으로 싸고 노조 활동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주한 외국인 기업인들의 모임인 한국외국기업협회·주한미국상공회의소·주한유럽상공회의소(EUCCK)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지금 전 세계가 4차 산업에 열광하고 있을 때 정부도, 기업도 ‘나 몰라라’하고 뒷걸음질치면 안 됩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엔지니어보다 의대·경영대 등에 몰리는 게 말이 되나요? 일단 기업들이 신규 사업에 투자할 우수 인력을 데리고 와서라도 기술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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