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두산 박철우-박세혁 父子 "세간의 선입견 힘들게 이겨냈죠"

2017. 1. 2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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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의 박철우 타격코치(왼쪽)와 포수 박세혁은 부자지간으로 한 팀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함께 낀 부자는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야구인 가족’의 얘기를 털어놨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서늘한 눈매와 뭉툭하게 내려오는 콧날 그리고 옅은 미소까지. 누가 봐도 한 가족임을 알 수 있는 생김새에 한 번 놀란다면, 털털함과 남자다움을 갖춘 닮은꼴 성격에서 두 번 놀라게 된다. 주인공은 두산에서 2년째 한솥밥을 먹는 박철우(53) 타격코치와 그의 아들인 포수 박세혁(27)이다. 스포츠동아는 설 연휴를 맞아 그라운드를 훈훈하게 달구는 가족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숱한 ‘야구인 가족’ 중에서도 박철우-박세혁 부자(父子)가 카메라 앞에 선 이유는 하나다. 지난 시즌 한 팀에서 동고동락하며 한국시리즈(KS) 우승반지를 나란히 꼈기 때문이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야구인 가족’이라는 수식어. 그러나 이 허울 좋은 겉치레는 오히려 주홍글씨에 가까웠다. 정상에 함께 오르기까지 주위의 질투어린 시선을 이겨내는 일은 무엇보다 힘들었다. 박세혁은 ‘누구의 아들’이라는 선입견을 넘어서기 위해 이를 더욱 악물었고, 박 코치 역시 쓸데없는 뒷말을 듣지 않기 위해 몸가짐을 더욱 조심했다. 그라운드 안에선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지만, 집안에서만큼은 여느 아버지, 아들과 다를 바 없는 닮은꼴 부자를 잠실구장에서 만났다.
두산 박철우 코치-박세혁(오른쪽).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우승하고 사진 한 장 못 찍었네요” -KS 이후 두 달 만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박철우(이하 우) : 푹 쉬고 있습니다. 1년 가까이 몸을 혹사시킨 만큼 잠도 푹 자고, 개인운동에도 짬을 내고 있어요. 오전에는 가끔 집 근처 천마산에 오르기도 하고요. 최근엔 가족들과 함께 광주에 있는 고향집에 들러 시간을 보냈습니다.

박세혁(이하 혁) : 다른 선수들처럼 몸만들기 중이에요. 스프링캠프가 코앞이니까 운동을 안 할 수가 없네요. 피트니스센터에서 주로 시간을 보냅니다. 아, 잠실구장에도 자주 나가요. 아무래도 동료들이랑 같이 운동을 해야 마음도 편하고 서로 의지가 되거든요.

-부자가 나란히 시즌 준비에 한창이네요.

우 : 코치들도 선수처럼 1년을 버틸 체력이 필요해요. 성적에 따른 스트레스도 견뎌내야 하고요. 특히 우리는 경기 내내 서있어야 하니까 남모를 고충이 커요. 때론 하지정맥류 같은 병에도 걸립니다. 일종의 직업병이라고나 할까.(웃음) 그래서 종합검진도 꼭 받습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겨울은 야구계 종사자들에게 유일한 휴가철 아닙니까?

혁 : 말 그대로 유일한 휴식시간이죠. 특히 저희 가족은 4명 중에 2명이 야구인이니까 겨울이 더욱 소중해요. 지난해 12월엔 시간을 내서 일본 도쿄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동생이 4~5년 정도 일본 유학을 한 터라 가이드를 직접 해줍니다. 동생 덕 좀 봤죠.

우 :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시간이 지금입니다. 저나 세혁이나 집에 없는 날이 태반이니 쉴 때라도 가장 노릇을 하려고 해요. 이때라도 집사람한테 점수 따야죠. 하하.

-지난해 동반 우승을 한 뒤라 올겨울은 따뜻하겠어요.

우 : 저는 사실 선수 그리고 코치로서 KS 우승을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해태에서 선수로 뛸 땐 5번(1987~1989, 1991, 1993년)이나 정상을 밟았고, 두산 코치로 일한 뒤에도 2년 연속(2015~2016년) 우승을 경험했어요. 그래도 이번 우승이 제일 기분 좋더라고요. 아무래도 아들과 함께한 첫 우승이니까요. 뜻 깊은 순간이었죠.

혁 : 2015년 우승 때는 2군에서 지켜만 보다가 드디어 우승 멤버가 됐어요. 꿈에서만 그리던 KS 우승을 경험하니 날듯이 기쁘더군요. 게다가 아버지와 함께 한 우승 아닙니까. 느낌이 뭔가 새롭더라고요.

-당시 인터뷰에서 우승을 하게 되면 아들을 꼭 안아보겠다고 말했는데요.

우 : 안는 건 둘째 치고, 우승하던 순간에 사진 한 장 못 찍어서 너무 아쉽습니다. 아들이 정신없이 샴페인을 뿌리고 다니니 도통 찾을 수가 있어야죠.

혁 : 아버지께선 우승을 많이 맛보셨을지 몰라도 저는 처음 아닙니까? 정신이 있을 리 만무했죠.(웃음) 우승 세리머니가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와 사진은 다음 기회에 꼭 찍으려고요.

우 : 아들 얘기 들어보니 이번 시즌에 꼭 우승해야겠네요. 하하.

1989년 KS MVP를 차지할 당시 박철우.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 “세혁이가 한마디로 복덩이였죠” -가족의 탄생은 언제였습니까.

우 : 결혼을 일찍 했어요. 연애결혼이었는데 제가 스무 다섯 살 때(1989년) 식을 올려버렸죠. 첫 아이가 세혁이었는데 저랑 안사람이 모두 장남, 장녀라 세혁이가 양가 첫 손주였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죠.

-공교롭게도 아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즈음에 여러 경사가 있었습니다.

우 : 결혼하자마자 세혁이를 가졌어요. 그 해에 제가 KS MVP와 함께 골든글러브(외야수)를 모두 따냈죠. 그 뒤로도 선수생활이 잘 풀렸으니 세혁이가 한마디로 ‘복덩이’였던 셈이죠.

혁 : 제가 복덩이인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웃음) 당시 아버지 활약상을 익히 들었거든요. 제가 인터넷이나 TV를 통해 영상을 직접 찾아보기도 했고요.

-그라운드를 나와 집에 들어가면 야구 이야기는 서로 안한다고 들었습니다.

혁 : 운동과 관련된 이야기는 서로 피하려고 하죠. 이 부분은 아버지께서 더 신경 쓰시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그러시지 않을까요?

우 : 밥상머리까지 야구를 끌어들이고 싶진 않아요. 얘기하는 순간 서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냥 아들한테 ‘밥 먹자’는 소리만 합니다.

-그렇다면 집안에선 어떤 모습인가요?

우 : 말 그대로 가부장적인 아빠죠.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해도 남들처럼 하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가뜩이나 저는 타지에서 오래 머물다보니 서울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 지낼 시간도 부족했어요. 가족들한텐 참 미안하죠. 그래서 요새는 집에 있으려고 하는데 이젠 애들이 집에 붙어있지를 않네요.

혁 : 저야 뭐 무뚝뚝한 아들이죠. 그래도 어머니와는 살갑게 지냅니다.

우 : (질투심을 가득 담아) 집사람이랑 세혁이는 벗이에요, 벗.

두산 박철우 코치-박세혁(오른쪽).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주위의 색안경 낀 시선은 늘 부담이었죠” -언제부터 아들이 아버지의 길을 따랐나요.

혁 :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야구가 하고 싶더라고요. 물론 아버지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겠죠. 아무튼 그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지금까지 왔네요. 포수라는 포지션도 제가 정했습니다.

-야구 선배로서 반대 안하셨나요?

우 : 뭐 자기가 하고 싶어 하니까 말리진 않았죠. 이 길이 쉽지 않으니 걱정은 됐지만…. 자기가 그만두려고 할 때까지 시키려고 했는데 곧잘 하더라고요. 중학생 때만 하더라도 특출 나진 않았는데, 고등학교 들어가서 실력이 늘었죠.

-사실 ‘야구인 가족’이라는 수식어는 장단이 있어 보입니다.

우 : 처음엔 말도 못했죠. 우선 남들 시선이 가장 신경 쓰였죠. 우리를 볼 때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까…. 세혁이는 ‘박철우 아들’이라는 말이 듣기 싫었겠지만, 저 역시 뒷말을 듣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했죠. 어찌 보면 숙명인 셈이죠.

혁 : 어렸을 땐 어디를 가든 ‘박철우 아들’로 불렸어요. 남모를 스트레스였죠. 그래도 이젠 신경 쓰지도 않고, 신경 쓸 겨를도 없어요. 그럴 나이도 지났고, 이젠 1군에서 버티기도 힘드니까.(웃음)

우 : 세혁이가 학교 야구부에 있을 땐 어려운 점이 많았죠. 제가 아들에게 다가가는 순간 다른 코치·감독들에게 폐가 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내색을 하고 싶어도 참았죠. 요샌 TV 중계카메라가 신경 쓰여요. 세혁이가 나올 때마다 저를 비추더라고요. 어떤 표정을 지어야 될지 도무지 모르겠어요.(웃음)

-그래도 요새 아들을 보면 흐뭇하시죠?

우 : 사실 아들을 프로선수로 키워낸 건 세혁이 엄마예요. 집사람이 뒷바라지를 다 했죠. 저는 2~3할 정도밖에 도움을 못 줬어요. 주전은 아니더라도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생각해보면 지금은 오히려 세혁이한테 좋은 기회예요. 백업 경쟁도 할 수 있고, 선배인 양의지한테도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기가 지금이에요.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혁 : 새해에도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시즌을 무사히 완주해서 지난해처럼 아버지와 함께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합니다.

우 : 올 한 해도 다치는 곳 없이 치러내야죠. 같은 팀에 있는 동안에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냈으면 해요. 그래도 한 가지 기쁜 게 뭔지 아세요? 이젠 ‘박철우 아들’이란 말보다 ‘박세혁 아버지’란 말이 더 자주 들린다는 거예요. 하하.

두산 박철우 코치-박세혁(오른쪽).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두산 박철우 타격코치

▲생년월일=1964년 4월 12일 ▲신체조건=181cm·95kg(좌투좌타) ▲출신교=월산초∼전남중∼광주일고∼동국대 ▲프로 입단=1987년도 신인드래프트 해태 1차지명 ▲프로 경력=해태(1987∼1993년)∼쌍방울(1994∼1999년) ▲통산 성적=961경기 타율 0.278, 701안타, 59홈런, 372타점, 247득점 ▲지도자 경력=SK 2군 타격코치(2000년)∼KIA 타격코치(2001∼2005년)∼광주진흥고 감독(2006년)∼코리아 해치 감독(2010년)∼KIA 타격코치(2012∼2013년)∼고양 원더스 타격코치(2014년)∼두산 타격코치(2015년∼현재)

● 두산 박세혁

▲생년월일=1990년 1월 9일 ▲신체조건=181cm·86kg(우투좌타) ▲출신교=수유초∼신일중∼신일고∼고려대 ▲프로 입단=2012년도 신인드래프트 두산 5라운드(전체 47순위) ▲입단 계약금=6000만원 ▲프로 경=두산(2012∼2013년)∼상무(2013∼2015년)∼두산(2015년∼현재) ▲통산 성적=111경기 타율 0.216, 44안타, 5홈런 26타점, 31득점 ▲2017시즌 연봉=6000만원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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