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의 워치콘 X]'협상의 명수' 트럼프를 상대하는 법
이철희 논설위원 |
71세 재벌을 가르친다고?
선거 캠페인 때야 무슨 말을 못 하겠어. 당선돼선 달라질 거야. 트럼프 내각의 합리적 현실주의자들을 봐. 트럼프라고 별수 있어? 많은 이들이 이렇게 예상했다. 지난해 말 한국을 다녀간 공화당 인사들도 한결같이 “선거 땐 으레 말이 거칠어지는 법 아니냐”고 했다. 심지어 “트럼프를 잘 가르칠(educate) 테니 염려 마라”라고 한 공화당 의원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하긴 나이 70을 넘은 사람을 누가 가르치겠나. 미국 언론도 “후보 때와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뿌리 뽑아버렸다”(월스트리트저널)고 했다. 취임 직후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등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트럼프는 왜 이렇게 몰아치는 걸까. 타고난 승부사로서 ‘기습적 충격요법’의 효과를 익히 잘 아는 트럼프다. 자신의 책 ‘불구가 된 미국’에 “기습은 승리를 안긴다. 상대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에게 만능 외교정책은 없다. “언제나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절대 패를 보여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당분간 트럼프발 충격파는 계속될 것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예측하기 힘든 싱크빅(think-big·통 큰 생각)으로 불확실성을 높인 뒤 지렛대(leverage)로 판을 흔들고 거친 파이트백(fight-back·반격)으로 후려쳤다. 일례로 중국을 상대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렛대로 흔들며 중국의 항의에 거칠게 받아쳤다.
한 협상 전문가는 트럼프를 “땅 냄새를 정확히 맡는 사자”(안세영 ‘도널드 트럼프와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에 비유한다. 남들이 흑인과 히스패닉에 집중할 때 ‘백인 표밭’ 냄새를 정확히 맡은 것도 그의 동물적 후각 덕분이다. 당장은 멕시코나 중국이 사자의 ‘먹잇감’이지만 곧 한국 차례가 될 것이다. 이미 “일자리를 뺏는 최악의 협상”이라며 한미 FTA 재협상을 외쳤고,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며 “왜 100%는 안 되느냐”며 분담금 인상을 요구했다.
이런 사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미국 내 네트워크를 넓히고 꼼꼼한 대차대조표를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당장은 좋은 인상부터 심어주는 ‘여우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본은 벌써 발 빠르게 그런 전략을 펴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국정 공백 속에서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트럼프를 상대할 준비가 돼 있을까.
벌써부터 으르렁거려서야
현재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는 문재인이다. 최근 미국 외교전문지엔 ‘문재인이 당선되고 트럼프가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면 한국은 미군 철수를 내버려둘 수 있다’는 기고문이 실렸다. 이에 문재인은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논점은 내가 당선되면 협상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데 방점이 있다”며 ‘당당한 협상’을 강조했다. 실제로 트럼프라면 한국에 가장 민감한 ‘주한미군 카드’를 협상의 지렛대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사자는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먼저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게 과연 협상에 유리할지 의문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오늘의 동아일보][☞동아닷컴 Top기사] |
어제 못본 TV 명장면이 궁금하다면 'VODA' |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약물·굿판, 어마어마한 거짓말 만들어..탄핵근거 취약"
- 崔 "민주 특검 아니다..자백강요, 억울해" 특검서 고함
- "文킬러는 신동욱도 아니요, 반기문도 아니요, 표창원이다"
-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반기문 지지율, 문재인 절반 수준 '하락'
- 정동춘 "고영태 일당 K스포츠재단 장악하려고 날 몰아내려 해"
- 퇴임 앞둔 박한철 헌재소장 "탄핵심판 3월13일 전 선고해야"
- '더러운 잠' 작가 이구영 "표창원 가족 누드, 인신공격성 풍자"
- 청와대 측, 국정교과서 반발 커지자 '보수단체 총동원령' 의혹
- 朴대통령측 "블랙리스트 지시 안해"..중앙일보에 1억대 소송
- 최초 발굴된 구석기시대 집자리..日 식민사관 잠재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