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블랙리스트의 시발점은 박 대통령 풍자 연극 '개구리'

정진우 2017. 1. 26.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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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리스트 작성 지시 계기돼"
문체부 간부들, 특검 조사서 진술
연출자 박근형씨 지원했단 이유로
당시 예술정책국장, 1급 승진 탈락

“우리 딸애 작년에 기말시험 본 거 있잖아요. 그걸 가지고 커닝했다, 점수 조작했다… 옛날 같으면 그냥 탱크로 확!”

2013년 가을에 국립극단이 상연한 연극 ‘개구리’에 등장하는 대사다. ‘우리 딸애’는 박근혜 대통령을, ‘기말시험’은 대통령선거를, ‘점수 조작’은 득표 수 조작을 의미했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2012년 대통령선거가 부정 선거였다는 주장과 연결된 부분이다. 개구리를 연출한 박근형(55) 작가는 당시에 “현재 권력을 가진 쪽을 신랄히 풍자하는 게 예술”이라고 말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따르면 소환조사를 받은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들은 이 연극이 다음해(2014년) 청와대가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는 계기가 됐다고 진술했다. 특검팀 조사에서 박 작가에 대한 지원금 중단 등의 조치가 이뤄진 것도 확인됐다. 문체부 고위 관계자는 25일 “2014년 상반기에 청와대에서 ‘뭐 이딴 빨갱이 연극을 가만히 놔뒀느냐’며 난리가 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내용이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문체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연극 ‘개구리’로 인한 후폭풍은 문체부 인사에도 반영됐다. 당초 2014년 하반기 1급 승진 대상자였던 예술정책국장이 박 작가에게 창작지원금을 지급했다는 이유로 승진에서 탈락했다. ━ 김기춘, 블랙리스트 ‘공공성 강화작업’ 명명 문체부 관계자는 “유력한 승진 대상자였던 예술정책국장에 대해 민정수석실에서 승진 대상자 명단에 올리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개구리 작가 지원건으로 승진시킬 수 없으니 윗선에서 노발대발하는 모습을 보기 싫으면 알아서 처리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정부부처 국장급 이상 고위직 인사 전에 검증작업을 하는 것은 민정수석실의 업무다. 하지만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문화·예술인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승진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부당한 인사 압력에 해당한다.
김기춘
특검팀에 따르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성·적용업무에 ‘문화·예술계 공공성 강화작업’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문체부 관계자는 특검팀 조사에서 “문체부에선 ‘지원 배제작업’ 자체가 금기어로 통했다. 대신 김 전 실장의 표현을 빌려 공공성 강화작업, 건전 콘텐트 강화작업 등으로 지칭했다”고 진술했다.

특검팀 수사에서는 김 전 실장이 2014년 10월 청와대에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을 질책하며 블랙리스트 작성을 독촉한 정황도 확인됐다. 수사팀은 “김 전 실장이 ‘좌파 예술인들이 득세하는 꼴을 왜 지켜보고 있느냐. 문화·예술계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진보 예술인들을 말려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는 진술도 얻었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전 실장은 실제로 헌법적 가치에 위배되는 범죄 행위를 ‘국익을 위한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25일 탄핵심판 9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장관직을 사임한 결정적 이유에 대해 “자니 윤을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하라는 지시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2014년 5월 19일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낙하산 인사 근절’을 강조한 바로 다음 날 이 같은 낙하산 인사가 시도됐다고 주장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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