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수거하는 어르신들, 무시하는 시선에 더 큰 상처"

글 이명희 기자·사진 박민규 선임기자 2017. 1. 25.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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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리어카에 광고 부착, 수익 늘려준 서울대 동아리 ‘인액터스’

비영리사업 ‘광고하는 리어카’를 진행하고 있는 ‘끌림’의 한 멤버가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고물상에서 ‘광고하는 리어카’를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끌림의 이건용 팀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좋은 가치를 확산시키려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더 아름다워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끌림’ 제공

“정부에서 주는 기초노령연금 20만원이랑 폐지 수거로 벌어들이는 10만원이 전부야. 이 돈으로 월세 내고 밥 먹으면 남는 게 없어.”

2015년 겨울, 서울대 사회공헌 동아리 ‘인액터스’의 학생들이 만난 폐지 수거 노인들의 삶은 팍팍했다. 10년 가까이 폐지를 주워 생활비를 마련해 온 김모 할머니가 동네 곳곳을 돌아다녀 손에 쥐는 돈은 하루 3000원 남짓, 한 달 꼬박 일해야 10만원도 안된다. 이제 김 할머니는 매달 4만∼5만원을 더 벌게 됐다. 할머니가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광고를 실어주는 대가로 추가 수익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광고하는 리어카’를 고안한 건 바로 대학생들이다. 폐지를 포함한 재활용자원을 수거하는 노인들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할 방법을 찾던 인액터스의 이건용(27·자유전공학부)·김광준(25·언론정보학)·박은호(23·심리학)씨 등이 리어카에 광고를 부착해서 그 수익으로 노인들을 돕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들은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해 11월 전국고물상연합회와 연계해서 비영리법인 ‘끌림’을 세우고, 정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끌림은 ‘리어카를 끈다’와 ‘눈길을 끈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광고를 통한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끌림의 이건용 팀장(왼쪽 사진)을 지난 17일 경향신문에서 만났다.

“3년 전부터 국제유가 폭락, 제지회사의 폐지 가격 담합 등으로 폐지 수거 노인들의 수입이 반토막 났어요. 방한용품, 쌀·라면 지원 등 일회성에 그치는 프로젝트 말고 지속적으로 어르신들 삶에 보탬이 되는 게 뭐가 있을까 찾다가 폐지 수거 리어카에 주목하게 된 거예요.”

7명의 끌림 멤버들은 폐지 수거 노인들을 인터뷰하며 실태를 파악했다. 광고 효과가 있는지 살피려고 서울 신림동 일대를 온종일 리어카를 끌고 다녔다. 실제로 리어카를 끌어 보니 젊은 사람이 끌기에도 너무 무거웠고, 옆면도 광고판을 달기에는 비좁았다. 이들은 가벼운 소재를 사용해서 시중에 있는 리어카보다 무게가 절반이나 가볍고, 광고판을 부착할 수 있는 ‘끌림 리어카’를 새로 제작했다. 리어카에는 ‘광고주를 모집합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붙였다. 서울대 글로벌사회공헌단이 끌림에 지원한 초기 자금 300만원으로 리어카 12대를 제작했다.

이씨는 “관악구·성동구·광진구 내 3개 고물상에 우선 배포했는데 한 달도 안 돼 취지에 공감한 중고차 딜러로부터 첫 광고 의뢰가 들어왔다”면서 “리어카 광고는 지하철역, 버스 광고보다 저렴하고 활동 반경이 특정 동네에 국한되어 있어 지역 친화적이다. 게다가 기존에 없던 광고라서 주목도가 높아 시장성이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와 한국순환자원유통센터도 끌림에 손을 내밀었다. 환경부는 리어카 50대의 제작 비용을 지원했고, 한국순환자원유통센터도 500만원 상당의 광고를 의뢰했다.

현재 끌림 리어카는 70대로 늘어났다. 끌림은 광고료 70~80%를 폐지 수거 노인에게 지급하고 있다. 이씨는 “고물상 사장님과 의논해서 가장 형편이 어렵고 성실하게 리어카를 운행해 주실 분들에게 우선 기회를 드리고 있다”면서 “리어카를 달라고 하시는 어르신들 숫자도 늘어서 당장 리어카가 부족하다. 제작비 마련을 위해 다음스토리펀딩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고주가 되고 리어카 제작비를 지원해주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거둬줬으면 합니다. ‘시선 폭행’이라고 하잖아요. 그분들이 그런 눈초리에 상처를 받으시거든요. ‘더럽다’라거나 ‘패배자’라며 무시당하기 일쑤여서 다들 너무 외로워하세요. 처음엔 저희한테도 거부감을 느끼셨지만 따라다니면서 얘기 들어드리고 하니까 진심이 통하더라고요. 요즘은 ‘고맙다’고들 하십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5년 발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만 65세 노인 1만27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답한 노인은 28.9%였으며, 이들 가운데 폐지 수거일을 하고 있다는 노인은 4.4%로 집계됐다. 하지만 폐지 수거일을 하고 있는 노인 인구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고물상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이씨는 “폐지 수거일을 하는 노인들이 170만∼180만명 정도 된다는 것이 고물상 업계의 추산”이라면서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650만명 정도인데 노인 인구의 4분의 1이 폐지 수거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회가 정상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글 이명희 기자·사진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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