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불러놓고 밤 1시에 나타난 검사

양은경 기자 2017. 1. 25.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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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협 '2016 검사평가' 결과로 본 검찰의 고질적 병폐]
- 막말·편파 수사 여전
임신 8개월인 참고인에게 "유산하면 책임질테니 나와라"
고소인·피의자名 틀리게 적기도
- 2년째 맞은 변호사의 검사 평가
2178명 참여.. 3배 이상 늘어

회사원 김모씨는 지난해 검사와 통화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 검찰청의 △△△검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검사는 "회사 일과 관련해 참고인으로 조사할 게 있으니 검찰청으로 나와달라"고 했다. 임신 8개월이던 김씨는 "그날 산부인과에 진료를 받게 돼 있어서 출석하기 어렵다"고 사정했다. 그러나 검사는 "유산(流産)을 하면 내가 책임질 테니 빨리 오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씨가 겪은 일은 변호사와 회사 동료들에게 알려져, 대한변호사협회의 '검사평가 사례집'에 담겼다.

변협이 24일 내놓은 '2016년 검사평가 사례집'을 보면 피의자나 참고인들을 대하는 검사들의 고압적인 태도, '갑질'을 연상시키는 조사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사례집에 따르면 어느 검사는 오전 10시부터 피의자를 소환해 수사관에게 조사를 맡기더니 새벽 1시 무렵에야 나타나 "야, 다 거짓말이네, 이 거짓말을 왜 다 쳐주세요?"하며 수사관을 핀잔 줬다. 그러더니 "이거 죄질이 안 좋다. 구속시켜야 한다"고 윽박질렀다는 것이 피의자와 변호인의 주장이다. 검사는 이어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했는데 검사가 피의자에게 읽어보라며 준 조서(調書)에는 검사가 한 말 위주로 적혀 있었을 뿐 아니라, 분량도 달랑 A4용지 몇 장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다른 검사는 조사받는 사람을 오전 10시 30분에 나오라고 하더니 낮 12시가 넘어서야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오라'고 했다고 한다. 이 검사는 변호인에게도 "변호사가 뭘 알겠냐, 의뢰인에게 듣고 나불나불하는 거지"라며 막말을 내뱉었다고 한다. 피의자를 세 시간 넘게 기다리게 해놓고는 장시간 사적인 통화를 한 검사, 검사실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피의자에게 "이 ××, 니가 다 해 처먹었네. 젊은 놈이 간도 크다"라고 폭언을 한 검사의 사례도 있었다.

또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하자, "당신은 범인이 맞다. 눈동자가 흔들리네. 내가 딱 보면 안다"며 자백을 종용하고, 피의자가 변호인과 상의하려고 하자 "이 방(검사실)을 나가는 순간 관용은 없다. 지금 자백하라"고 한 검사도 있었다고 변협은 밝혔다.

갓 개업한 전직 검사장이 고소 사건을 수임하자 상대방 변호사가 정리해온 범죄 사실을 그에게 보여준 검사도 있었다고 한다. '전관예우'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 2년째를 맞은 변협의 '검사평가제'는 올 들어 2178명의 변호사가 참여했다. 전국 변호사 1만8850명의 11.5%가 참여한 것으로 601명이 참여한 지난해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막말 수사, 편파 수사, 무작정 기다리게 하기 등 변호사와 피의자들이 겪은 검찰의 고질적인 병폐들이 사례집에 담겼다.

변협이 소개한 사례 중에는 1년이 넘게 결정을 안 내리고 끌던 사건을 불기소하면서 '불기소 이유서'에 고소인과 피의자의 이름을 열 군데 이상 틀리게 적은 검사가 있었는가 하면, 고소인에게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케이크라도 갖고 와야 하지 않느냐"라고 한 검사도 있었다.

변협은 이 같은 사례와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하위 검사' 20명을 선정했다. 변협은 검사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고 이들이 소속된 검찰청만 공개했다. 서울중앙지검이 7명, 서울고검이 2명 등이었다. 반면 서울중앙지검의 김덕곤(47) 검사 등 10명은 '우수 검사'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김 검사는 5명으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았다.

변호사나 피의자들이 형사재판에서 대척점에 있는 검사를 평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변호사들의 참여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검찰 수사의 문제점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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