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추적> '취직 못하면 해외봉사' vs. '봉사는 땅 파서 하나'

손호영 기자 2017. 1. 24. 15: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광주 조선대에서 열린 '청년과 대한민국의 미래' 토론회에서 강연하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유튜브 캡쳐

지난 2015년 경기도의 한 대학에서 진행한 해외봉사에 참여한 김성진(28)씨는 9박 10일간 필리핀 세부 올랑고섬에서 봉사하기 위해 개인 부담금으로 85만원 정도를 냈다. 이외에 현지에서 사용한 생활비도 10만원 이상 됐다.

항공기와 현지 체류비를 지원해 준다고 하기에 돈이 얼마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신청금 60만원에 예방접종 비용을 합하니 75만원이 훌쩍 나갔다고 한다. 국가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며 용돈을 벌던 김씨는 참가비와 예방접종비용 때문에 추가로 아르바이트를 해 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세계는 여러분들을 높이 보고 있는데 우리는 아래를 보고 있어요. (중략)여러분들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해외로 진출해서, 정 다른 일이 없으면 정말 볼룬티어(Volunteer·자원봉사)로라도 나가서 세계 어려운 데도 다녀보고 이런 걸 기르는 게 중요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반기문(73)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8일 광주 조선대에서 열린 ‘청년과 대한민국의 미래’ 강연에서 한 발언을 두고 젊은 네티즌들이 격하게 반발했다. 반 전 총장 측은 “좋은 뜻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의 중요성과 자원봉사의 위대한 가치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했지만 젊은 층에선 “알바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해외 가는 게 쉬운 줄 아느냐” “봉사하고 싶어도 돈 없어 못한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본지가 지난해 진행된 해외 봉사 19건을 조사한 결과, 그 중 5건이 자기부담금이 필요했다. 자기부담금이 들어가는 경우 기간과 국가에 따라 다르지만 60만원에서 최대 130만원 이상 들었다. 아르바이트나 취업 준비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대학생들에게는 그만한 돈을 마련하는 것도, 그 돈으로 해외로 며칠간 떠나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주최 기관에서 항공기와 체류 비용 전액을 지원하는 경우에도, 참가자들은 “주말 생활비나 긴급상황에 대비한 추가 경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북의 한 대학생 고모(26)씨는 6년째 꾸준히 국내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해외봉사활동에는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 갈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학교에서 주관하는 공고글을 보고 관심을 가졌지만 수십만원 참가비가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고씨는 “학교에서 해외봉사단을 모집한다고 해서 알아봤더니 참가비로 80만원이 든다고 했다”며 “80만원이라면 학생으로써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이 많은데, 굳이 해외봉사를 갈만큼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천모(28)씨도 스펙 등을 이유로 단기해외봉사활동에 관심을 가졌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좋은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러 가는 일이지만 굳이 돈을 내면서 갈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천 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해외봉사를 갈 경우 아르바이트 시간을 바꿔야 해서 사실상 가기가 쉽지 않았다”며 “열정이 있다면 100만원 가까이를 모아서 갈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로 열정을 쏟을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전액 경비를 지원하는 봉사활동의 경우는 경쟁률이 수십대 1에서 수백대 1에 달해 취업 지원 못지 않게 문턱이 높다. 지난해 신한생명에서 모집한 대학생 해외봉사단의 경우 20명을 뽑아 열흘간 베트남 해외봉사를 떠나는 일정에 713명이 지원해 최종 경쟁률이 36대 1을 기록했다. KB와 YMCA에서 주관하는 ‘라온아띠 해외봉사단’도 2008년부터 2015년까지 8년 간의 평균 경쟁률이 58대 1에 달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충주시에서 반기문 총장의 이름을 내걸고 3년째 운영중인 ‘반기문 해외봉사’도 있다. 지난 20일까지 저소득층과 성적 우수자 등 중학생 20명을 뽑아 4박 5일로 진행된 이 해외봉사의 자기부담금은 총 50만원이었다.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해외봉사라 이 금액은 고스란히 부모가 부담해야 했다.

/손호영 기자, 정순민 인턴기자(한양대 전자공학과 4년)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