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의 풀꽃나무 이야기] 국내 최대의 난대림을 품은 애인 같은 수목원, 완도수목원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 입력 2017. 1. 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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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수목원은 국내 최대의 난대림이자 국내 유일의 난대수목원입니다. 난대림이란 동백나무나 후박나무처럼 넓고 반짝이는 잎을 가진 상록활엽수가 우거진 숲을 말합니다. 낙엽활엽수가 잎을 모두 떨군 겨울에 완도수목원이 햇빛에 반짝이는 초록빛 장관을 연출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상록활엽수 덕분입니다.

전남 완도군 군외면의 완도수목원

완도수목원의 가장 큰 특징은 방대한 규모에 있습니다. 섬 등 쪽에 쌍봉낙타처럼 솟은 백운봉(601m)과 상황봉(644m)를 끼고 드넓게 조성한 수목원이다 보니 헤아리기 어려운 면적의 덩치를 자랑합니다. 전시원과 산봉우리가 경계선 없이 한 덩어리로 뭉쳐 있는 수목원을 상상해 보십시오. 관람과 등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수목원이라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또한 완도수목원은 자연미 넘치는 수목원입니다. 완도 본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면적에 752종의 자생 난대수종을 보유했고, 집중 관리하는 곳을 뺀 나머지 지역을 자생지 상태 그대로 보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인공미가 아닌 자연미 가득한 풍광이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수목원에 담겼습니다. 세 곳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여타의 수목원과 비교되지 않아 차마 말 못하겠습니다.

상황봉으로 가는 등산로

볼거리는 수목원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나타납니다. 가을경에 완도수목원으로 진입하다 보면 길 양쪽으로 빨간 열매를 매단 가로수가 눈에 띕니다. 포도송이처럼 늘어졌으나 붉은색인 그것은 이나무의 열매입니다.

“이 나무가 무슨 나무죠?” 하고 누가 물으면 “잘 알면서 뭘 물어요? 이 나무는 저 나무도 아니고 그 나무도 아닌, 이나무가 맞습니다” 하는 유치한 장난이 가능합니다. 전북 내장산이 북방한계지인 남부 수종으로, 비교적 보기 드문 편이라 야생에서는 어떤 게 이나무인지 짚어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완도수목원에서는 이 나무가 이나무라고 단박에 가리킬 수 있습니다.

붉게 익은 이나무 열매

이나무는 ‘의(椅)나무’에서 변한 이름입니다. 여기서 의(椅)는 이나무 자체를 뜻하는 한자입니다. 이름 유래에 다른 주장이 있기도 합니다. 이나무의 잎자루에 달리는 샘점(냄새 나는 물질을 분비하는 점 같은 조직)이 사람 머리에 사는 ‘이’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나무라고 한다는 설이 그것입니다.

말도 안 된다고 코웃음 쳤다간 살짝 충격 받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이나무의 잎자루에는 ‘이’처럼 생긴 도톰한 샘점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식물명의 유래를 지나치게 현대어 위주로 유추하는 건 자의적인 해석이 될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이나무 잎자루의 ‘이’처럼 생긴 샘점

한문으로 표기해 의나무나 위나무로 불렸던 나무한테서 사람 몸에 기생하는 ‘이’를 떠올린 것은 분명 한글세대에서의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이나무의 유래담으로 인정하기보다 갖다 붙이기도 잘한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이나무 자세히 알기>

아열대온실 앞의 황칠나무

완도수목원에서 곧잘 마주치게 되는 나무 중 하나가 황칠나무입니다. 전라도의 도서 지역과 제주도의 산지에서 자라는 황칠나무는 상록활엽수답게 반짝이는 잎을 가졌습니다. 사실 그보다는 어린 가지의 잎이 삼지창이나 손바닥처럼 3~5갈래로 갈라지는 점이 황칠나무의 특징입니다. 그러니 남부지방에서 갈라진 잎과 갈라지지 않은 잎이 함께 달리는 나무를 발견한다면 십중팔구 황칠나무라고 보면 됩니다.

황칠나무는 껍질에 상처를 내면 노란색 유액이 나와 ‘노란옻나무’라고도 불립니다. 그 노란 액을 칠(漆)의 재료로 쓴 데서 황칠(黃漆)나무라는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황칠은 귀하다 보니 비싼 칠감으로 유통됩니다.

황칠나무의 갈라진 잎

그게 돈이 된다는 말만 믿고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쓴맛을 본 분들은 황칠나무 하면 진저리를 칩니다. 황칠나무에는 사포닌 성분이 많아 인삼나무라고도 부른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마 인삼과 같은 두릅나무과의 나무라서 그럴 겁니다.

<황칠나무 자세히 알기>

열매를 단 비파나무

황칠나무 다음으로 완도수목원에서 눈에 띄는 나무는 비파나무입니다. 잎이 비파의 잎을 닮아 비파엽(枇杷葉)이라고 적은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잎이 정말로 비파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중국 원산의 나무로, 추위에 약하다 보니 남부지방에서만 심어 기릅니다. 비파나무를 심어 기르는 이유는 대개 열매를 얻기 위함에 있습니다. 먹어본 분만이 아는 그 열매의 맛은 정말 달콤하고 향기도 매우 좋습니다.

협죽도

생긴 건 살구 같은데 맛은 복숭아 같다고 할까요? 살구와 복숭아를 합쳐놓은 듯한 비파나무 열매로 술을 담그면 그 맛과 향기가 신선주 같다고 합니다. 벌떡주와 신선주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저는 신선주를 택하겠습니다. 짧고 굵게 살기보다 가늘고 길게 살기로 목표를 바꿨으니까요.

<비파나무 자세히 알기>

완도수목원의 수생식물원

완도수목원에는 유난히 협죽도가 많습니다. 협죽도(夾竹桃)는 잎이 대나무 같고 꽃은 복사나무를 닮아 두 나무가 섞여(협(夾))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잎이 대나무가 아니라 버드나무를 닮았다는 뜻에서 유도화(柳桃花)라고도 합니다. 인도와 유럽 동부가 원산지인 나무로, 남부지방에서 관상수로 많이 심습니다.

협죽도는 꽃의 생김새보다 독성으로 유명합니다. 잎이나 줄기를 자르면 하얀 액이 나오는데, 그것이 청산가리보다 독성이 강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산이나 통영 등지에서는 베어내거나 교체하는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수학여행 온 학생이 나무젓가락이 없자 옆에 있던 협죽도 가지를 꺾어 도시락을 먹고는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떠돌면서 민원이 들어오는 모양입니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일부러 먹지 않는 한 섭취할 확률은 극히 적은 꽃나무인데, 어쩌다 그렇게 수난 당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어쨌든 협죽도가 독성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 주의해야겠습니다. 가늘고 길게 살려고 신선주를 마신대도 협죽도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어 먹었다간 곧장 염라대왕 앞에 끌려갈 수도 있으니까요.

<협죽도 자세히 알기>

완도수목원은 먼 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멀어도 애인이 거기 있다면 가는 법입니다. 완도수목원은 애인 같은 수목원이기에 가깝지 않은 거리라 해도 그리로 달려가는 마음은 늘 설렙니다. 완도에 왜 가느냐고 누가 물으면 저는 숨겨둔 애인 만나러 간다고 합니다.

장보고가 웃을 일이지만 고향인 경기도 오산시의 물향기수목원을 본부인으로 둔 저로서는 애인 같은 수목원이 필요합니다. 국내 최대의 난대림을 품은 애인 같은 수목원이 늘 푸른 빛으로 거기 완도 땅에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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