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목마른 아베, '특별법으로 일왕 생전퇴위' 강행 무리수

입력 2017. 1. 2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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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대다수는 '황실전범' 개정 지지..총리 자문기구는 '특별법' 제정에 무게
'생전퇴위' 빠른 해결로 헌법개정에 이슈 집중 노림수
일왕 조기퇴위 영상 보는 日 시민들 (도쿄 교도=연합뉴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생전퇴위 의향을 반영한 메시지를 8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1817년 이후 약 200년 만에 일왕의 조기 퇴위를 위한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도쿄 신주쿠 시민들이 한 건물 대형 스크린에 재생되는 영상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다. 2016.8.8 photo@yna.co.kr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왕의 생전퇴위 방식을 놓고 국민 대다수의 의견과 달리 특별법 제정 방식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 속전속결로 퇴위 문제를 해결해 정치 이슈가 자신의 숙원인 헌법개정에 집중되도록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24일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사적 자문기구인 '천왕의 공무 분담 경감 등에 관한 전문가 회의'(이하 전문가회의)는 '퇴위를 현재의 일왕에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을 담은 '논점 정리'를 발표했다.

일왕의 퇴위 방식으로는 ▲ 현재의 아키히토(明仁) 일왕뿐 아니라 이후 일왕에 대해서도 생전에 중도 퇴위할 수 있도록 황실전범(皇室典範·왕위 계승 방식을 규정한 법률) 개정 ▲ 아키히토 일왕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중도퇴위를 인정하도록 특별법 제정 등 2가지 안이 논의되고 있다.

전문가 회의는 논점 정리를 통해 두 방식의 장단점을 제시하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특별법 제정에 드러내놓고 무게를 뒀다.

이는 국민 대다수가 황실전범 개정 방식을 지지하고 있는 것과 반대된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21~2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특별법 제정'(22%)보다 '황실전범 개정'(65%) 방식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3배 가까이 많았다.

아키히토 일왕 역시 황실전범 개정을 통해 제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작년 8월 생전 퇴위 의사를 국민에게 직접 알린 이후에는 이와 관련해 발언을 삼가고 있으면서도, 지난 11월 죽마고우의 입을 통해 언론에 '장래를 포함해 양위(퇴위)가 가능한 제도가 됐으면 좋겠다'며 황실전범 개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자신의 자문기구를 통해 무리하게 특별법 방식을 추진하자 야당은 물론 일본 언론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제1야당인 민진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간사장은 NHK 연말 오락프로그램인 '홍백가합전'에 빗대 전문가회의를 비판했다.

홍백가합전은 인기 가수들이 홍팀과 백팀으로 나뉘어 노래 경연을 펼친 뒤 시청자, 방청객, 전문가 심사위원의 투표로 우승팀을 정하는 프로그램이다. 작년 연말의 홍백가합전은 시청자와 방청객의 투표에서는 백팀이 크게 앞섰지만, 전문가 심사위원이 홍팀 승리로 결과를 뒤집었다.

노다 간사장은 23일 "많은 국민이 전문가회의가 방향성을 정해놓고 논의를 한 것에 대해 홍백가합전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홍백가합전을 통해 전문가회의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여당과 보수층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로 편향되게 구성됐다고 비꼰 것이다.

아베 총리가 이처럼 무리수를 던지면서까지 '특별법 제정'을 통한 일왕 퇴위를 추진하는 것은 국민이 큰 관심이 있는 일왕 생전퇴위 이슈가 자칫 헌법개정에 걸림돌이 될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올해 들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하게 개헌 논의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 20일 국회 새해 시정연설에서도 헌법개정이 국회의원의 책임이라고 말하며 개헌 논의를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이 전쟁과 무력행사를 포기하며 육해공군과 여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 9조를 바꿔 일본을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변신시키려 하고 있다.

이미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만만치 않은 반대의 목소리를 뚫고 헌법 9조를 개정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정치권의 시선을 개헌 논의에 끌어모으는 게 중요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왕의 퇴위 문제가 오래 이슈가 되는 것은 개헌에 유리하지 않다는 계산 하에 특별법 제정 방식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황실전범을 개정하면 퇴위한 일왕에 대한 대우, 호칭, 거처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해 논의를 진행해야 하는 데 비해, 특별법 제정 방식은 현재의 일왕에 대한 사안만 결정하면 되는 만큼 소요되는 시간이 비교적 짧다.

실제로 작년 일왕이 TV를 통해 국민에게 생전 퇴위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늘어놓자 일각에서는 전쟁에 대한 반성과 헌법 준수 등을 중요하게 생각해 온 일왕이 아베 총리의 개헌 구상을 저지하기 위해 퇴위의향을 밝힌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도쿄신문은 "전문가회의의 논의 과정에 대해서는 자민당 내부에서도 '너무 서두른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헌법에 국민의 총의로 결정하게 돼 있는 왕위에 대해 총리의 사적 자문기구가 결론을 제시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아베 총리는 23일 국회 대표질문에서 "일왕 퇴위 문제를 정쟁의 도구에 이용하지 말라"고 응수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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