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가스' 마셔야 진정한 배우? 마지막이길 바랍니다

권진경 2017. 1. 23. 20: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장] 영화 <다른 길이 있다> 논란의 본질은 촬영 현장 윤리의식 부재

[오마이뉴스 글:권진경, 편집:유지영]

 영화 <다른 길이 있다>에 출연한 배우 서예지는 "촬영 중 연탄가스를 실제로 마셨다"고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것이 영화에 대한 열정이라 해명했지만 배우들에게 무리한 연출을 지시하는 영화 현장에 관해 성토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 영화사 몸
저예산 독립 영화가 개봉하기도 쉽지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언급되기는 더 어렵다. 그러고 보면 지난 19일 개봉한 조창호 감독의 <다른 길이 있다>는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극장 개봉에 성공했고 수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소리 소문 없이 잊히는 독립영화들에 비해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이왕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거 좋게 알려졌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다른 길이 있다>를 둘러싼 네티즌들의 반응은 싸늘하고 격양되어 있다. 영화 흥행은 고사하고, 조창호 감독이 한국에서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 정도의 여론이다.

연기가 아닌 실제? 이들은 "열정"이라 말하지만

영화를 안 본 대다수 대중이 화난 것은 지난 18일 <다른 길이 있다>의 주연 배우 서예지가 <스타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언급한 촬영현장 때문이었다. 다른 것은 둘째 치더라도, 자살신을 찍는 도중 출연 배우에게 연탄가스를 실제로 마시게 한 조창호 감독의 디렉팅은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이 기사는 SNS로 순식간에 퍼져나가며 논란을 점화했다.

또 자동차 유리를 부수는 신을 찍을 당시 보통 드라마나 영화 촬영 때 쓰는 설탕 유리가 아닌 진짜 유리를 부수게 해 김재욱의 손이 다쳤다는 이야기까지 함께 전해지며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논란이 가중되자 영화 개봉일이던 지난 19일, 건국대학교 KU시네마테크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여한 조창호 감독와 배우 김재욱, 서예지는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마이스타> 보도에 따르면, GV 참석자 중 가장 먼저 마이크를 들었던 서예지는 "영화에 대한 애정이 많고 열정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스타뉴스와 가진 인터뷰)이 잘못 왜곡됐다"고 밝히며 "윤리적인 태도에 벗어난 내용을 촬영했지만, 실제로 힘들지 않았다.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촬영했고 아픔을 공유할 수 있도록 촬영했으니 글(인터뷰)에 빠지지 마시고 영화에 대해 입소문을 내달라"고 호소를 하기도 했다.

당초 <스타뉴스>와 인터뷰에서 서예지가 했던 내용은 이랬다. 연탄가스를 마시는 장면을 촬영한 날 조창호 감독은 서예지에게 "실제 연탄가스를 마셨을 때의 느낌과 감정이 나왔으면 좋겠다"면서 연탄가스를 마실 것을 요청했다. 서예지 또한 그녀가 맡은 정원이란 캐릭터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 하겠다고 했고, 실제 연탄가스를 마시며 촬영에 임했다.

감독이 먼저 요구했다고 하나 배우와 합의 하에 한 행동이고, 실제 연탄가스를 마시는 연출법이 잘못됐지만 배우가 무사했고 아무 일 없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지 않으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촬영 당시 진짜 유리에 베여 실제 손이 피투성이가 되었다던 김재욱도 현재는 손에 아무런 이상이 없고,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니 별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날 것 그대로'의 연기는 연기가 아니다. 또 이는 비단 영화 <다른 길이 있다>에서만 드러난 문제점도 아니다. 분명 '다른 연출 방식은 존재한다.'
ⓒ 영화사 몸
지난 19일 GV에서 김재욱은 서예지가 그랬듯 "어떻게 하다 보니 자극적인 부분이 논란이 됐다"면서 "저희가 (촬영할 때) 아무런 안전장치라던가 약속 없이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얼음 위를 걸을 때도 항상 옆에 보호해주는 스턴트 분들이 계셨고 응급차가 있었고 고무보트까지 준비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9일 SBS 파워FM <박선영의 씨네타운> 출연 당시 "설탕 유리가 아닌 진짜 유리를 부숴야 했고, 슛 들어가기 전 진짜 유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라고 했던 김재욱은 "그만큼 영화에 열정을 다했다는 걸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고 싶은 배우들의 마음"이라며 불거진 논란을 해명하고자 한다.

<다른 길이 있다>의 감독들과 배우들은 자신들이 어떤 해명을 늘어놓든 상황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들은 사람들이 유독 부주의했던 촬영현장에 대한 비난을 거두고 자신들이 목숨 걸고 찍었던 영화를 좋게 봐주길 기대하겠지만, 배우에게 연탄가스를 마시게 하고, 진짜 유리를 부수게 하는 조창호 감독의 디렉팅은 <다른 길이 없다>에서만 끝날 것이 아니다.

'날 것 그대로의 연기'는 '진정성'이 아니다

이 논란을 조창호 감독 스스로가 자초했다는 것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조창호 감독은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 등을 거쳐 2005년 <피터팬의 공식>으로 감독 반열에 오른다. 첫 영화에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아 선댄스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도빌아시아 영화제 등 각종 해외 영화제에 초청된 이력이 있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데 5년이라는 긴 부침이 있긴 하지만, 장편영화 3편을 만든 어엿한 중견 감독이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연기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배우에게 연탄가스를 마시게 하고, 실제 유리를 깨게 하는 조창호 감독의 연기 연출법은 연출 경험이 풍부한 중견 감독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한다.

이는 조창호 감독만 범했던 오류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감독들이 '날 것 그대로의 연기', 즉 배우가 극 중 캐릭터처럼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아야 최고의 연기가 나올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막무가내식 디렉팅은 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감독과 배우들의 무용담으로 포장돼 '진정성있는 연기를 보여주려면 배우가 몸을 사리지 않아야 한다'는 식으로 제작보고회, '관객과의 대화'의 '말말말'을 장식한다.

하지만 배우의 진정성 있는 연기를 카메라에 담겠다는 명분 하에, 배우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디렉팅은 결코 연출 경험과 비례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교적 최근까지 몇몇 감독들의 안전, 윤리 의식을 망각한 연출법에 경악한 바 있다. 배우가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연출자가 필히 가져야할 역량이다. 배우가 캐릭터를 이해하고 감독의 의도대로 맡은 역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수많은 디렉팅을 고안해 감독과 배우, 관객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연기를 이끌어내는 것 또한 연출자의 능력이다.

논란이 불거질 때까지 조창호 감독은 배우에게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자신의 디렉팅이 얼마나 잘못된 연출법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이는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윤리적으로 벗어났지만"(서예지)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 위한 열정으로 봐달라고 부탁한다. 그렇다. 감독들과 배우들이 이 사건을 그저 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해프닝으로 넘긴다 치자. 또 그렇게 '비윤리적'으로 찍은 장면이 영화에서는 멋있게 보이고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치자. 하지만 과연 그 장면에 얽힌 비화를 알고도 온전히 영화에 감동을 할 수 있는 관객들이 몇이나 있을까.

아직도 날 것 그대로의 연기를 보여주어야만 예술성을 인정받고, 관객들이 감동을 할 것으로 생각하는 감독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21세기의 관객들은 과거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영화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스크린에서 기차가 달려오는 장면을 보고 기겁해서 도망가던 때의 관객들처럼 영화와 현실을 혼동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화면 안에서 자살시도를 벌이는 여자는 현실이 아닌 가상의 인물임을 잘 알기에, 자살을 결심하는 그녀의 사연에 순수하게 몰입하게 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이렇게 관객들은 점점 똑똑해지는데 아직도 일부 감독들은 리얼리티를 강화한다는 명분 아래 배우에게 진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연출을 추구하고 끝내 관철시킨다. 이 과정에서 감독의 무리한 요구에 응하지 않은 배우는 프로의식이 결여된 연기자가 되고 감독의 부탁에 순순히 응하면 영화에 대해 애정이 많고 열정적인 훌륭한 배우가 된다. 대중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창호 감독은 이번 촬영현장 논란에 대해 20일 입장문을 발표해 "미량의 연탄가스가 흘러나왔고 배우의 동의와 무관하게 진행하지 말았어야 했고 크게 반성한다. 제작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감독인 나에게 있다"고 전했다. 또 "이렇게 큰 논란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채 배우가 영화에 갖는 커다란 애정으로 이해하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는 점도 인정했다.

대중들은 이번 기회에 한국영화 촬영 현장에서 다시는 이런 무용담이 나오지 않기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 <다른 길이 있다>를 통해 드러난 현장의 안전의식 부재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돼야 한다. 윤리의식이 결여된 채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촬영 현장의 문제는 쉬쉬해서 감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배우와 스태프들의 안전과 인권이 최우선이다.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이런 무모한 연출 지시가 영화판에서 얼씬 하지 못 하도록 영화계 종사자들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 고통을 가하지 않아도 배우들은 얼마든지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다. 분명 다른 길은 있다.

 영화 <다른 길이 있다> 포스터.
ⓒ 무브먼트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에 게재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