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보장(?) 봉중근, 떨어진 명예도 회복할까

양형석 입력 2017. 1. 2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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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작년 부진에도 원소속팀 LG와 2년 15억 FA계약 체결

[오마이뉴스양형석 기자]

LG트윈스는 최근 4년 동안 세 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을 정도로 리빌딩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특히 선발진에서는 기존의 데이비드 허프, 헨리 소사, 류제국에 FA를 통해 좌완 강속구 투수 차우찬을 영입하면서 이른바 '어메이징4'라 불리는 강력한 선발진을 구성했다. 사이드암 신정락, 우완 유망주 임찬규, 이준형 등이 경쟁할 5선발도 굉장히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불펜도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질서를 잡아나갔다. 1991년생의 젊은 마무리 임정우가 작년 시즌 28세이브를 올리며 뒷문을 든든히 지켰고 오랜 무명 생활을 이겨내고 셋업맨으로 우뚝 선 김지용의 등장도 반갑다. 기복이 심했던 좌완 듀오 윤지웅과 진해수가 시즌을 거듭할수록 안정을 찾았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지난 시즌 부진했던 이동현과 유원상마저 반등에 성공해준다면 양상문 감독으로서는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LG 마운드 구성에서 낙오(?)된 투수가 있어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 선수는 LG가 암흑기를 겪고 있던 시절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연속 10승을 올렸고 2012년부터는 마무리로 변신해 다시 3년 연속 25개 이상의 세이브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선수는 올 시즌 보직조차 알 수 없는 신세가 됐다. 바로 LG의 암흑기를 버텨내던 전직 에이스 봉중근이다.

LG의 길었던 암흑기를 버텨낸 좌완 에이스 

 봉중근은 선발과 마무리를 거치며 LG마운드의 자존심을 지켜 왔다.
ⓒ LG 트윈스
봉중근은 신일고 시절부터 투타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내며 1년 선배 안치홍, 현재윤, 동기 김광삼과 함께 전국 무대를 휩쓸고 다녔다. 실제로 네 선수가 함께 뛰던 1997년 신일고는 4번의 전국대회 중 3번이나 우승을 휩쓸었고 봉중근은 팀의 3번 타자 겸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한마디로 국내 고교무대에는 적수가 없었던 셈이다. 결국, 봉중근은 메이저리그 명문 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을 체결하며 미국 진출을 선택했다.

4년의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2002년 드디어 빅리그 무대를 밟은 봉중근은 2003년 전반기에만 6승을 거두며 애틀랜타 마운드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안정감이 떨어지는 투구로 메이저와 마이너를 들락거린 끝에 2004년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됐다. 봉중근은 2004년 6월 2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빅리그 첫 선발승을 거두지만 안타깝게도 그 날이 봉중근의 빅리그 마지막 승리였다.

이후 팔꿈치 부상으로 고전하던 봉중근은 2007년 LG에 입단했고 2008년 11승 8패 평균자책점 2.66을 기록하며 LG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올랐다.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3경기에 선발로 나와 2승 0.51이라는 만화 같은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3월 18일 일본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견제 동작만으로 일본 야구의 상징과도 같은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 말린스)를 놀라게 한 장면은 아직도 많은 야구 팬들에게 회자하고 있다.

2010년까지 3년 연속 10승을 올리며 쌍둥이 마운드의 자존심을 세우던 봉중근은 2011년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으며 일찍 시즌을 접었다. 하지만 놀라운 속도로 재활을 끝낸 봉중근은 2012년 마무리 투수로 변신해 다시 마운드에 올랐고 그 해 1패 26세이브 1.18의 성적을 올리며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그리고 봉중근이 8승 38세이브를 기록한 2013년, LG 팬들은 11년 만에 옷장 속에서 먼지 낀 유광점퍼를 다시 꺼낼 수 있었다.

2014년에도 30세이브와 2.9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한 봉중근은 2015년 시즌 초반부터 엄청난 난조를 보이며 큰 위기를 겪었다. 개막전 패전투수를 시작으로 4월까지의 성적이 2패 3세이브 17.47이었을 정도. 봉중근은 6월부터 분발하면서 5승 2패 15세이브 4.93으로 시즌을 마쳤지만 LG 팬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던 봉중근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FA를 앞두고 시즌 1승, 젊은 후배들 사이에서 그의 보직은?

 2016년 단 1승에 그친 봉중근은 올해 아직 확실한 보직을 보장받지 못했다.
ⓒ LG 트윈스
봉중근은 2016년 다시 선발투수로 변신하며 '리그 최고의 5선발'이라는 소박한(?) 목표'를 밝혔다. 실제로 5번째 선발 투수가 좋은 성적을 올린다면 팀 성적은 당연히 좋아질 수밖에 없다. FA를 앞둔 봉중근 입장에서도 선발 투수로 건재를 보여준다면 자신의 가치를 한껏 끌어올릴 기회였다. 하지만 허벅지 통증으로 시범경기조차 등판하지 못한 봉중근은 명예회복이라는 목표를 끝내 이루지 못했다.

5월 1일 kt 위즈 전에서 시즌 첫 선발로 등판한 봉중근은 3이닝 2실점으로 불안하게 출발했고 곧바로 다음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6월 중순 다시 1군에 올라왔을 때는 선발이 아닌 불펜에서 활약했다. 9월 이후 4번의 선발 기회를 다시 얻었지만, 승수를 추가하지 못한 봉중근은 1승 2홀드 4.95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팔꿈치 수술을 받았던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삼진(20개)보다 사사구(24개)가 많은 시즌을 보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2경기 동안 2.2이닝을 던지는데 그친 봉중근은 FA시장에서도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도 문제였지만 시즌 1승 투수에게 거액을 안겨줄 구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봉중근은 작년 12월 23일 원소속팀 LG와 2년 15억 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한때 LG의 대체불가 에이스였던 점을 떠올리면 아쉬운 계약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난 2년간의 성적을 생각하면 오히려 좋은 계약을 따낸 셈이다.

사실 봉중근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는 올 시즌 LG에서 뚜렷하게 맡을 만한 보직이 없다는 점이다. 5선발 경쟁을 하자니 젊고 싱싱한 20대 선수들이 셋이나 버티고 있고 좌완 셋업맨도 진해수와 윤지웅이 이미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그나마 노릴 수 있는 자리가 선발이 일찍 무너졌을 때 등판하는 롱맨인데 양상문 감독이 많아야 6~7명인 불펜 엔트리에 젊은 투수를 빼고 38세의 좌완 투수를 넣을지는 미지수다.

2013년 역대 최고령 타격왕(.348)에 오르고 LG와 3년 25억5000만 원에 FA 계약을 체결한 '적토마' 이병규(은퇴)는 FA 계약 후 3년 동안 단 71안타를 추가하는 데 그쳤다. 봉중근 역시 특별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FA 계약 기간 세월만 보내다가 유니폼을 벗게 될지도 모른다. 2017년 대권에 도전하는 LG는 예전처럼 봉중근의 컨디션과 몸 상태만 바라보던 어두운 시절의 LG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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