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지역 경제 '향토기업'이 이끈다..금복주·몽고식품·천호식품은 논란

입력 2017. 1. 23. 16:17 수정 2017. 1. 2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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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수도권 쏠림에도 BN그룹·한국도자기·중흥건설·하림 등 고군분투

금복주(결혼 여직원 퇴사시켜)·몽고식품(김만식 명예회장의 운전기사 폭행) ·천호식품(가짜 홍삼액 판매) 등 구설수에 휘말린 기업도 많아

(사진) 지난해 8월 한국도자기 청주공장 근로자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 사업체 381만 개 중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자리한 사업체는 절반에 가까운 47.4%(180만5000개)로 나타났다.

기업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지방을 터줏대감처럼 지키고 있는 향토기업이 지역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전국 각지를 대표하는 향토기업에 대해 알아봤다.

◆일자리 창출은 물론 사회공헌에도 큰 역할

향토기업은 부산광역시의 지정 기준을 참고해 연 매출액이 500억원 이상이거나 지방에서 문을 연 지 30년이 지난 기업들 중 본사를 지방에 두고 있는 기업으로 정했다.

부산의 BN그룹은 조선 기자재를 필두로 주류, 물류·IT, 벤처투자, 친환경 페인트, 광고 마케팅 등 다양한 업종의 계열사로 이뤄진 중견기업이다. 1978년 9월 창립됐고 지주회사 비아이피를 비롯해 총 13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2016년 예상 매출액은 약 8250억원이며 임직원은 920여 명이다. 1978년 BIP(주)로 출발, ‘선박용 기자재 국산화에 최초로 성공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는 선박 기자재 제조업체인 바칠라캐빈을 인수해 업계 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BN그룹은 동남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BN그룹은 수도권 스타트업들에 지원이 집중된 데서 오는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부산·울산·경남 지역 최초로 벤처캐피털인 BK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BK인베스트먼트는 자금 부족으로 기회를 잡지 못하는 지역의 우수 업체를 육성하고 있다. 또 매년 100여 명의 인재를 채용해 부산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BN그룹 관계자는 “주력 사업이 조선 기자재 사업인 만큼 부산 업체들과의 상생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돕고 있다”면서 “각종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에는 100년이 넘은 향토기업도 다수 있다. 1916년 문을 연 목재 전문 기업 ‘성창기업’이 대표 주자다. 2015년 매출액은 약 1773억원이다.

성창기업은 성창상점이란 상호로 시작해 1959년 한국 최초로 미국에 합판을 수출했다. 그 후 마루판을 개발해 일본 및 유럽에 수출하며 몸집을 키웠다. 지주사인 성창기업지주 아래 성창기업·성창보드·지씨테크를 두고 있다.

국내 도자기 산업을 대표하는 한국도자기는 충북의 전통 향토기업이다. 1943년 충청북도 청주의 작은 도자기 공장에서 출발해 국내 도자기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2015년에는 약 339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한국도자기는 현재도 100% 국내 생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또 한국도자기의 명품 브랜드 ‘프라우나’는 유럽에서도 디자인과 품격을 인정받고 있다.

중흥건설은 전남과 광주를 대표하는 향토기업이다. 1983년 세워진 금남주택건설이 모태이며 현재 자산 7조원으로 재계 서열 40위까지 성장했다. 자체 브랜드인 S-클래스의 공동주택 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

총 49개의 계열사로 이뤄진 중흥건설은 세종시 주택 공급 사업을 통해 급격히 성장했다. 광주 지역의 축구팀인 광주FC의 후원사이기도 하다. 계열사를 포함한 중흥건설의 전체 매출액은 2015년 기준으로 4조5610억원이다.

전북에는 ‘하림’이 있다. 양계 및 양계 가공업과 사료 제조업을 영위하는 하림은 전북 익산에 본사를 둔 국내 최대 축산식품 전문 기업이다. 2015년 매출액 7951억원을 올렸다.

지난해 12월 전북 익산시와 하림그룹은 익산 발전을 위해 식품 산업을 포함한 여러 상생 협력 사업을 함께하기로 협의했다.

(사진) 하림의 이문용 대표가 닭고기 공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 지도를 하고 있다. /하림 제공

강원도를 대표하는 향토기업으론 강원랜드를 꼽을 수 있다.

정부와 강원도가 폐광 지역 발전과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주도하는 범국가적 사업인 강원랜드는 한국광해관리공단과 강원도 개발공사, 폐광 지역 4개 시군(정선·태백·영월·삼척),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 부문이 5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만 1조6337억원을 올린 거대 기업이다.

국내 유일 내국인 출입 카지노로, 강원랜드호텔·컨벤션호텔·하이원호텔·하이원콘도·강원랜드카지노·하이원골프장·하이원스키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하이원리조트 행정지원부서 직원들이 강원랜드 호텔에서 호텔 서비스 교육을 받고 있다. /하이원리조트 제공

대전에는 연 매출 3000억원을 올리는 타이어뱅크가 있다. 1991년 설립됐고 전국에 365곳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타이어뱅크는 일반 정비를 하지 않고 전국망을 갖춰 여러 회사의 타이어를 대량 판매하고 있다. 타이어뱅크가 대전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2014년 김정규 타이어뱅크 대표가 지역 언론과의 마찰로 본사를 서울로 옮길 뜻을 내비치자 권선택 대전시장이 직접 김 대표를 만나 본사 이전을 만류했다.

뒤이어 대전시 지자체 관계자들까지 나서 본사 이전 반대 시위를 벌였고 결국 타이어뱅크는 이전 추진을 백지화했다.

◆연고지 강세·수도권 네트워크 ‘성공 비결’

향토기업을 살펴보면 주조 기업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1976년 주류 도매상들이 사들이는 소주의 절반 이상을 해당 지역 소주 회사로부터 사게 하는 ‘자도주 의무 구입 제도’로 지역 기업들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도주 보호 규정은 1996년 헌법재판소가 ‘자유경쟁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를 들어 위헌 판결을 내리며 폐지됐다. 그 후 향토 주류 기업들은 고향을 넘어 전국구로 세력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남을 대표하는 주류 향토기업으로는 보해양조가 있다.

1950년 설립된 60년 전통의 주류 전문 회사다. 현재는 창업자 임광행 회장의 손녀인 임지선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매취순·보해복분자주·김삿갓·곰바우·천년의아침·보해골드 등을 탄생시켰다. 2015년 기준 매출액은 1237억원이다.

제주에도 50년 된 주류 향토기업이 있다.

(주)한라산은 1950년 문을 연 ‘호남 양조장’을 모태로 성장해 현재는 미국·일본 등 총 8개국에 소주를 수출하고 있다. 2015년 기준 연 매출액은 215억원이다. 대표 브랜드로는 한라산 올래소주, 한라산 오리지널 소주, 한라산 허벅술이 있다.

한라산 소주는 천연 미네랄 용존산소가 풍부한 청정수를 화학 처리를 거치지 않고 자연수 상태로 사용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밖에 충남·대전의 ‘맥키스컴퍼니’, 대구·경북의 ‘금복주’가 대표적인 소주 제조 기업이다.

(사진)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주류 코너에 다양한 기업의 소주가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최근에는 지역 향토기업이 대기업에 인수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제주의 향토기업이었던 ‘제주소주’는 지난해 12월 이마트의 품에 안기게 됐다.

2011년 자본금 25억원으로 설립된 제주소주는 ‘곱들락’, ‘산도롱’ 등 소주 브랜드를 판매하고 있다.

이마트 측은 “이번 인수를 기점으로 제주소주에 적극 투자해 제주소주가 제주를 대표할 수 있는 한류 상품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아까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제주소주는 신입 및 경력직 직원 40명을 신규 채용해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또 국내뿐만 아니라 대형 유통 채널을 통해 대규모 수출도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대기업의 향토 주류 기업 인수는 이마트가 처음은 아니다.

롯데주류는 2011년 충복 지역의 향토기업이었던 충북소주를 350억원에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롯데주류는 충북소주 대주주였던 장덕수 전 대표이사의 지분 85%를 포함해 주식 전량을 인수했다.

BN그룹은 2011년 부산의 대표 향토 주류 기업인 대선주조(주)를 인수했다. 부산의 유일한 소주 제조회사인 대선주조는 ‘순한시원’, ‘시원블루’, ‘시원프리미엄’ 등의 소주를 생산하고 있다.

대기업의 인수 움직임으로 향토 소주 기업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소주 생산 기업은 자도주 의무 구입 제도로 지방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지만 전국 경쟁 시대에 돌입하며 향토기업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선 향토기업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지난해 10월 김윤오 신영증권 애널리스트가 발표한 리포트에는 경남 주류 기업 무학을 통해 본 향토기업의 성공 비법이 담겼다. 김 연구원은 무학의 강점으로 연고지에서의 탄탄한 점유율, 서울 기업들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꼽았다.

무학은 연고지인 경남에서 90%의 점유율을 차지했고 2010년대부터 진출을 시작한 부산에서 80% 내외의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또 오비맥주·신세계그룹과 제휴, 서울 시장에 진출했고 외국 맥주 수입으로 수도권에서의 점유율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사진) 최재호 무학그룹 회장. /한국경제신문

◆‘회장님 갑질 논란’ 등 구설에 오른 향토기업도

구설에 오르내린 향토기업들도 있다.

1957년 창업된 금복주는 대구·경북 지역을 기반으로 자사의 대표적 소주 브랜드인 ‘맛있는 참’을 비롯해 ‘경주법주’, ‘쌀막걸리’, ‘청포도막걸리’ 등 다수의 술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2015년 기준 연 매출액은 1417억원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8월 금복주와 자회사인 경주법주·금복개발, 지주회사인 금복홀딩스 등 4개 회사가 창사 이후부터 현재까지 약 60년간 결혼하는 여성 직원을 퇴사시키는 관행을 유지해 왔다고 발표했다.

인권위는 이러한 관행이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다고 보고 금복주 측에 평등한 인사 운영 기준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큰 비난을 받은 금복주는 지난해 9월 그동안 남성 중심적 조직 문화를 반성하고 향후 여성 직원들이 경력 개발을 통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난 1월 24일엔 금복주 직원이 금복주 판촉물을 배부하는 하청업체 대표에게 명절마다 300만~500만 원의 상납금을 강요받았다는 고소장을 접수해 경찰이 조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2016년 재계에는 갑질 파문으로 구설에 오른 회장을 다수 찾아볼 수 있었다. 향토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창원 지역의 간장 제조 기업인 몽고식품은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향토기업이다. 1905년 창업한 후 장류 제품을 전문으로 생산해 왔고 지난해 8월 창립 111주년을 맞아 프리미엄 웰빙 간장인 ‘몽고 백년간장’을 출시했다.

그런데 몽고식품의 김만식 명예회장이 2015년 9월부터 두 달간 운전기사를 상습 폭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창원지검은 지난해 4월 김 회장에게 상습 폭행 및 근로기준법상 사용자 폭행 혐의로 벌금 700만원 약식기소를 내렸다. 김 회장의 갑질 후폭풍으로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몽고식품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올 들어선 부산의 향토기업 천호식품이 ‘가짜 홍삼액 판매’로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지난해 12월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조사부는 중국산 인삼 농축액에 물엿과 캐러멜 색소를 섞은 가짜 홍삼 제품을 제조한 업체 대표를 구속했다. 이들은 천호식품에 홍삼을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천호식품의 김영식 회장은 지난 1월 6일 회장직과 등기이사직을 사임하게 됐다.

오동윤 교수는 “향토기업이 다소 보수적인 문화를 갖는다는 점도 있지만 금복주 사태와 같은 경우는 특정 기업의 악습으로 파악해야 한다. 최근 불거진 향토기업들의 문제 역시 개별 기업의 부도덕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차원의 육성책 필요

현재 중앙정부 차원의 향토기업 관련 법률은 마련돼 있지 않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정한 조례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조차 향토기업 관련 통계자료가 미비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시는 향토기업 지원책 및 현황 파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부산시는 부산에 본사를 둔 30년 이상 된 기업들 중 정규직 100명 이상, 최근 3년간 평균 매출액이 500억원 이상, 지역 경제 발전 기여도가 높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곳을 매년 ‘향토기업’으로 선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16일 기준으로 부산시의 향토기업은 총 62곳으로 집계된다.

선정된 기업엔 시 차원에서 혜택을 주고 있다. 토지 매입이나 기계 구매 등 기업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필요한 육성 자금의 경우 일반 기업은 업체당 15억원을 지원하지만 향토기업은 20억원을 지원한다.

운전자금 역시 일반 기업은 업체당 4억원을 대출해 주는데 향토기업은 5억원까지 해준다.

부산시청 관계자는 “기준이 까다롭지만 선정된 향토기업에 혜택을 많이 주는 등 시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더 많은 향토기업을 성장시키려면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필요하다. 이를 마련하기 위해 황영철 바른정당 의원은 지난해 5월 30일 ‘향토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했다.

제정안에는 향토기업 육성 기본 계획, 향토기업 지원센터 지정 및 필요 경비 지원, 신용보증재단 향토기업 보증 지원, 국세 및 지방세 감면, 고용보험료 및 산업재해보상보험료 지원, 향토기업 경영 능력 향상 지원 등이 담겼다.

뒤이어 황 의원은 지난해 8월 ‘지방세특례제한법’과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도 발의했다.

황영철 의원실 관계자는 “지방 경제 발전을 위해 외부 기업을 유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토착화된 향토기업의 성장을 지원함으로써 지역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선 중앙정부 차원의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제정안은 국회 의결을 기다리고 있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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