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을 블랙리스트에서 구한 작품..조씨고아

CBS노컷뉴스 유연석 기자 2017. 1. 2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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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중. (사진=국립극단 제공)
다시 돌아온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연출 고선웅)이 티켓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몰이 중이다. 연극이 이 정도로 관객의 선택을 받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는 뛰어난 작품성 때문이다. 2015년 초연 당시 연극계를 휩쓸었고, 지난해 동아연극상, 대한민국연극대상, 올해의 연극 베트스3 등 내로라하는 국내 연극상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4년간 대상작을 내지 못했던 동아연극상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했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중. (사진=국립극단 제공)
두 번째로, 뛰어난 각색으로 원작의 나라인 중국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중국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조씨고아’는,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 ‘조씨고아’를 지켜내고 복수를 도모하는 필부 ‘정영’과 그 과정 속에서 희생한 의인들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연출 고선웅은 장엄한 원작에 재치 있는 대사를 녹여내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겸비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각색의 귀재’라는 평에 걸맞게 원작에는 등하지 않는 ‘정영의 처’라는 인물을 창조해, 원작에 설득력과 공감대를 불어넣었다.

중국 국가화극원 부원장 루오다준은 “원작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감동적”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중국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양션은 “중국 극장에서, 중국 이야기로, 중국 관객을 정복했다”는 평을 남겼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중. (사진=국립극단 제공)
하지만 위의 두 이유를 제외하더라고,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설명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솔깃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다. 바로 고선웅 연출을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명단에서 빠지게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다.

고 연출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연극 '푸르른 날에'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다. 그런데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본 문체부 차관이 작품이 너무 좋아 고 연출을 블랙리스트에서 제외할 것을 (청와대에) 건의했다고 한다.

실제로 고 연출은 블랙리스트 명단에서 제외됐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9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회 청문회에서 도종환 의원을 통해 알려졌다.

이로 인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과 고선웅 연출은 최근 화제가 됐고, (꼭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지난 18일 재공연을 시작한 연극은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중. (사진=국립극단 제공)
개인적으로도 이 이야기를 들은 뒤 연극을 접했기에, 극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대체 어떤 작품일까’라는 호기심이 가득했고, 공연을 보고 난 뒤 큰 여운이 남아 문체부 차관의 심경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문체부 차관이 연극을 제대로 본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연극은 의도치 않게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비극의 주인공이 된 필부 정영이 의(義)를 위해 자식과 아내를 희생하고 주변인들의 죽음까지 눈앞에서 지켜보며 ‘조씨고아’를 지켜내고, 복수를 하게끔 하는 내용이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중. (사진=국립극단 제공)
충신 조순은 권력에 눈이 먼 장군 도안고의 모함으로 집안이 멸족된다. 조순에게 은혜를 입었던 정영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신의를 강조하며 도안고의 폭압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순의 손자이자 갓 태어난 아기 조씨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내어놓는다.

당장 눈앞의 영달보다 의리를 지키고자 했던 수많은 소시민들의 선택이 끝내 복수를 통해 정의를 실현케 한다. 이런 작품에서 문체부 차관은 느낀 게 고작 ‘블랙리스트에서 고 연출을 제외하고, 그를 지원해야 한다’였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중. (사진=국립극단 제공)
어린아이들도 ‘흥부, 놀부’를 보면 최소한 ‘나쁘게 살면 벌을 받고,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교훈을 배우고, 자신이 착하게 살고 있는지 돌아본다.

그 부당한 ‘블랙리스트’ 명단의 존재를 알고 있던 자가 이 연극을 보고 스스로를 반성하지 못했다니, 그런 시각을 가진 이가 문체부 차관 자리에 있었다니. 그런 자에게 어떤 작품이 주어진다 한들 감정의 동요가 있을까, 그저 상품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이 정부에서 ‘문화융성’이 안 된 이유가 그저 블랙리스트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기본적인 양심도, 소양도 없는 인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CBS노컷뉴스 유연석 기자] yooy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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