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과학에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

김용운 2017. 1.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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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교수 첫 내한 강연
21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개최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주제로 열강 펼쳐
"인류 멸종 위험 낮지만 과학기술 발전 대비해야"
리처드 도킨스 영국 옥스퍼드대 뉴칼리지 명예교수가 21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첫 방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인터파크).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인류는 공룡처럼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술로 지구를 향하는 소행성의 궤도를 바꾸거나 화성으로 이주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인류는 6500만년 전 공룡의 멸종과 달리 계속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과학계의 스테디셀러인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76) 영국 옥스퍼드대 뉴칼리지 명예교수가 처음 한국을 찾았다. 도킨스 교수는 21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카오스재단과 인터파크가 공동으로 기획한 초청강연에서 300여명의 국내 독자와 만나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란 주제로 1시간 30분간 강연을 펼쳤다.

도킨스 교수는 1976년 발표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한 ‘생존기계’며 자기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존재라고 주장해 주목받았다. 이후 ‘눈먼 시계공’ ‘만들어진 신’ 등의 저서를 통해 창조과학과 지적 설계론에 대한 냉철한 비판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이 시대 가장 유명한 과학자로 자리매김했다.

◇인류멸종 위험 낮지만 기술발전 대비해야

이날 강연에서 도킨스 교수가 먼저 강조한 것은 “인류는 공룡과 달리 멸종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었다. 6500만년 전 지구의 지배자였던 공룡은 당시 소행성 충돌 같은 외적 상황에 의해 멸종했지만 인류는 과학기술을 통해 종 자체의 멸종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멸종하지 않는 한 인류도 계속 진화를 거듭하겠지만 영화 ‘엑스맨’처럼 돌연변이의 탄생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도킨스 교수는 “지난 300만년 간 사람의 뇌는 점차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지만 이제 이런 일은 없다”며 “예전에는 뇌가 큰 사람이 생존에 유리했고 많은 자손을 낳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다만 화성에 인류가 거주한다면 중력의 영향으로 다리가 가늘 고 긴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간이 유인원의 분화처럼 다른 종으로 분화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분화하는 사례는 생물학적 진화에서 흔히 볼 수 있고 그 결과 현재 지구에는 수백만 종의 생물이 살게 됐다”며 “종의 분화는 지리적 격리 등으로 ‘유전자의 흐름’이 단절돼 생기지만 현재 인간은 지구상에서 격리되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해 살고 있기에 흐름이 끊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한 영역은 과학의 발전에 따른 인류의 미래다. 도킨스 교수는 ‘알파고’ 등 인공지능의 출현에 대해 “로봇이 인간의 기능을 따라 할 수 있게 돼 인간의 지위가 위험할 지경”이라며 “인류의 진화와 미래는 생물학보다 문화적·기술적인 변화에 더 영향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스티븐 호킹이나 앨런 머스크 등도 과학기술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며 “인공지능이 SF를 넘어 현실로 다가오고 있고 인간이 새로운 진화의 틀을 만들고 있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리처드 도킨스 영국 옥스퍼드대 뉴칼리지 명예교수가 21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첫 방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인터파크).

◇‘나쁜 과학’은 하지 말아야

그럼에도 도킨스 교수는 “마틴 루터 킹은 역사의 바퀴는 긍정적으로 굴러간다고 했고 스티븐 핑커도 인류는 일반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했다”며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노예제가 있었고 여성의 참정권이 제한됐지만 지금은 달라졌다”고 인류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낙관했다.

강연이 끝난 뒤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해 도킨스 교수는 “다양성”이라고 답하며 “특히 식물계가 다양성을 잃으면 질병 등이 창궐할 수 있어 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선 “과학은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라며 “그러나 인종간 우열을 가리는 등 의도가 나쁜 과학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뒤 “과학에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한 고등학생이 “문화의 다양성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 궁금하다”고 묻자 “난 사회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다”고 말한 뒤 “전문가가 아닌 이들이 결정에 나서는 일이 많아지면서 재난이 자꾸 벌어지고 있다”고 답해 박수를 받았다.

마무리는 과학도 기술도 아닌 인간에 대한 자부심으로 맺었다. “과학을 통해 우주와 세상을 이해하는 인간인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이자 동물생물학자. 1941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태어나 영국 옥스퍼드대의 베일리얼칼리지에서 동물학을 수학. 당시 노벨생리학·의학상 수상자인 동물행태학자 니콜라스 틴버겐의 가르침을 받았다. 1967~1969년 미국의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동물학 조교수로 재직. 1970년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와 동물학 등을 가르쳤고, 1995~2009년 ‘대중의 과학이해를 위한 찰스 시모니 석좌교수’ 직과 옥스퍼드대 뉴칼리지의 교수직을 맡은 뒤 2009년에 정년퇴임해 명예교수로 있다. 1976년 저서 ‘이기적 유전자’로 세계적인 과학저술가로 명성을 쌓았으며 이후 ‘눈먼 시계공’과 ‘만들어진 신’ 등으로 생물학뿐만 아니라 무신론, 진화, 창조주의, 지적 설계론 등에 대해 숱한 과학적 논쟁을 이끌었다. 1987년 영국왕립학회 문학상과 1990년 마이클 페러데이 상 등을 수상했다.

김용운 (luck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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