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갑 찬 김기춘·조윤선 모습을 보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1일 구속됐다. 특검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도록 지시했고, 조 전 장관은 2014년 6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으면서 명단 작성에 간여했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과 현직 장관이 한꺼번에 구속된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조 장관은 구속 직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인 행태가 원인이다. 하지만 대통령 옆의 누구 한 사람이라도 '이것은 아니다'고 했으면 그 자신의 처지는 어려워졌겠지만 대통령은 물론이고 공직자 모두가 처신을 삼가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 점에서 '왕실장'으로 불리며 사실상 국정 전반을 관할했던 김 전 실장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2013년 8월 취임한 김 전 실장은 업무 첫날 "윗분의 뜻을 받들어"라는 40년 전에나 쓰이던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이렇게 대통령 뜻에 무조건 복종하면서 그 권력을 대행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삼았다. 청와대 분위기는 경직됐다. 물론 대통령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라고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고위 공직자들이다. 대통령이 임명했다 해도 법률과 국민을 앞세워야 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정권에서나 이런 사람들은 드물었지만 이번 정부에선 정말 단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런 풍토에서 최순실 일당의 국정 농락이 벌어졌다. 한때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 공직자로 꼽혔던 김 전 실장의 추락을 보며 우리 공직 사회의 한계와 문제를 절감한다.
특검은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최종 지시했다고 김 전 실장 구속영장에 적시했다. 박 대통령 측은 "여론 조작"이라며 이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민·형사상 소송을 내겠다고 했다. 이 문제가 탄핵 심판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한 때문이겠지만 지금 이럴 때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 대통령은 큰길을 두고 자꾸 작은 길로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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