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쓴 약 처방할 지도자가 필요하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입력 2017. 1. 23. 03:17 수정 2017. 1. 23.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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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늘리고 격차 줄인다"
대선마다 달콤한 공약 했지만 지난 20년간 국가 경쟁력 추락
정말 국가 살릴 지도자 원한다면 쓴 약 처방할 후보 나올 수 있게
국민이 먼저 진실 앞에 서야

배포 큰 약속들이 양산되는 걸 보면 대선 철인가 보다. 일자리와 격차 해소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공약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몇 달간 각종 약속이 홍수를 이룰 것이고, 경제 체질을 망가뜨릴 약속과 지도자를 선택할 경우 미래는 어두울 것이다.

이 선택은 온전히 국민의 몫인데, 대중의 입맛을 맞추는 데 급급한 사람과 위기를 진정으로 돌파해내려는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판별 기준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책 판단이란 것도 사람 사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선 나를 위하는 척 내 귀에 쓴 얘기는 쏙 빼고 남 탓을 하게 만들면서 쉬운 답을 들이미는 사람은 별로 영양가가 없다. 빚잔치하는 나라처럼 전 국민에게 돈을 뿌려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냉철하게 문제를 진단하고 그에 맞는 대안을 내놓는지도 중요한 기준이다. 지금의 불편한 진실은 세계경제에서 한국의 위치가 하락하고 시장경제 원칙이 뒤틀리는 것을 지난 20여년 방치했다는 점이다. 1960년대 세계 최빈국에서 시작해 30년간 눈부신 발전을 이뤘음에도 이제 기술 경쟁력과 시장 활력을 빠르게 상실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각종 불균형의 심화로 국민 박탈감이 커지는데도 개선 노력을 체계적으로 설계하지도, 진전시키지도 않았다. 그리고 개선을 막는 각 분야의 경직성이 난공불락인 것은 기존 구조를 유지하려는 각계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흐름을 대담하게 뒤엎을 방안을 담았는지가 일자리 및 격차 해소 대책이 제대로인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대표적으로 일자리 부족은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 외의 답이 없다. 경제가 안 돌아가는 것이 일자리 문제의 근원인데, 경쟁력 상실을 정면 돌파할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내놓는 일자리 전략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한 그나마 있는 일자리가 세대 간, 계층 간에 편중되어 일부 그룹의 고통이 가중되는 문제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 일자리가 돌아가게끔 노동 개혁으로 대처해야 한다. 정규직 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노동 개혁에 아예 입 다무는 후보라면 능력과 정직성을 신뢰하기 어렵다.

지난 며칠간 문재인·박원순 후보 진영은 물론 현 정부까지 모두 공공 부문 확대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청사진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이는 일자리 부족의 근본 메커니즘에 눈감은 행태이다. 공공 부문 일자리는 단기적 보완책으로는 활용할 수 있을지언정 본질적으로는 주변적 도구에 불과하다. 성장 동력 확충과 시장 개혁 과제를 우회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대신 내세운 내용마저도 너무 빈약하다.

더구나 공공 부문에 대해서는 시장 원리 회복을 위해서도 새로운 방향성이 요구된다. 고급 공무원뿐 아니라 하급 공무원과 교직까지 다수 젊은이의 취업 목표가 된 지 오래다. 창의성과 열정으로 성공 신화를 쓰거나 실패를 딛고 재도약하는 꿈을 꿔야 하는 젊은 재능들이 노량진에서 청춘을 썩히는 현실의 의미는 자명하다. 우리 사회는 민간 부문의 기회가 적을 뿐 아니라 공공 부문의 특권이 과도해 사회 내 보상 구조가 심하게 왜곡돼 있다는 뜻이다. 공공 부문 확대가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도록 장애 요인을 없애고 공공 부문의 특권을 깎아내는 것이 절실하다.

격차 해소 역시 마찬가지다. 소득 재분배 강화와 복지 확대만으로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주장은 격차가 심화되는 근본 구조에 대한 식견이 없다는 것을 대놓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근로 소득 격차 등 주요 격차는 일차적으로 기술 발전과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의해 심화되고 있다. 더불어 시장경제의 원칙을 허무는 기득권 계층의 탈법·편법 추구는 개인의 노력을 비웃고 박탈감과 분노를 지펴 격차의 체감도를 증폭시킨다. "돈 많은 부모도 실력"이라는 철없는 젊은이가 승승장구해온 스토리는 이번에 사회 통합을 허물었을 뿐 아니라 시장 신뢰에도 어마어마한 비용을 초래했다. 그러니 기술과 세계화, 기득권자들의 폐쇄적 이익 추구 등 격차 심화 구조를 극복할 전략을 제시해야 소득 재분배 계획도 힘을 가질 수 있다.

아쉽게도 지금 공약이란 이름으로 제안되는 정책들은 정확한 원인 분석에 기반하지도, 글로벌 시각을 갖추지도 못했고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정직함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선별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거나 안주해서는 안 된다. 듣기 좋은 약속들에 현혹되거나 포기를 쉽게 하는 국민이 훌륭한 지도자와 밝은 미래를 갖기는 어렵다. 위기 극복을 위한 고통 분담을 견디게 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할 리더십은 목마른 국민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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