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076] 三千浦의 풍광

조용헌 2017. 1. 23.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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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취(風醉)'. '풍경에 취한다'는 말이다. 술꾼은 술에 취하고 차인은 차(茶)에 취하지만, 한량(閑良)은 풍경에 취한다. 외국 풍경을 좇다가 돌고 돌아 고국 남해안 삼천포의 풍광을 바라보니 환지본처(還至本處)의 참뜻을 알겠다. 말이 통하고 음식도 맞는 것이 고국산천의 장점이다.

삼천포(三千浦)는 고려시대 수도인 개성까지 구불구불 해안을 따라 뱃길로 가면 3000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지형 조건이 좋아서 고대부터 천혜의 항구였던 것이다. 지금은 남해 쪽에서 창선도까지 삼천포(창선)대교가 하나의 길로 연결돼 놓여 있다. 삼천포대교 옆의 오른쪽 동네가 실안(實安)인데, 이 실안의 언덕에 올라가서 앞바다 풍경을 바라보는 게 최고의 전망이다. '실안낙조'로 유명하다. 대교 바로 밑에는 초양도가 있고, 그 오른쪽으로 늑도, 마도, 저도가 이어져 있다. 섬들이 둘러싸고 있어 바다라기보다 호수 같다. 늑도에서는 청동기시대 유적과 고대 중국의 동전이 발견되었다. 고대부터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려면 조류(潮流)를 타야 하는데, 그 조류를 타기에 좋은 지점이었던 것이다. 조류가 오가는 길목에는 죽방렴이 설치되어 있다.

삼천포 토박이로서 수협 조합장을 맡고 있는 홍석용(68)씨. 해풍에 단련된 강인한 선장의 인상이면서도 속 깊은 정이 느껴지는 홍 조합장은 "옛날, 이 죽방렴의 기둥이 단단한 참나무였다"고 말했다. 지금은 쇠파이프로 바뀌었다. 죽방렴 멸치를 최고로 친다. 500년이 넘었다는 죽방렴 기둥 주위로 흰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야생 오리 떼도 물 위에 떠 있고, 때로는 육지의 까마귀도 날아와 뭐 먹을 거 없나 하고 기웃거린다. 호수 같은 바다에는 먹고살기 위해 고기 잡는 어선들이 여기저기 떠 있고, 그 사이를 하얀 물살을 가르며 배들이 오고 간다. 건너편 섬들에는 사람들 사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다 때려치우고 저 섬에나 들어가 살아볼까' 하는 마음도 든다.

이 모든 게 어우러져 풍경이 되었다. 좋은 풍경은 우선 보는 사람에게 왠지 모를 한가함을 준다. 그다음에는 삶의 활기를 준다. 원포귀범(遠浦歸帆)과 연비어약(鳶飛魚躍)이 합쳐진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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