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잘못했지만 사생활까지 들춰야하나" 애증의 TK

대구/최경운 기자 입력 2017. 1. 23. 03:14 수정 2017. 1. 2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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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르포] 대선때 80% 넘는 지지 보낸 대구·경북 민심 들어보니
- 격앙된 5070
"성형했느니 태반주사 맞았느니, 國政 무관한 얘기로 인민재판..
노무현 탄핵 때도 지지자들 반발.. 박근혜 지지자는 그러면 안되나"
- 젊은 층은 별 동요 없어
"어른들의 대통령 옹호 이해못해".. 일부는 "정치 관심 꺼버렸다"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의결한 지, 22일로 한 달 보름이 지났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에게 80%가 넘는 득표율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대구·경북(TK) 민심은 서울과는 달랐다. 지난 19~21일 보수 세력의 본거지라는 대구를 중심으로 TK 지역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젠 차분하게 탄핵 심판을 지켜보고, 대통령에 대한 비난도 사실과 사실 아닌 것을 가려서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분위기가 강했다.

◇"박 대통령 잘못했지만…"

지난 19일 오후에 찾은 대구 서구 서문시장은 여전히 화재 수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배추 한 통에 3000원!" 하며 손님을 부르는 김옥순(54)씨에게 박 대통령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지난 대선에서 "당연히 박 대통령을 찍었다"는 김씨는 "최순실 사건이 터진 뒤로는 한동안 머리가 아프고 밥도 안 넘어갔다"며 "속상하니 묻지 말라"고 했다. 옆 가게 주인 김희순(46)씨가 말을 보탰다. "박 대통령이 잘못한 건 맞지만 성형 시술을 했느니 태반주사를 맞았느니 까발리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라고 했다. 50·60대 남성들도 격앙돼 있었다. 이들은 특히 "언론과 정치인들이 대통령의 사생활까지 끄집어내 너무 몰아붙이고 있다"고 했다. 칼국숫집 주인 이현식(55)씨는 "TV에서 종일 박 대통령을 물고 뜯는 데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 한 손님은 "태반주사는 우리 집사람도 맞았던 주사"라며 "정치인들이 박 대통령을 나랏일은 안 하고 얼굴이나 꾸미는 이상한 여자로 만들려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20일 수성구 한 식당에서 만난 이홍권(50)씨는 기자가 말을 걸자 "언론이 사실 관계도 확인 안 된 허황한 기사로 인민재판을 하고 있다"고 언성을 높였다. 주차장 관리원 성모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을 때 지지자들이 얼마나 반발했느냐"며 "박 대통령 지지자들은 그러면 안 되느냐"라고 했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박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TK 사람들이 탄핵 사태로 상실감에 빠지면서 심리적으로 섬처럼 고립되고 있다"며 "일부에선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과 반대자에 대한 분노도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50~70대 "촛불에 태극기로 맞설 것"

지난 21일 대구시청 근처에서 만난 70대 이모씨는 매주 토요일이면 탄핵 반대 집회(일명 '태극기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상경한다고 했다. 이씨는 "자기 돈 내고 서울 집회에 올라가는 사람이 많다"며 "지난주에는 대구 사람들이 관광버스 60대에 나눠 타고 집회에 올라갔다"고 했다. 이들은 주로 카카오톡 메시지로 집회 참가 일정과 탄핵 부당성을 알리는 글을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동대구역에서 만난 70대 박모씨는 "언론이 탄핵의 부당성을 다뤄주지 않으니 자구책으로 카톡과 태극기로 맞서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에도 대구·경북 지역 주민 약 1만4000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 달성공원 앞에서 만난 70대 노인 4명은 "박 대통령 탄핵도 모자라 이제는 '부역 세력 청산'이니 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부관참시하려 하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한 노인은 "만약 대구 사람이 김대중 전 대통령 욕을 하면 전라도 사람이 가만있겠느냐"라고 했다.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이창용 대표는 "연세 많은 분은 박정희·박근혜 부녀에 대한 애증이 뒤섞인 상황"이라고 했다.

◇별 동요 없는 20·30

그러나 대구도 젊은 층 분위기는 서울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경북대 교정에서 만난 대학생 대부분은 "대통령을 옹호하는 어른들이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이진석(25)씨는 "친구들은 대부분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한 학생은 "부모님이 '박 대통령은 최순실한테 속은 것'이라고 하는데 속은 것도 죄 아니냐"라고 했다. 박 대통령 문제는 외면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회사원 정모(39)씨는 "박 대통령만 생각하면 밉다가도 불쌍해 아예 관심을 껐다"며 "이번 대선에는 아예 투표 안 하겠다는 친구들도 적잖다"고 했다.

TK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탄핵 반대 여론이 상대적으로 높다. 지난 1일 발표된 조선일보·칸타퍼블릭 신년 조사에서 '박 대통령을 탄핵하면 안 된다'는 여론은 전국 평균 12.7%였지만, 대구는 29.6%, 경북은 23.3%였다. 대구 지역 매일신문과 TBC가 지난달 25일 TK 주민 1361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선 '탄핵해선 안 된다'가 45.5%로 '탄핵해야 한다'(47.6%)와 비슷했다. 지역 언론인들은 "지금 바닥 민심은 이미 '안된다' 쪽으로 뒤집어 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지역에선 "헌재의 탄핵 결정 여하에 따라 TK 민심이 요동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TK의 '샤이(shy) 박근혜' 층은 정치권에서 나오는 '부역 세력 청산'의 대상이 자기라고 느끼고 있다"며 "정치권도 탄핵 정국에서 지역 민심을 섬세히 살피는 통합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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