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로 읽는 세상] 인공지능은 모방범일 뿐

김국현 IT칼럼니스트 2017. 1. 23.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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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모방 능력 대단해..
고흐 화풍 따라 그림 그리고 일기예보도 기자처럼 척척
단순한 일은 'AI 노예' 시키고 인간은 상상력 발휘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고민해야

만화영화 '너의 이름은.'이 대히트 중이다. 감독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서정적 풍경이 한몫했을 것이다. 사진을 넣으면 이 영화 풍의 풍경화로 만들어주는 앱이 한 달 전쯤 화제가 됐다. 일상을 영화의 잔잔한 한 장면으로 바꿀 수 있는 이런 기술, 대단한 것은 아니다. 아무 동네 사진이나 고흐의 풍경화와 함께 입력하면 컴퓨터가 동네를 고흐의 화풍으로 그려내니까. 양식전이(樣式轉移·Style Transfer)라고 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이다. 일종의 혼성모방인데, 이 앱은 신카이의 구름을 변형 없이 그대로 복제한 것이 들통나서 저작권 물의를 일으켰다. 컴퓨터는 모작(模作)에 능하지만, 이렇게 수준이 낮으면 도작(盜作)이 되어 버린다.

컴퓨터는 계산을 통해 세상을 모방하는 기계다. 인공지능이라고 의인화해도 모방에 불과하다. 대신 무한대의 모방 속에서 목적에 맞는 것을 순식간에 골라내니 인간보다 나아 보이기도 한다. 기보를 주면 알파고가 된다. '좋아요'를 누르면 '좋아요' 할 만한 글을 찾아준다. 인터넷의 오만 가지 글을 다 비교 분석하고 있을 구글 번역의 품질 향상은 놀랍다. 기상청의 속보와 과거 기사를 토대로 기계가 쓴 일본 신문 날씨 뉴스는 감쪽같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도로 상황과 그에 따른 차량의 움직임을 충분히 바라보면 운전을 할 줄 알게 된다. 올해 CES 가전쇼와 디트로이트 모터쇼의 주인공은 인공지능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월급 받고 하는 일이란 대개 절차에 따라 과거의 이력을 참조하여 순차적으로 해내는 것이다. 운전은 개중 어려운 일이었다. 화이트칼라도 결국 누군가가 기획한 양식에 빈칸 채우는 일을 하는 부품이라면, 공장에 들어온 기계가 노동을 모방하듯 인공지능은 사무직 노동도 차근차근 흉내 내기 시작할 것이다.

세상에는 가설을 세우고 백지(白紙)에서 기획하는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그 기획의 실행법을 매뉴얼로 만들고, 인건비 격차를 활용하여 수익 구조를 최적화한다. 비정규직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제 그 자리에 기계를 들일 수 있다. 이미 패스트푸드점에는 주문을 받는 키오스크(kiosk)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 기계에는 초과 근무 수당도 가입할 노조도 없다. 예외는 없다. 의사니 판검사니 전문직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객관에 호소하고 싶은 절실한 순간, 기계가 더 믿음직스러울 수 있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자. 워드프로세서든 수첩이든 백지에서 생각을 그려낸 일이 있었는지. 만약 그냥 남이 만든 빈칸을 채우고 있었다면, 그 일자리, 머지않아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 아니면 체온을 전해 타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 적은 있는지. 사무실에 숨어 세상 사람을 접할 일이 없었다면, 그 일자리도 기계에 어울린다.

모두가 일할 수는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대신 기계가 높인 생산성만큼 누군가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도 함께 오고 있다. 그 시대의 재분배와 복지는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매뉴얼만 따라가는 일로부터 인간이 해방된다면, 백지에서 자신만의 기획을 하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활동에 뛰어들 수 있다. 성장이 멈춘 시대, 씨앗은 그렇게 뿌려진다.

하지만 우리 청년은 공무원만을 꿈꾸고, 정초부터 정부 각료들은 한국형 인공지능을 급조하자는 뒷북을 울린다. 인공지능은 모방하는 기계다. 기계를 조달해도 모방할 대상이 수준 이하면 그 결과물은 뻔하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융성'은 노예제 덕이었다. 21세기 노예는 비정규직이나 하청 근로자가 아닌 바로 기계다. 입력한 대로 출력하는 이 모방 기계에 무슨 일을 시킬지, 어떤 사회를 입력할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 오히려 시급하다. 미래는 우리가 선택한 가치에 따라 실행될 것이다. 기계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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