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감동경영]"원자력발전은 얼마나 안전해야 할까"

기고 / 오세기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大총장

[동아일보]

　원자력은 태생적으로 편익보다는 위험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에너지원이다. 역사 속에서 기억되는 그 엄청난 파괴력과 후유증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트라우마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원자력발전이 논의되는 자리에서는 최우선적으로 안전을 계몽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교육의 선(善)기능은 위력을 잃어가고 있다. 최소한 과학기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난 60년에 걸쳐 진화한 원자력발전기술, 특히 우리나라 원전의 주종 로형인 가압경수로 원전기술은 지금껏 인류가 만든 어떤 시설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최선의 안전을 만족하도록 설계, 건설 및 운전되고 있다는 실증적 가치조차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안전이 증진될수록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도 증가하는 역반응 현상이 두드러진다.

　미국 듀크대의 페트로스키 교수는 안전이란 단어는 기술적 전문용어가 아니라 사회적 언어라고 서술했다. 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지식인들이 의미 있게 받아들여야 할 말이다. 정량화된 안전 여유도나 한계리스크로는 일반 대중의 막연한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난 기술선도 시대에서 사회 전체가 과학자나 엔지니어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주장이 실현될 때마다 경의와 찬사를 보낸 역사적 사실이 안전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원자력안전이다.

　원자력을 민간용 전원으로 개발하던 초창기부터 방사선 피폭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불확실성을 반영하여 안전기준을 ‘최대 허용량’으로 설정하였는데, 이는 어떤 경우에도 피폭된 방사선량으로 인해 일생동안 인체에 손상을 가져오지 않아야 한다는 ‘포괄적 예방’의 선언이다. 과학적 논리로는 매우 명쾌한 인과응보 이치(理致)로 보이지만, 결과로부터 원인을 단정하는 것은 매우 비과학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따라서 원자력발전산업의 규모가 일반 대중의 생활환경과 의식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으로 확대되고, 방사선 방호 연구를 바탕으로 피폭 대상 및 기간, 피폭 방법 및 부위 등 세분화된 기준으로 발전함에 따라 문제가 더욱 복잡하게 되었다. 특히 1970년대에 이르면 환경오염, 방사성폐기물, 핵확산 우려와 같은 혐오 이슈들이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 기류에 편승한다.

　원자력 시설의 안전 정도를 정성적 또는 정량적으로 구체화하는 활동이 본격화한 것은 1979년 미국 TMI 원전 2호기에서 발생한 사고의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를 논담하는 과정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비록 용융된 핵연료로부터 방사성물질이 원자로격납건물 외부로 누출되지는 않았지만 심층방어(defence-in-depth)철학에 맞추어 설계되고 엄격한 품질보증을 거쳐 만들어 기술적으로 완벽하다고 믿었던 원자력안전이 인간의 사소한 무지로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물증을 놓고, 전통적인 안전개념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데 세계 원자력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TMI 사고 후속조치는 인간 오류를 방지하는 다중조치로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설비나 계통의 설계에 인간공학적 요소를 반영하는 기술적 조치와 운전원의 부주의나 무지로 인한 안전운전의 실패를 예방하는 제도적 조치를 병합하므로 통제하지 못할 방사선 누출사고가 통계학적으로 발생 불가능(incredible) 수준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 역사상 최대 지진으로 동북부 해안인접 전 지역이 파괴되는 대형 자연재해에서 원전의 안전성이 시험을 받은 것이다. 수많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관련문헌에서 공통적으로 사고의 원인을 설계기준 이상의 해일로 인한 전력계통의 마비로 핵연료를 냉각하는 기능이 완전하게 상실된 것으로 결론내고 있다. 설계대로 원자로는 안전하게 정지되었지만 이어 닥친 해일로 비상발전기와 배전반마저 침수되어 잔열을 제거하지 못해 사고가 촉발되었고, 완전정전 상태가 지속됨에 따라 핵연료 용융과 수소폭발의 중대 사고로 증폭되었다.

　이제 얼마나 더 안전해야 안전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과학기술적 관점에서의 답은 최소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체험적 지식세계 안에서는 절대 안전성에 근사적으로 접근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형 자연재해가 사람들의 생활터전과 생명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1차적 피해보다는 이로 인해 근거리에 위치한 원전이 중대 사고로 방사성물질이 누출될 수 있다는 2차 피해에 대해 더 두려워하도록 만든 사회적 분위기를 극복하기에는 미흡하다. 미국 학술원에서 발간한 백서 ‘과학자들은 일반 대중을 이해하는가’에서는 ‘서로를 이질적 상대로 인정하고 교육과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 이외에는 별다른 해결방안이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물론, 보다 안전하고 경제성이 향상된 원전을 위한 지속적인 기술 개발은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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