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독립선언..열달 새 "63조원 투자"

임미진.김도년 2017. 1. 23.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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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견제에 M&A 막히자
트럼프 취임날 난징공장 발표
삼성 연 반도체 투자액의 4배
총 171조 지원해 한국 맹추격
"기술격차 5년, 급격히 줄 듯"

‘메모리 반도체 자급자족’을 위한 중국의 전해전술(錢海戰術)이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 칭화유니그룹은 난징에 300억 달러(약 35조원)를 들여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

여기선 데이터 저장에 쓰이는 3차원(3D) 낸드플래시와 데이터 처리에 활용되는 D램 반도체를 생산한다. 모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이다.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인 XMC는 지난해 3월 우한에 240억 달러(약 28조원)짜리 메모리칩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10개월 새 63조원의 투자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설비투자액이 연 12조~15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중국의 투자 규모가 어느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2014년 중국 정부가 “2025년까지 1조 위안(약 171조원)을 쏟아부어 반도체 산업을 일으키겠다”며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지 3년, 한국 수출의 버팀목 격인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의 맹추격이 시작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이 거행된 바로 그날(현지시간 20일) 투자계획이 알려진 건 우연이 아니다. 중국의 전략은 원래 ‘미국 기업 인수’였다. 세계 메모리 시장을 제패한 한국을 따라잡는 길은 다음 강자인 미국의 기술·인력을 통째로 사들이는 방법뿐이란 판단에서다. 2015년 이후 미국의 마이크론·샌디스크를 차례로 넘봤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중국 반도체 산업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미국 의회·행정부의 견제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견제는 오바마 시대보다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 지명자는 19일(현지시간) 인준 청문회에서 “오바마 행정부와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시각을 공유했다. 중국의 반도체 육성 정책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중국이 ‘시간이 오래 걸려도 직접 만든다’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은 이 같은 미국의 견제가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중국이 기술이 있어 공장을 짓는 게 아니다. 반도체 업계는 중국 정부가 “일단 공장을 짓고 기술을 개발한다”는 ‘선 투자, 후 개발’ 전략을 택한 걸로 분석한다. 특히 아파트를 올리듯 메모리 셀을 쌓아 만드는 3D 낸드플래시 제품은 공장을 짓고도 제조 기술을 쌓는 데 1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세계 2위 낸드플래시 업체인 도시바가 아직 본격적으로 3D 제품은 양산에 돌입하지 못했을 정도다.

━ “메모리 강자 한국, 시장규모 더 큰 비메모리 투자를” 이세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론적으로 낸드플래시는 5년, D램 시장은 7년 정도 기술 격차가 있다. 하지만 투자 규모와 속도를 감안하면 실제 추격 시간은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모리 시장에선 ‘5년 이상의 격차’를 자신하는 한국이지만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 반도체)시장에선 오히려 중국이 한국을 앞선다. 특히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 회사 수는 중국이 우리보다 10배나 많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15년만 해도 736개에 불과하던 중국 팹리스 업체는 지난해 1362개로 늘었다. 한국 팹리스 업체는 최근 수년 사이 150개 안팎에 머물러 있다. 남이 설계한 반도체를 대신 생산해주는 파운드리 업계에서도 중국의 성장은 무섭다. 대표 기업 SMIC의 매출이 껑충껑충 뛰어 지난해엔 세계 5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양강에만 의존하지 말고 설계와 생산, 메모리와 비메모리 등 전반적인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두 회사의 인력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작지만 강한 반도체 업체가 많이 육성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삼성과 하이닉스가 인력 유출을 우려해 최근 구조조정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은퇴하는 인력이 중국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어떻게 막겠느냐”며 “더 넓은 분야에서 다양한 규모의 회사가 자라서 이들 인력이 활약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2015년 기준 세계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2670억 달러(약 314조원) 규모로, 세계 메모리 시장(807억 달러)의 세 배가 넘는다. 특히 인공지능(AI)이나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분야의 시스템 반도체는 절대 강자가 없는 만큼 국내 업체가 신속히 투자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퀄컴과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이 AI용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이 잘하는 메모리 반도체에 시스템 기술을 접목하면 충분히 개발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내다봤다.

반도체 인력 육성도 시급하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중국은 미국에 대거 국비유학생을 보내는데 우리 반도체 유학생들은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고 있다”며 “우리 기업이 약한 반도체 기술은 해외에서 적극적으로 배워 오게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미진·김도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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