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칼럼] '미술관 강남 진출사건'의 전말
'밤 10시까지 365일 무휴'
'관람객 최우선' 등 도전 주목
운영·생존방식 우려 딛고
"수익성? 좋은 전시가 답"
정부지원 아닌 관람객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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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8층짜리 신축건물이 우뚝 섰다. K현대미술관이다. 지하 2층부터 지상 6층까지 층당 661㎡(평균 200평), 총 4960㎡(1500평)의 전시공간을 조성했다. 최근 개관전을 열고 관람객을 맞기 시작한 미술관은 얼핏 지나치면 근처의 숱한 기업건물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2010년부터 6년을 준비했다. 부지를 선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데 3년, 펀드를 모금하는 데 2년, 관장으로 부임하고 건물을 신축하는 데 1년이 걸렸다.” 기존 미술관과는 전혀 다른 발상으로 미술관을 세우고 오픈한 주인공은 김연진(50) 관장. 김 관장은 “다른 건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오직 관람객만 봤다”며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그럼에도 당장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은 두 가지다. ‘이 금싸라기 땅에 미술관이 가당키나 한가’가 하나고, 다른 하나는 ‘도대체 어떻게 운영하고 수익을 낼 건가’다. 나아가 방향과 목표를 어찌 잡을 거고, 재정조달은 어떻게 할 것이며, 8층 전시장을 무슨 전시로 채울 건가 등등의 질문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가능성 제로’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김 관장은 인정한다. 관람객 수입과 대관의 부수입만으로 운영이 안 될 거란 건 그 자신이 더 잘 안다. 그럼에도 ‘관람객 최우선’이란 철학은 버리지 못하겠단다. 세계의 현대미술 트렌드를 볼 때 더이상 피카소·고흐·모네만으로 주목받을 수 없다는 게 그이의 생각이다. 세계의 눈길을 사로잡을 프로그램이 시급하다고 했다. 피카소에 한눈파느라 세계시장서 한국작가가 베트남작가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단 점을 들여다보란 거다.
그저 한때의 치기나 겉멋이 아닌 건 분명하다. 김 관장은 경기 용인에 위치한 이영미술관을 건립·운영해온 김이환·신영숙 부부의 딸이다. 아버지에 이어 이영미술관의 부관장·관장을 지낸 이력이 10여년이다. 이미 ‘이 바닥’의 생태는 알 만큼은 안다는 말이다. 관장의 신념이 이토록 확고할 때야 미술계에서도 마다할 게 없다. 다만 모험심과 실험정신으로 벌인 일이 쉽게 무너지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적잖다. 사립미술관은 이미 숱하게 있다. 관건은 차별성과 생존방식일 텐데 그것을 모험과 실험만으로 충당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들이다.
그럼에도 연초부터 충격요법을 던진 ‘미술관 강남 진출사건’은 대한민국에서 문화예술이 성립하는 조건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게 한다. 지금이 어느 땐가. 정부에 얼마만큼 바짝 줄을 들이대는가에 따라 문화예술의 성공 여부가 뒤바뀌는 상황까지 지켜보지 않았는가. 자생력결핍증을 타고난 한국문화예술계의 생명선이 정부지원이고 기업지원이 된 지 오래라지만 강남 번화가에 우뚝 선 미술관은 결국 문화는 ‘비선’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일침을 꽂는다.
“좋은 전시에는 호응이 있더라”란 확신으로 김 관장은 주중 3000명, 주말 6000명이면 연간 100만명을 동원할 수 있단 계산을 뽑아냈다. 근처 유동인구가 국립현대미술관의 2배에 달한다는 긍정성으로. 성공의 관건은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관장도, 정부지원도 아닌 관람객에 달렸단 소리다.
‘만약 강남 한복판에 8층짜리 건물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쓰겠는가.’ 지금부터 머리에 쥐나는 질문 한번 던져볼 일이다.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한국 문화예술의 성패가 뒤집힌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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